임옥상 개인전: 바람 일다
2017.08.23 ▶ 2017.09.17
2017.08.23 ▶ 2017.09.17
임옥상
여기, 흰꽃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776cm (4 pieces)
자화상 I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181.8cm
임옥상
가면무도회 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
임옥상
존 버거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182cm.jpg
임옥상
윌리엄 모리스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259x182cm
임옥상
삼계화택-불 2016, 종이에 파스텔, 336x480cm (36 pieces)
임옥상
상선약수-물 2016, 종이에 목탄, 336x480cm (36 pieces)
임옥상
민들레 꽃씨 당신 I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97.5x130.5cm
임옥상
민들레 꽃씨, 당신 II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194x130.5cm
임옥상
광장에, 서 2017, 캔버스에 혼합재료, 360x1620cm (108 pieces)
임옥상
여기, 무릉도원 259x776, 캔버스위에 혼합재료, 2017
거리의 미술이 전시장으로 들어올 때
유홍준 (미술평론가)
1.
한바람 임옥상이 오랜만에 전시장으로 돌아왔다. 작가 약력으로 보자면 1981년 첫 개인전 이래 제18회가 되는데, 2011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이후 6년 만이다. 그간 2년이 멀다 하고 작품을 발표하고 어떤 때는 한 해에 두 번이나 개인전을 갖던 그의 이력에 이런 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력서 형식의 틀 속에서 보는 문서상의 수치일 뿐이고, 지난 15년간 임옥상은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가 무수히 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른바 그의 이력서상에서 ‘공공미술’로 기록된 작품들은 그 크기로 보나 예술적 공력으로 보나 하나하나가 거의 개인전 수준이었다.
임옥상이 전시장 화가에서 거리의 미술가, 광장의 예술가로 나가게 되는 전환점은 1995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일어서는 땅>이었다고 생각된다. ‘땅’을 주제로 한 종이 부조 작품전이었는데, 그때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은 무엇보다도 엄청난 크기의 작품 스케일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울였을 작업량과 공력에 압도당하였다. […]
이후 임옥상의 작업은 주로 거리에서 광장에서 펼쳐졌다. 퍼포먼스도 여러 차례였고,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벽화도 제작했고, 사회적, 정치적 집회에서 현장 작업을 펼친 것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지난번 촛불집회에 개근하면서 보여준 공차기, 오자미 던지기, 못 박기, 붓글씨 쓰기, 가무단 놀이 등의 작업은 시위 문화를 한 단계 높여준 예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갔던 임옥상이 이번에는 반대로 거리에서 광장에서 펼친 작업을 전시장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그간 현장에서 보여준 작업을 전시장에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경험을 전시장 미술로, 거창하게 말해서 승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그간 임옥상이 보여준 어떤 전시회와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예측 불허케 하는 파격,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돌이켜보건대 임옥상의 40년 화력에서 이 전시회가 갖는 의의는 네 번의 커다란 전환점을 보여주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984년의 제2회 개인전, 두 번째는 1988년의 제3회 <아프리카 현대사>전, 세 번째는 1995년의 <일어서는 땅>전,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 획을 긋는 전시회이다.
2.
전후 과정을 생략하고 그의 첫 개인전부터 살펴보면 애시당초 임옥상은 리얼리스트로 작가적 신념을 견지하면서도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 땅, 대지에서 출발하였다. 당시의 작품들의 제목이 <땅> <나무> <꽃> <웅덩이> 등이었음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옥상에게 대지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일정한 충격을 가했을 때 일어나는 자연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 예기치 못한 큰 변화에 대한 감지를 통하여 작가적 상상력을 펼쳐보곤 하였다. 화염에 덮힌 산등성, 시뻘건 속살을 내보이듯 파헤쳐진 들판, 바람에 휩싸이는 나무, 불기둥을 뿜어올리는 분화구 같은 웅덩이, 들꽃이 불길처럼 뻗어 있는데 하늘에서 먹구름이 소나기를 내리는 들판……
당시 그의 작품들은 이처럼 일정한 은유의 성격을 지니면서 충격과 긴장감, 신비와 예감, 변혁에의 열렬한 욕망 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과 욕구를 자연현상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관념적인 미술이 아니면 생경한 사실성이 과도하게 노출되던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
첫 개인전 이후 임옥상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서 새로운 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보다 리얼리스트다운 면모를 갖추어가게 된다. 그것은 임옥상의 관심이 자연현상에서 인간에로 옮겨간 것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고단한 삶의 표정을 담은 <귀로>. 가난하지만 따뜻한 달동네의 밤풍경을 창을 통해 표현한 <우리시대의 풍경-달동네>, 다 먹고 난 지저분한 <밥상>, 박제된 군상의 얼굴 위로 날리는 삐라를 그린 <색종이>, 평온한 대지에 엄습한 불길한 새를 그린 <새>, 그리고 잘 익은 보리밭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한 불쾌한 눈빛의 남자를 그린 <보리밭>……
당시 막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던 리얼리즘 운동의 구체적인 예술적 구현에 대하여 서로가 조심스럽게 자기 언어를 제시하고 있을 때 이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자기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임옥상 개인이 아니라 미술운동 자체의 큰 활력이 되었다. 임옥상이 일찍이 자기를 확보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은유법이나 대위법 즉, 예술에 있어서 상징과 은유가 지니는 조형언어의 중요성을 견지했던 것이다.
