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승
SODA#106538 Gelatin Silver Print, 159x106cm, 2009
백한승
SODA#212707 Gelatin Silver Print, 190x127cm, 2008
백한승
SODA#308134 Gelatin Silver Print, 40x60cm, 2010
백한승
SODA#315621 Gelatin Silver Print, 159x106cm, 2009
2010년 4월 7일(수)부터 20(화)까지 2주간 인사아트센터 본전시장에서는 백한승의 개인전 SODA를 선보인다. 200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도시에 관한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 백한승은 비오는 도시의 밤풍경을 내면적이고 사색적으로 바라본 [SODA]제하의 대형 젤라틴실버프린트 30여 점을 전시한다. 백한승작가의 밤풍경 시리즈는 2005년 [라르고], 2007년 [에프단조의 푸가]에 이어 세 번째이다. 백한승작가는 도시의 비 내리는 밤을 찍는다.
평면 위에 빛의 입자를 뿌려놓은 듯 묘사된 대상은 현실의 사실적, 사진적 재현이기보다는 내면의 충동에 몸을 던지는 현상적 표현주의에 더 가깝다. 그의 파편적 이미지들은 인공적인 시공간으로서의 도시의 밤과 자연현상인 비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충돌하는 감정적 혼돈의 심리상태를 기록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자전적 경험인 실명과 각막이식에 이은 각막부종의 시각적 경험을 재현하고 있다. “나는 나의 눈길이 머문 대상에 필터를 씌우고 싶었다. 그 필터를 통해 나 자신을 비추어보고 싶었다.” 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 투영된 대상은 작가의 무작위적 노출과 형식을 파괴한 현상인화 프로세스로 인해 파편화되어 보는 이에게 전달된다.
비와 사진, 그리고 사진사
흔히들 시뮬라크르니 하면서 예술적인 탐구를 한다고 이래저래 실험들을 하고, 현대적인 사유를 한답시고 어설프게 철학적인 의심들을 내뱉는다. 예술에 대한 너무 많은 질문들과 괴변들 때문에 그냥 지긋이 감상하면서 좋다 할 수 있을 것을 그렇게 못하고, 그냥 진득이 만들어도 좋을 것에 괜한 철학적 풍요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현대미술에는 아는 척이 너무 많다. 그 아는 척 때문에 현대를 현대이게끔 해준 많은 사상가들과 모더니스트들의 예술에 대한 희망이 점점 공허해지는 것 같다. 많은 현대미술이 그 아는 척에 기대서 실재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존재 이유는 죄다 갖고 있다. 예술이 예술로 되기 위해서 예술이게 끔 하는 정의를 스스로 부여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시금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순수한 상태, 그냥 하고 싶어져서 하는 그런 태도를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만약 누군가 사춘기를 지난 어른으로서의 순수함을 회복한다면, 그 순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간의 회복이 더 강한 면역력을 가진 새로운 세포의 분열이듯이, 자기 의지에서 비롯된 재생은 과거의 파괴를 회복한 새로운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구심과 호기심에서 비롯했던 파괴나 해체 같은 개념놀이보다 다시 어린시절 상상의 세계를 회복한 그 어른의 그 순수한 놀이가 표현으로서는 훨씬 더 강력하다고 본다. 판단을 중지하고 감각에 충실한 놀이, 그 놀이가 사진찍기일 경우, 사진이 빛으로 환원된 사물이라느니, 미완의 진실이라느니, 실재의 재현이라느니 하는 골치 아픈 고민은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이 동하고 손이 움직일 때 셔터를 누르면 된다. 시야가 흐려서 눈이 동하고, 비가 와서 몸이 동하면 그 동한 눈과 몸을 마음껏 움직이는 놀이, 백한승은 그 놀이를 위해 몇 해 동안 천통의 필름을 감고 수 백벌의 옷을 적셨다.
백한승의 놀이에 동행한 적은 없다. 낮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다니던 모습을 본적은 많다. 밤에 술마시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본적도 많다. 하지만 비오는 밤에 귀한 카메라가 젖던 말던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얘기만 들었다, 비올 때 사진 찍고 싶어진다고. 그러다 얼마 전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전시를 위해 그 많은 필름들을 걸러서 건진 몇 장의 사진을 보면서 그의 놀이를 연상했다. 처마끝의 낙수가 화강석을 뚫듯이 변주곡을 연주하는 굴드(G.H.gould)의 무당 같은 신음소리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젖은 담배연기 한번 깊게 빨아들이고, 천천히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자동차도 찍어야 하고, 사람도 찍어야 하고, 거친 아스팔트, 미끈한 하이힐도 찍어야 한다.
그러다 빗방울이 찍히고 빗줄기가 찍히고, 그 빗물과 도시의 속도에 맞춰져 조금씩 빠르게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셔터의 리듬 때문에 저절로 막 빨라지면서 갑자기, 어둠과 물로 가득 찬 공간에 ‘팍’ 하고 터지는 폭발을 포착하였다. 그렇게 그의 놀이는 그 섬광처럼 퍼진 분출물과 함께 마무리가 된다. 이후, 우리는 그 폭발을 보는 중에 집을 보게 되고, 그 옆의 자동차, 그리고 전신주의 전선들을 보게 되지만,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그가 가졌던 그 희열의 절정이지, 그 대상들도 아니고, 거기서 반사된 빛도 아니다. 다른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이지 않은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때가 있다. 그의 사진은 그것을 아주 쉽게 알게 해준다. 그것도 사진으로 말이다.
사진을 원본이라고 하든 재현이라고 하든, 사진에서 분명한 건 찍는 자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보든 세상의 표면을 벗겨내든, 그 자신이 셔터를 눌렀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게 있는 사진은 그의 놀이에서 생겨난 흔적이다. 그 흔적을 남긴 건 그이지만 그를 그렇게 하게 만든 건 비오는 밤 움직이는 물방울과 그것을 움직이게 한 세상인 것은 더욱 분명하다. 이렇게 사진가, 셔터, 그리고 그가 서있는 비에 젖은 세상이 명확한데 더 이상 그의 사진을 놓고 다른 얘기들을 할 필요가 있을까.
박순영 / 미학
197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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