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최지현
평온한 하루 장지위에 채색, 80.3x130.3cm, 2017
최챈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7
최챈주
fictional world 1610-1 acrylic on panel, 53.0x40.9, 2016
당신의 이름 곁에 머물다
똑똑, 문을 열고 당신을 본다. 하얀 마을을 마음에 담아 소박한 탁자 위의 주전자로 내어 주는 당신이 거기 있다.
그리다, 는 말이 그림과 그리움으로 분화되어 노랗게 바랜 의자를 곁에 두고 당신은 그렇게 있다. 당신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감정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
저 화폭의 무수한 빗금들이 푸르게 빛을 발(發)하고 꽃을 피워내듯이 당신의 본질이 하나의 이름으로 나에게 새겨진다.
당신과 나란히 있다.
당신의 눈꺼풀에 떠오른 달을 바라본다. 당신의 세계, 당신의 마을, 당신의 일상을 비춰주는 달.
그것이 내쉬는 숨을 감당하기에, 나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당신의 풍파를, 당신의 색을, 당신의 허기를 내 안의 이야기로 쌓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당신이 말없이 내어주는 의미의 곁에 선다.
가볍기만 한 언어로 당신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이 이루어내는 순간의 영원을 떠다니며, 한 걸음 한 걸음에 당신의 마음을 되뇌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번역해야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 안온(安穩)하여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당신은 박노을, 당신은 최지현, 당신은 최챈주. 어떤 변화와 간절이 그 이름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각각의 이름, 그러나 함께인 이름이 모든 것들의 이름으로 이른다.
각자의 고독과 고요로부터 얻은 변화와 간절이 모든 것들에게로 이름으로써 그 무언가의 소중함으로 새로워진다.
손에 온기(溫氣)가 맺힌다.
한없이 우울하고 서러운 먼 곳의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삶의 착란(錯亂)으로부터 당신의 이름을 포개어 본다.
단아한 온기를 그 곁에 조심스레 놓는다.
염려하지 말아요.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그토록 아름다운 어떤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공간을 채운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마음 한 켠에 새겨 꿋꿋할 수 있을 것이다.
푸른 잎사귀와 분홍빛 꽃잎을 가만히 바라본다.
비어있는 액자들과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곁에 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불빛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와 공감은 낯선 곳에서부터 비롯된 타인의 자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바라보는 저 화폭 너머 당신의 시공간이 만들어낸 간절함의 의미가 지금 여기의 나에게 도달하기까지는,
나와 당신의 간극만큼이나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당신의 곁에 있다.
그림과 그리움이 결락(缺落)한 자리를 나와 당신이 채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주저 없이 당신의 삶, 당신의 시간, 당신의 비밀을, 당신의 절망, 당신의 꿈, 당신의 이름과 함께 할 것이다.
박노을, 최지현, 최챈주.
나는 오늘, 잠자리에 들며 당신과의 재회를 꿈꿀 것이다.
■ 이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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