3.
1985년 임옥상은 프랑스 앙굴렘으로 건너가 약 2년간 프랑스에 머물면서 새로운 자기 예술 탐색에 들어갔다. 그가 극복하려는 모더니즘 미술의 본고장에 머물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해올 것인가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이 궁금하게 또는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장장 50미터에 달하는 <아프리카 현대사>를 들고 나왔다. 1988년 그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 열린 이 작품발표회는 김윤수 선생의 표현대로 “크기에서나 주제에서나 그것은 우리 현대회화에서 없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아프리카인의 수난과 현실을 다룬 이 대작은 그것이 아프리카라는 특수한 지역성을 넘어서 제 3세계적 현시, 나아가서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주제로 전환되어 있었다. 화면의 스토리 전개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또는 대하드라마의 회화적 변용이라고 할 만큼 웅장하고 도도하면서도 구석구석에 미세한 상황과 섬세한 표현을 가하고 에피소드를 삽입하면서 서사적 회화의 신경지를 이루었다는 찬사를 받을 만하였다.
이 <아프리카 현대사>를 통하여 임옥상의 예술 세계가 보여준 새로운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역사였다. 그는 자연현상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이제는 역사로 옮겨 앉은 것이었다. […]
1991년 호암갤러리는 참으로 파격적으로 임옥상 초대전을 열었다. 나이로 보아도 예외적 대우였지만 민중 미술 계열의 작가를 초대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임옥상의 지난 10년간 작품을 총망라한 이 전시회는 예상 밖의 관람 인파로 호암갤러리 사상 최대의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굳게 닫혀 있던 제도권의 미술 공간이 열리면서 그 동안 부당한 탄압과 간섭과 음해를 받아온 민중 미술이 임옥상의 작품전을 통하여 예술적으로 복권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작품은 상징과 은유가 절묘하게 살아난 <땅> <불> <보리밭> <무우>, 그리고 저 탁월한 극적 구성을 보여준 <아프리카 현대사>였다. 그의 최근작이라 할 <우리 시대 풍경-들, 바람, 사람들>은 우선 이미지의 힘에 있어서도 구작들을 따르지 못했다. 이 문제는 임옥상이 넘어서야 할 위기이거나 어차피 치러야 할 홍역 같은 것이었다.
4.
임옥상이 이 딜레마를 벗어난 것이 1995년의 <일어서는 땅>전이었다. 임옥상이 다소는 관념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사고가 우세한 작업에서 다시 흙으로, 그리고 인간 실존의 문제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회귀는 역사와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얻어낸 사회적 실존으로서 인간이며 그 인간이 살아가는 토대로서 땅인 것이다. 10년 전에 임옥상이 보여주었던 땅이 <상처받은 땅>이었다면 이제는 <일어서는 땅>이었다.
임옥상의 <일어서는 땅>은 구체적 현실을 지목하지 않으면서도 그 현상의 밑바닥을 건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 점은 듣기에 따라, 보기에 따라 관념의 늪에 함몰됨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에 따라서는 흙을 그림으로써 땅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고 인간 실존을 나타냄으로써 현실을 부각시킬 수 있다면 이렇게 획득된 형상적 인식이란 개별성을 통하여 보편성을 장악한다는 한 차원 높은 성취를 의미한다. 임옥상이 이 종이 부조전을 통하여 그 동안 침묵 속의 딜레마에 있던 자신을 구출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땅에서 시작했던 임옥상이 인간과 역사와 현실을 거쳐 결국은 땅의 본질은 흙에로 돌아왔다는 것은 1990년대 진보 진영의 많은 분야 일꾼들이 ‘일단 원래 복귀’하고자 했던 기류와 무관치 않은데 원위치해서 얻어낼 구체적 성과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임옥상은 바로 이것 ‘일어서는 땅’이다라고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임옥상의 작업을 보기 위해 능곡의 그의 작업장을 방문하였는데, 임옥상은 흙강아지가 되어 무릎으로 기면서 흙바닥에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임옥상은 어쩔 수 없는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연신 작업을 하면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 이 보드라운 흙을 좀 만져봐, 흙이 지닌 본성, 뭐라고 할까, 부드럽고 거칠면서 포용력이 있고 무엇이든 길러낼 수 있는 생산력을 지니고 있고, 어머니 품 같기도 하고…… 내가 그걸 몰랐었어. 그 동안 나는 땅을 많이 그리긴 그렸지. 상처받은 땅, 역사의 혼이 서려 있는 땅, 갈 수 없는 땅…… 그러면서 정작 그 땅을 이룬 원소로서 흙을 잊고 있었어. 그 흙이 있기에 땅이 있다는 것을 말야. 그래서 이제 나는 땅을 그리지 않고 흙을 그릴 거야. 흙을 그림으로써 땅을 나타내고 싶다 이거지……” […]
5.
