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형
꽃을위한 노래 45.5X53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Ⅶ 30X30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Ⅲ 75X75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꽃을위한 노래 91X73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Ⅶ 30X30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Ⅷ 30X30cm, 분채 수정말 장지, 2017
임소형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Ⅸ 30X30cm, 재료-분채 수정말 장지, 2017
공간적인 깊이를 통해 드러나는 심미세계
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적인 채색화에서는 대체로 화조가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자연미를 상징하는 꽃과 새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탈 사실묘사를 표방하는 현대적인 채색화에서도 꽃과 새는 여전히 주요한 소재의 하나이다. 하지만 현대의 채색화는 전통적인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모색한다. 다시 말해 화가의 주관적인 조형감각 및 심미세계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회화적인 공간을 체험케 한다.
임소형의 작업은 일정한 색채 패턴을 가지고 있다. 어떤 특정의 색을 배색으로 설정하고 그 위에 형태를 묘사한다. 따라서 얼핏 단색조의 그림처럼 보인다. 배경과 소재를 동일색상으로 통일할 경우에는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보라색 기운이 깃든 청색조의 수국을 표현한 작품은 배경과 꽃의 색깔을 동일색상으로 처리함으로써 단색조의 그림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처럼 어느 작품이나 단일의 색채를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구성적인 이미지의 꽃의 형태가 자리한다.
수국을 비롯하여 상사화, 달리아, 작약, 목화 그리고 남태평양의 하이비스커스 등을 소재로 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들 꽃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지만 무언가 연관성이나 공통점이 없다.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은 소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수국이라든가, 달리아, 상사화 등은 꽃이 크기도 하거니와 그 형태가 사뭇 입체적이다. 따라서 이들 꽃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형태미에 이끌렸음직하다. 단순히 그 형태나 색깔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상투적인 접근이 아니라, 입체적인 구조에 대한 관심인 셈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꽃은 그 자신의 조형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소재일 따름이다. 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메시지를 담기 위한 소재의 설정은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꽃은 자연의 화사한 색깔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꽃의 형태적인 아름다움만을 탐닉해온 전통적인 시각과 달리 되레 꽃의 존재감을 억제하는 듯싶다. 꽃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색조의 배경과 한통속으로 바꾸어놓는 까닭이다.
이는 특정의 꽃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지워버리는 대신에 새로운 개념의 조형미를 관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 있다. 전통적인 채색화의 경우에는 현실적인 공간개념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기에 정물화 형식의 소재구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력의 법칙에 충실하면서 자연성, 즉 생동하는 자연미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에 그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전래의 조형적인 질서를 중시하지 않는다. 순수한 조형적인 공간미, 또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겨냥할 따름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꽃은 현실성을 상실한, 순수한 조형적인 소재에 머문다. 꽃의 본래적인 자연미, 즉 자연 상태의 형태미에 대한 화려한 수사가 없다. 그러기에 특정의 꽃이 가지고 있는 형태만이 보일 따름이다. 다만 그의 작업에서는 구성적인 요소를 중시한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자유로운 소재의 배치 및 배열방식은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기능한다. 실제의 모양이나 색깔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인위적인 미, 즉 조형미를 일깨워주는데 의미를 둔다.
그의 작업은 분채를 기반으로 하여 금분이나 은분 또는 펄이나 석채를 첨가하기도 한다. 섬세하게 묘사되는 형태미가 말해주듯이 치밀하고 밀도가 높다. 부단히 반복되는 붓질에 의해 이루어지는 배경이나 소재의 이미지는 심연과 같은 심도 깊은 공간에 부유한다. 심도 깊은 공간은 필시 심미세계와 연결된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대한 이해를 넘어 시적인 정서는 물론이려니와 탐미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국한하지 않는 심오한 공간적인 깊이와 그를 수반하는 심미세계야말로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본질인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화면에 놓이는 소재의 위치는 작품에 따라 다양하다. 작품에 따라서는 꽃을 화면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꽃이 잘리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파격적인 구도 또는 구성은 조형미에 대한 탐색의 일환이다. 사각 평면 공간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조형의 변수를 통해 소재와 공간과의 대립과 조화 그리고 긴장관계를 살피는 것이다. 이는 조형적인 변주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목화를 소재로 한 작업 가운데 기다란 주련 형태의 화면에 목화송이가 띄엄띄엄 배치되는 작품이 있다. 마치 꽃잎처럼 떨어지는 상황을 서술한 구성으로서 목화송이를 꽃잎에 비유함으로써 서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유의 세계가 조형세계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터득하고 있는 듯싶다.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그림 속에 투영시키는 몇 가지 조형적인 방법을 통해 의식의 심연, 그 막연한 세상이 현현하고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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