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못다한 말 Mixed Media, Diamension Variable, 2010
정지현
1969 Mixed Media, 70x92x40cm, 2009
정지현
Ferry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2009
그러나 안에는 경계가 없다. 감옥은 외부에 있다.
_장 타르디유(Jean Tardieu)
‘추방된’ 사물들의 귀환
죽은 줄만 알았던 사물들이 마치 유령처럼 다시 돌아왔다. 장난감 목마도 쓰레기 더미와 같은 사물들 한켠에 있다. 유기된 사물들이 시간과 장소를 배회하다 잔류한 어느 부둣가에서, 정지현은 이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쓰임새를 잃어 길가로, 구석으로, 쓰레기통으로 폐기된 소모품들이 현실로 귀환하는 순간이다. 자본주의의 논리로부터 믿어 의심치 않는 용도를 가졌으나 쉽게 폐기되어 버린 사물의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도 닮아있다. 문명이 생산한 물질가치에 투영된 현대인의 정신은 버려지는 사물들처럼 폐허의 이미지를 가진다. 이러한 폐허로부터 사물들을 소생시키는 정지현의 작업은 기존의 논리와 질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난무하는 정보나 믿을만한 진술들에 대한 의심, 의문은 정지현이 버려진 사물들과 조우하는데 있어 근본적 질문이 된다. 제어할 수 없는 거대 시스템 안에서 소소한 개인적 질문들은 밝혀질 수 없는 허무와 무기력함을 동반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는 사회적 규정, 제한, 경계 등 사회 속 개인에게 ‘주어진 질서’를 부정하고 파괴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추방된 사물들을 다시 현실로 ‘거주시키는’ 제 나름대로의 시도를 현실의 억압적 구조로부터 꾀한다.
벽 너머의 ‘거처’로서 천장
‘궁전에는 내밀함이 들어앉을 곳이 없다’(보들레르)는 말처럼, 세련되고 화려하게 치장된 공간 속에는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들이 발언할 자리가 없다. 구석조차도 허용치 않는 공간의 말쑥함으로부터 소소한 것들이 집 밖으로, 그들이 머물렀던 거소 밖으로 추방당한다. 정지현이 버려진 사물들을 다시 귀환시키는 장소는, 바로 발딛을 틈조차 없을 것만 같았던 현실 세계이다. 공간을 에워싼 저 ‘벽’ 너머로 무언가 있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작가의 의심과 질문들은 현실의 벽을 투시함으로써 벽을 ‘경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향한 ‘틈’으로 맞이한다. 그렇게 작가는 공간의 벽으로부터 은폐되었던 ‘천장’이라는 공간을 드러내어 세상과 연결시킨다. 먼지와 음습함으로 가득했던 공간에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물들의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천장 속 ‘못다한 말’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 벽 너머의 천장에 고개를 내밀면, 톱니가 한 바퀴를 돌며 번쩍번쩍 작은 불빛들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힌다. 그러자 현실 속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사건들로부터 정지현이 등장시킨 우주인, 고래, 경주용 말이 버려진 사물과 기이한 융합을 이루며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천장의 고독과 적막은 일상에서 무시되었던 사사로운 감각을 깨우며 사물들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강박적이고도 발작적으로 드러낸다. 천장 속에서는 작가가 제작한 조각품과 그림, 버려진 사물들뿐 아니라 먼지, 각종 소음들, 빛과 어둠, 공기, 그리고 고개를 내밀은 관객의 시선과 숨소리가 함께 머문다. 이처럼 숨겨지고 보이지 않던 세계, 비현실로 치부된 하찮은 몽상, 망각된 기억, 추방되고 거부된 존재, 좌절된 소소한 희망들이 정지현의 작업에서는 ‘못다한 말’이 되어 발성된다.
심소미(큐레이터, 갤러리스케이프)
1986년 수원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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