1995년 <일어서는 땅> 이후 임옥상은 마침내 그냥 화가이기를 거부하며 조각으로, 설치미술로 자신의 표현 영역을 넓혀갔다. 소재도 흙에 집착하지 않고 나무, 쇠로 확대되면서 마침내 전시장을 버리고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1996년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조형물인 <광화문의 역사>가 그 첫 번째 작업이었다. 1997년 천안의 생산기술연구원 조형물인 <생명의 일곱 기둥>은 임옥상이 설치미술가로 변신한 작품이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출품한 <대지-어머니>, 2000년 서대문형무소 설치미술 <작은 감옥, 큰 감옥>, 전남 영암 구림마을의 <세월>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0년 매향리 공군폭격장에서 수습한 포탄으로 설치한 매향리 상징 조형물인 <자유의 신 in Korea>는 설치미술가 내지는 조각가로서 임옥상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명작이었다. 잔인한 재료로 슬프도록 아름다운 새를 형상화한 것은 임옥상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매향리의 경험은 임옥상에게 쇠붙이가 갖는 물질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았다. 임옥상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쇠로 작업을 하려면 자연히 용접을 해야 했지요. 새로운 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그만큼 작품 세계가 넓어지고 상상력도 넓어져요. 상상이란 실현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잖아요. 그전에는 뭔가 전체적으로 규격화된 부자유함 같은 게 있었는데 그 껍질이 없어져가는 것을 느꼈지요.”
그 성과들이 2011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연 제15회 개인전에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임옥상이 스스로 공공미술이라고 말한 전시장 밖에서의 작업들은 그의 이력서에 나와 있듯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내가 본 것으로는 서울녹색병원 엘리베이터 탑 외벽에 벽화로 그린 <노동을 위하여>, 마포 하늘공원의 <하늘을 담는 그릇>, 청계천 <전태일거리>, 분당 <책 테마파크>, 서울숲 <상상, 거인의 나라>, 창신동 <창신 소통센터>, 세월호 <못다핀 꽃> 등은 거리의 미술가, 광장의 미술가로서 임옥상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여 년간 공공미술에 매달렸습니다. 나름, 벽 없는 미술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예술은 당연히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고, 함께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서로서로 보듬고 위로하고 나누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예술 소통, 미술 소통, 문화 소통…… 이젠 소통의 시대, 대화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전시장 밖으로 나간 임옥상의 중요한 이력이다.
6.
내가 미술비평을 하면서 오랜 예술적 동반자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임옥상과 너나들이를 하면서 40년을 지내온 데에는 그의 예술과 예술적 기량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임옥상에게는 예술가적 상상력이 지나쳐 무당 같은 데가 있어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화가로서 그의 강점은 뛰어난 묘사력과 귀신같은 이미지 포착력에 있다. 이번 <바람 일다> 전시회에는 그의 무당 같은 괴이함과 귀신같은 이미지 포착력과 뛰어난 묘사력이 하나로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캔버스에 오일로 그리는 그의 인물 묘사력은 여러 작품에서 익히 보아왔다. 특히 <리영희 선생 초상> 같은 작품은 우리 시대 최고의 초상화라 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조각 초상으로는 제주 추사관 2층에 설치한 <추사 김정희 초상>이 있다. 무쇠라는 질감과 고개 숙인 포즈의 포착으로 귀양지 추사의 모습을 절묘하게 나타냈다. 그리고 설치미술로서 초상화도 있다. 봉하마을 노무현 기념관에 설치된 대형 초상은 네모난 철망에 장례식 때 사용된 노란 리본과 검은 리본 두 가지로 초상을 그려낸 것이다. 그 초상의 정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리본들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는 것은 임옥상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희대의 초상화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관객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초상 조각일 것이다. 전시장 1층 <가면무도회>에 설치된 역대 대통령과 존 버거, 윌리엄 모리스, 그리고 작가 자화상으로 엮어진 흙부조 초상들을 보면 그 이미지 포착이 절묘하여 그가 이 초상 조각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감성적으로 소통하게 될 것이다.
[…]
나이 탓인지, 아니면 익숙한 것이기 때문인지 이번 전시에서 내가 가장 감명받은 작품은 정통 타블로 작업인 <광장에, 서>, <상선약수>와 <삼계화택>이다.
<광장에, 서>는 30호 캔버스 108개를 연결한 대작 중 대작으로 임옥상이 거리에서 전시장으로 돌아오며 가져온 기념비적인 역사기록화이다.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민주화운동이었던 촛불시위 현장에 있었던 감동적인 장면들, 그리고 SNS에 무수히 올라와 있는 생생한 시위 기록 사진들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여 장대한 파노라마로 전개되고 있다. 그 이상의 해설이 필요 없고 불가능한 작품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농민 시위대에게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의식불명으로 된 사건을 다룬 것으로 그 상황의 전개와 시위대의 용기를 함께 그린 작품이다. 그러면서 작품 제목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를 역설의 변증으로 삼으면서 세상을 질타하고 있다.
<삼계화택(三界火宅)>은 2009년 1월 20일 용산 화재 참사 사건을 그린 것으로 그 때의 참상과 분노를 담은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 제목은 『법화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 중 하나인 삼계화택을 붙였다. 삼계(三界)란 욕심 세계인 욕계(欲界), 물질에 대한 집착이 있는 세계인 색계(色界), 물질에 대한 집착마저 없는 세계인 무색계(無色界)인데 이 삼계의 집들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불이 타고 있으면 부처님은 불부터 끄고 구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법하였다. 그 훌륭한 말씀을 이끌어 현실의 무자비함을 고발하고 있다.
<상선약수>의 경우, 임옥상은 당시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리얼리즘의 복권>전에 출품하기 위해 이 큰 대작을 불과 한 달 만에 그려냈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작가적 순발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는 현장감을 살려내기 위하여 먹빛 번지기 효과를 내는 목탄을 사용하여 마치 현장 스케치 같은 효과를 내는 조형적 계산이 들어 있다. 이 작품은 리얼리스트로서 그의 사고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얼마나 진지한가를 다시금 보여준다. 물을 주제로 한 이 작품과 쌍을 이루기 위하여 불로 일어난 참사 현장을 그린 것이 <삼계화택>이고 그래서 붉은색을 기조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거리의 미술가에서 다시 전시장의 화가로 돌아온 임옥상의 이번 작품전은 종래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지난 세월 거리와 광장에서 대중과 소통하면서 얻은 경험을 내적으로 승화시켜 그것이 전시장 미술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작품이 기법적으로 말하면 리얼리즘이면서도 이미지의 상징적 구사가 능숙하고 이미지와 이미지의 조화와 대결로 주제의식을 한껏 고양시키는 서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임옥상의 그림은 시도 아니라 산문도 아니고 소설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대형 작가라는 인상을 받게 한다. 이제는 거리와 광장과 전시장을 넘나들면서 그의 왕성한 예술적 정렬과 정력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어나는 통쾌한 전시회이다.
* 이 글의 중간 부분은 1995년 <일어서는 땅> 전시회 때 필자가 쓴 글과 일부 겹칠 수밖에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임옥상, 흙으로 흙을 말하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임옥상은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화단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왕성하게 작업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가이다. 대표적 민중미술가답게 문명비판적, 정치고발적, 사회참여적 작품으로 정평을 얻고 있는 그는 정통 유화물감을 비롯해 종이 쇠 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다매체 작가, 페인팅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다장르 작가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에 예술을 삶의 근저에 작동시키며 생활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공공미술가,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질문을 던지며 집단참여와 대중소통을 도모하는 문화 액티비스트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임옥상의 이번 개인전 <바람 일다>는 평면 작품이 주를 이루며 회화가 대표 장르였던 80년대 민중미술 전시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개별 작품들이 담보하는 정치적 내용과 리얼리즘 양식에서도 역사적 민중미술을 계승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수의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자신이나 기존의 민중미술과 차별화되는, 지금/여기의 임옥상을 직시케하는 현재성과 참신성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한 느낌은 시의적이고 동시대적인 화두를 다루는 주제의식, 재료발굴과 방법론적 실험에 의거하는 새로운 조형의지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특히 이번 출품작들이 보여주듯이, 흙 재료에 대한 사유와 성찰, 이와 함께 본격화된 흙 작업이 눈길을 끈다. 이전에도 그는 땅을 주제로 흙을 매체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해 왔지만 이번 흙 작업은 흙을 물질적 재료 이상의 개념적 매체로 파악하는 작가의 인식론적 태도에서 달라 보인다. “매체는 메시지”라는 마셜 맥루언의 경구를 환기시키듯, 그는 흙이라는 매체로 흙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예술 차원의 흙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다.
흙은 땅을 만드는 물질적 요소이지만 물질성을 초월하는 우주적 상징성과 문명비판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만물이 흙에서 소생하고 흙으로 되돌아가듯이 흙은 우주의 순환적 원리를 암시하는 지구의 살이자 뼈로 은유될 수 있다. 동시에 흙은 현대 도시문명과 대비되는 농촌문화, 민족적 저항과 민중적 힘으로 표상되는 까닭에 민중미술을 비롯한 리얼리즘 계열의 미술가들은 물론, 인간의 존엄과 소외, 낭만적 사랑과 생명사상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민족주의 문학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으뜸 소재로 꼽혀왔다. 예컨대 이광수의 『흙』, 박경리의 『토지』, 펄 벅의 『대지』는 모두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그리며 흙, 토지, 대지에 뿌리 내린 농민과 서민들의 강인한 삶,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불가항력적 역사의 질곡 속에 내던져진 그들의 개인적 운명을 서사화한다.
임옥상의 흙 작업에도 위의 문학작품과 같은 역사적, 민족적, 사회적, 개인적 내러티브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흙 작업은 강한 신체적 암시를 풍기며 뇌지적인 문학과는 다른 미술 장르 특유의 시각적, 촉각적 특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논점은 그가 사용하는 흙이 작업용 점토가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생흙, 벌거숭이 같은 맨흙이라는 점에서 뒷받침된다. 맨흙을 사용하는 까닭에 그의 흙 그림, 특히 1층 전시장 벽면을 장식한 흙 초상화는 흙의 끈질긴 생명력을 의인화하듯 거칠고 억세고 강인해 보인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공예운동가 윌리엄 모리스, 미술을 사회와 결부시키며 서구 소비사회의 시각문화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 등, 자신이 존경하는 두 역사적 인물들을 그린 ‘오마주’ 초상화는 물론, 세대와 나라는 달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적, 사상적 절실함과 실천적 과제의 절박함으로 한국 군사독재정권에 통렬하게 맞섰던 임옥상 자신의 자화상 모두가 생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 생경함으로 단호하고 비장한 아우라를 발산하며 관객의 오감에 어필한다. […]
흙과 함께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곡식, 꽃씨 등 흙, 땅과 관련된 자연적이고 비예술적 인 재료들이다. 2층 전시장에 진열된 노무현과 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의 초상화 <민들레 꽃씨, 당신I>, <민들레 꽃씨, 당신 II>는 민들레 꽃씨로 제작되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행복과 희망을 뜻하지만 흔하고 익숙해 눈에 띄지 않는 야생화 민들레를 의인화하듯, 실루엣으로 재현된 이 상징적 초상화는 촛불 혁명을 주제화한 소위 ‘광화문 역사화’ <광장에, 서>와 마주하며 의미론적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108개의 현장 기록사진으로 구성된 커다란 배경면에 흙으로 조형화한 무수한 원형 패턴으로 촛불파도를 묘사하고 있다. 촛불을 흙불로 환원시키며 광장의 기적과 땅의 기적, 민중의 저항과 토지의 저항을 동일시하고 있는 <광장에, 서>는 각각 용산 화재와 물대포 사건을 재현한 <삼계화택(三界火宅)>과 <상선약수(上善若水)>, 이전 정권의 적폐를 풍자적으로 재현, 비판한 유화 작품 <물밑 창조경제>와 함께 시의적, 시사적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임옥상은 억압적 현실과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에 대해 발언하는 도발적이고 고발적인 민중미술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꿈을 좇는 비저너리이자 환상적 작품의 창조자이기도 한다. 2층 전시장 두 방에서 선보이고 있는 벽화 크기의 흙 풍경화 세 점이 바로 작가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리얼리즘 작품군과 대비되는, 초월적 숭고미학으로 관조의 여운을 남기는 환상적 알레고리화를 예증한다. <여기, 노란꽃>, <여기, 무릉도원>. <여기, 흰꽃>에서 작가는 작품 상단을 청와대 뒷산 산세를 선묘로 재현하고 있지만 하단은 산 밑으로 펼쳐지는 도시 경관을 무화시키듯 만발한 꽃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 풍경을 풍유적으로 번안한 일종의 관념적 실경화이자 현대판 무릉도원으로서 이 작품들은 암울한 현재를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의 신세계를 향한 작가의 유토피안 드림을 대변한다.
이번 전시 <바람 일다>에서 작가는 흙을 주매체로 회화사, 특히 리얼리즘 미술의 두 대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제작, 발표하고 있다. 그의 인물화는 실제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점에서 인물화이기보다는 초상화이며. 그의 풍경화는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사건 혹은 실제 장면을 대상화하고 있는 만큼 실경화이다. 이번 전시 <바람 일다>는 초상화로 시작되고 실경화로 끝을 맺는다. 전술한 흙 초상화 연작이 전시를 여는 프롤로그라면 흙 실경화 연작은 전시를 맺는 에필로그에 해당된다.
임옥상은 땅, 대지, 자연, 역사에 천착하는 민중미술가답게, 흙으로 초상화를, 실경화를 그린다. 그에게 흙은 정치사회적 의식과 민중적 저항의 기표로 의미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실과 이상, 실재와 상상의 세계를 왕래하는 그 자체가 환상적 매트릭스가 된다.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고 수용적인 매트릭스로서의 흙, 땅, 토지, 대지는 라틴어 어머니 mater와 자궁ix의 합성어인 매트릭스가 시사하듯이, 국가, 민족, 사회, 개인이 태어나고 성장, 발전하는 생명의 젖줄이자 모성적 태반이다. 작가는 흙에 대한 경의로 모체적 매트릭스로 회귀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흙의 자정능력으로 스스로 깨어있는 작가, 행동하는 인간이기를 갈구하며, 객토客土의 고행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혁신하고자 한다.
임옥상 개인전 <바람 일다>의 의의
윤범모 (미술평론가, 동국대 석좌교수)
(1) ‘한바람’ 작가와 광장의 촛불
임옥상은 ‘힘’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래서 기운생동이란 말을 이끌어 온다. 그의 발언 내용은 강력하다. 임옥상은 왜 그렇게 강한 작품을 꿈꾸고 있을까. 여기서 열쇠말의 하나로 시대정신을 들 수 있다. 그는 오늘의 현실을 증언하고, 아니 예각으로서의 해석을 시도하고, 그 사유의 결과를 작품에 담으려 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남다른 작가적 무게를 느끼게 한다. 임옥상이란 조형언어의 그릇, 관객은 참여를 즐긴다. 임옥상이 6년 만에 개인전을 다시 마련했다. 전시 제목은 <바람 일다>. 바람이 이는 정도가 아니라 우뚝 솟는다는 느낌을 준다. 폴 발레리는 그의 [해변의 묘지] 첫 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삶의 바람, 생의 의욕을 돋구는 바람, 여기서 바람은 하나의 자극제이다. 늘 일렁이는 속성의 바람, 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의 8할은 바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바람은 영양제인가. 바람은 고여 있는 물을 흔들어 생동감을 넣어준다. 바람은 일어서야 바람이다. 모순과 질곡의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순의 세상을 덮어버리려면 태풍이라도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옥상은 신인시절부터 작품에 ‘한바람’이라고 서명하기를 즐겼다. 한바람은 하나의 바람이고, 큰 바람이고, 한(민족)의 바람이다. 그러니까 임옥상의 ‘한바람’은 한민족의 태풍을 염두에 두게 한다. 그런 한바람이 변화를 촉구하는 한국 사회에 대하여 (선전)포고와 같은 ‘바람’을 들고 나타났다. 바로 <바람 일다>, 바람이다.
이번 개인전 작품은 전환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지난 해 토요일마다 광화문 시위현장에서 퍼포먼스할 때 느꼈던 생각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놓고자 했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촛불의 언어’이고, ‘광장의 언어’라는 의미이다. 촛불과 광장. 촛불은 밀폐된 실내에서 불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촛불은 자신의 온몸을 태워 주위를 밝혀 준다. 스스로를 태우지 않고는 어둠을 밝힐 수 없다. 실내의 촛불은 개인적 의미가 강하지만, 광장의 촛불은 의미와 개념을 달리한다. 수천, 수만의 촛불은 횃불이 된다. 그것은 혁명의 횃불이다. 모순과 소통 부재의 청와대를 엎은 것은 촛불, 그렇다, 바로 촛불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폭발적인 힘이었다. 촛불과 광장은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광화문 촛불’은 또 다른 세상을 이끌어 냈다. 이번 임옥상 개인전은 ‘광장의 촛불’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전환의 시기에 화가는 무슨 발언을 작품에 담았을까. 그 발언은 오늘의 현실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까.
임옥상을 두고 흔히 ‘예술의 공공성을 확립한 종합 예술가’라 한다. 발언의 진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이다. 물론 임옥상은 여타의 작가와 달리 ‘공공미술’에 대한 애정과 연구의 성과를 지니고 있다. 그의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미술작품의 수준이 아니라, 작품의 공공성에 더 커다란 방점을 찍고 있다. 미술의 공익성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도 발언 내용과 그 표현 형식이 다채롭고 이색적이다. 힘의 미술. 그러니까 임옥상은 형식과 내용에서 새로움과 힘을 담고자 했으며, 그 바탕에는 물론 시대정신을 깔고 있다. 정치사회의 변화는 이런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했다. 이번 개인전 구성은 전시장의 구획에 따라 작품 성격을 달리했다. 그래서 주요 인물의 초상, 정치사회적 문제, 그리고 현실의 다양한 시각 등으로 특화시켰다. […]
(2) 흙이라는 재료와 의의
임옥상의 <바람 일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흙’이라는 재료의 활용이다. 흙이라는 재료의 물성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는 무겁다. 하기야 우리네 인생은 흙에서 살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는 사실 흙의 집적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교만함은 ‘땅바닥’이란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다 꼭대기이지 바닥은 아니다. 지구의 우듬지에서 모든 생물은 발을 딛고 살아간다. 결코 땅바닥은 아니다. 우리는 흙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니까 흙은 지구의 살, 바로 임옥상의 표현처럼 ‘흙살’의 의미를 재인식하게 한다. 흙의 의미, 새삼스럽다.
임옥상의 흙은 객토(客土)의 의미에 방점을 찍게 한다. 객토는 무엇인가. 바로 생기를 잃은 땅에 새로운 기운을 넣어주고자 뿌려주는 흙이지 않은가. 흙을 흙으로 살리는 것, 그것이 객토이다. 병든 인간사회도 결국 인간이 살려야 할 것 아닌가. 객토라는 개념은 이번 임옥상 개인전의 열쇠말에 해당한다. 따라서 <바람 일다>는 ‘객토 일지’의 다른 표현이다. 일상생활에 적극 개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임옥상은 객토 행위가 바로 예술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병든 사회를 향한 객토 행위,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객토!
땅과 흙은 다르다. 땅 부자는 있어도 흙 부자라는 말은 없다. 흙은 본질적 문제이고 땅은 사회적 문제이다. 땅은 왜 소유의 대상이 되었는가. 자본주의는 땅 따먹기의 전쟁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본질의 순수성은 중요하다. <바람 일다>의 다른 표현은 <땅에서 흙으로>, 그렇다, 흙의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조형적 발언이다. 땅에서 흙으로! 이것이 이번 임옥상 개인전의 주제이다. 물론 이번 작품의 상당수는 흙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작업임은 사실이다. 흙에의 새로운 주목. 흙이 주는 상큼함을 적극 수용하고, 작가는 이를 전시장 내부로 이끌고자 했다. 흙 작업, 이는 정말 상큼하다. 흙은 스스로의 색깔을 고집하지 않는다. 흙은 자연친화적이고 또 생명을 길러내는 역할을 한다, 임옥상은 한때 ‘쇠’로 작업한 적 있다. 쇠의 의미 역시 흙과 같이 넓고 크다. 철기의 장악은 그 비례만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쇠와 흙, 이런 재료 실험은 임옥상 미술의 특징이다.
흙으로 초상화 그리기. 신선한 시도이다. 이번 개인전의 초상화 부분에서 임옥상은 흙이라는 재료를 적극 활용했다. 흙으로 바탕의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속도감을 주거나 사실적 부분 묘사 등으로 화면 경영의 변화를 주고자 했다. 작가는 붓 이외 호미나 삽 같은 도구를 활용하기도 했다. 마르기 전의 흙은 작가의 솜씨를 최대한 수용해 준다. 더군다나 원 바탕에 색깔을 주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긁어내면 색깔 있는 바탕이 드러난다. 물질성이 강해 종이보다 효과가 더 좋다. 여기서 흙의 무게와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독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흙 작업은 묘한 매력을 안겨주기도 한다. 흙으로 시대의 인물을 표현한다는 것, 그 의의는 매우 높으리라고 믿어진다.
임옥상은 초상 작업을 하면서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선택된 초상화의 주인공 자체보다 흙의 느낌을 더 강조하려한 듯하다. 거기다 천연재료인 지푸라기를 섞어 견고성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우툴두툴한 질감 효과까지 얻었다. 그렇게 하여 완성한 작품은 <윌리엄 모리스>나 <존 버거> 같은 초상이다. 작품을 위한 주인공 자체도 중요한 선택이지만, 거친 흙바탕에 얼굴을 표현한 조형적 효과를 우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3) 정치사회 상황의 풍자와 비판
임옥상의 <바람 일다>는 ‘광장의 촛불’이 일구어낸 성과물이기도 하여, 자연스럽게 정치사회적인 소재들이 많다. 사회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시대적 환경 때문에 더욱 그럴지 모른다. 이들 소재는 다소 무겁고, 거칠고, 또 하나의 멍에와 같다. 하지만 중요한 대목은 이들 정치사회적 문제들의 본질을 직시하고, 또 그 결과로 풍자/ 비판/상징화 시키고자 작업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 예술계에서 풍자와 비판 정신의 희박함은 실로 아쉽게 하는 부분이다. 풍자정신의 높은 가치를 복원시켜야 한다. 해학과 풍자 그리고 비판과 상징, 이런 ‘도구’를 활용하려고 예술하는 것 아닌가. 이런 주장을 허용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예술활동은 정말 척박하기 그지없다. 답답한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일까.
임옥상의 작품을 보자. 정치비판적 내용의 작품은 유화작업으로 대체했다. <가면 무도회>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을 가면 형식으로 박제화시켰다. 이제 과거 시대의 산물이 되었다는 의미이며, 가면의 본질을 따져보자는 의도도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가면 작품의 뒷면을 볼 수 있게 장치하여, 즉 숨겨져 있는 진실을 드러나게 하려는 의도를 읽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정희 가면의 뒤에는 해골이 보이고 있는 바, ‘타살된 장준하’를 연상시킨다. 역사의 평가는 엄혹한 것이다. ‘두 얼굴’은 바로 가면의 속성이기도 하다. 숨긴다고 모든 것이 숨겨지는 것도 아니다. 한 인물을 평가할 때, 특히 정치가를 평가할 때, 역사라는 냉정한 잣대는 ‘가면의 진실’을 말하게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특정 사건 관련 신문 기사내용을 전사시켜 넣기도 했다. 진실 찾기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뒷면과 광주 학살, 박근혜 뒤의 오바마 얼굴 그리고 패션 쇼, 아베의 욱일승천기, 노무현 뒤의 노동운동가들과 이라크 파병 같은 소재들, 흥미롭다. […]
<상선약수>는 목탄 드로잉 작업이다. 낮은 데로만 흘러가는 물의 속성은 최고 경지의 선을 일컫는다. 그래서 물이 최고이다. 그런 물로 사람을 죽인 정권이 있다. 작가의 비판정신은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삼계화택>은 불 끄려다 자기 집까지 다 태운 참사를 표현한 것이다. 불경에 화택(火宅) 비유가 있다. 집에 불이나 생명 위기의 순간이 왔는데, 놀이에 정신 팔린 아이들은 불 난 줄을 모르고 있다. 불 난 집에서 불난 줄을 모르는 사람들, 바로 우리 시대의 인간상이 아닌가. 화택이면서 화택임을 모르는, 아니 외면하고 있는, 인간 족속들. <삼계화택>은 용산 참사 같은 구체적 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현실 사회의 풍자라 해도 틀리지 않는 비유법이다. 바로 임옥상의 발언이다.
작가는 2016년 겨울의 광화문 촛불 시위를 대형 캔버스에 담기도 했다. <광장에, 서>과 같은 대작이 그것이다. 시대 증언의 산물이다. 더불어 작가는 서울 풍경을 새롭게 주목했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서울의 모습을 대작에 담았다. <여기, 흰꽃>은 북한산 자락의 하얀 꽃을 그렸다. 하얀 종이를 붙여 이팝나무의 흰 쌀밥을 연상시켰고, 또 목화솜으로 상상력을 제고시켰다. 촛불 서울의 꿈속에 시민의 꿈을 그려 넣었다. 하기야 욕망을 덜어내야 행복을 담을 수 있다. 욕망이 넘쳐흐르는 한 행복은 채워지지 않는다. 촛불의 의미는 욕망 버리기이기도 하다. 자신을 전소(全燒)시키면서 세상을 불 밝히는 촛불의 의미, 바로 광화문 광장의 의미이다.
(4) 시대정신과 상상력 그리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
임옥상의 <바람 일다>는 오늘의 ‘우리 풍속화’이기도 하다. 다만 첨예한 사회문제를 서슴없이 선택했고, 그 내용을 작가 나름대로 거침없이 표현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흙과 같은 ‘흔한 재료’를 과감히 차용했다는 점, 특히 우리의 전통사회가 농경사회여서 흙과 친연성이 강하다는 점, 이같은 표면적 특징을 헤아리게 한다.
임옥상의 화면구성에서 ‘서사성’은 중요하다. 좋은 작품은 서사성과 서정성을 겸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미술계는 언제부턴가 서사성의 비중이 약화되었다. 스토리텔링 시대라 하면서 막상 미술작품 속에 ‘스토리’는 넣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미술작품이 재미없어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요인도 되었다. 임옥상의 장점은 작품 속에 이야기를 넣으려 한다는 것, 그것도 오늘의 거대담론을 넣으려 한다는 것이다. […]
임옥상의 작품은 현대판 길상화(吉祥畵)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보다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의 미술, 바로 오늘의 미술가에게 요구하는 덕목이지 않을까. 튼튼한 미술, 그것은 작가의 건강한 의식에서 나온다. 건강한 의식은 시대정신과 상상력 그리고 전통의 재해석 등에서 나온다. 여기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실천은 중요하다. 하여 전통의 창조적 계승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바람 일다>는 전통을 바탕에 깔고 부는 오늘의 한바람이다.
1950년 충청남도 부여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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