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 ‘사유의 여백' 展

2017.11.29 ▶ 2017.12.04

갤러리 도스

서울 종로구 팔판동 1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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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

    황금가지 a golden branch 한지에 먹 164x131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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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

    봄을 품다 Waiting for spring 한지에 먹, 144x75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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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

    고독 Solitude 한지에 먹, 144x75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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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

    달빛 Moonlight 한지에 금색안료 Gold color on Hanji, 94x63cm, 2017

  • Press Release

    현대 한국미술의 한국성과 신조형의 표출
    장 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장)

    1.

    예술가에 의해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이해되고 해석되며 새롭게 창조되는 것은 상상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조형과 내면에서 표출되는 감성이라는 이중 구조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시대에 있어서 상상력이나 메타포(metamorphosis)를 활용한 표현은 물질이나 대상의 근원적인 형(形)과 태(態)에서 근원을 해체하거나 지우거나 새롭게 창출해내는 행위이다. 대상이나 물질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물성이나 근본을 풀어서 무(無)나 공(空)의 상태로 되돌려 신형상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평면이라는 틀 속에서 공간이나 형상에서 비롯된 무체(無體) 혹은 무(無)나 공(空)으로부터의 소멸이나 생성 등의 주제로 마치 환원과 확산의 과정이 순환 또는 생성되는 듯한 이은숙(李恩淑)의 일련의 작업들은 커다란 맥락에서 볼 때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자연의 이미지나 인간, 삶에서 나오는 여러 속성을 해체하여 그 하나하나의 본질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일련의 창작 작업들은 그 행위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조형의 세계와 조우하는 듯하다. 이는 장자(莊子)의 「포정해우(庖丁解牛)」에서 소를 잡는 직업을 가진 포정이 소를 완전히 풀어헤쳤을 때 소가 원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상태로 만들어진 것과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형질과 기존의 인식으로부터의 변환과 해체적인 성향을 잠재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2.
    이은숙은 1980년대에 서울대를 졸업한 후 삼십여 년 이상 꾸준하게 작업해오고 있는 화단의 중견작가이다. 대학 졸업 작품 때 120호 크기의 큰 가로 화면에 노인 몇 사람의 모습을 담채와 백묘로 처리하면서부터 인체 특히 얼굴의 조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에 청년 작가로서 인지도 있게 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작업 세계의 확장을 위해 90년 1월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받은 충격은 오히려 인간성, 자연성을 토대로 한 휴머니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뉴욕보다는 좀 더 인간적·자연적 체취가 강하다고 생각되는 필라델피아로 작업 환경을 바꾸면서 자신의 미적 감성에 더 적합한 조형 세계를 꿈꾸게 되었다. 이후 94년부터는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 University of Pennsylvania )에서 공부하면서 동양화의 소재를 더욱 소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인간과 소, 말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특히 소를 사람의 전신으로 생각하면서 소에 자신의 감정과 희로애락 등을 담아 더욱 밀도 있는 조형세계를 펼치고자 하였다. 미국 땅에서 미국의 소가 아닌 한국의 소를 의인화하여 그리는 시간은 사색의 시간이자 자신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그 무렵에 미국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면서 조형적 관점과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그의 작품은 크게 보면 인간의 형상과 소의 이미지 그리고 자연이라는 테마로 전개되어 왔다. 큰 흐름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실험적 모색이 전개되는 시간들이어서 개성적이고 창의력 있는 조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직접 제작한 검은색 한지에 금분을 재료로 하여 작업하게 되었다. 그는 경주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 혹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박물관 등을 보면서 황금색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색채라고 생각하였으며, 금빛 형상들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경주박물관에서 신라의 유물들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감동을 느꼈다. 다음은 작가 노트의 일부분이다.

    박물관에서 본 불교의 감지위의 사경이나 외국의 미술관에서 본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 이콘 성상화에서 사용된 황금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하게 여겨지고 성인이나 경서에 사용돼왔을 뿐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속물근성의 표상이기도 했다. 2005년부터 검정 바탕의 색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 연유는 작업실을 오가며 보게 된 칠흑 같은 밤하늘을 연상한 때문이며, 별빛 대신에 거대한 빌딩 숲을 덮은 도시의 네온 불빛 색을 금빛으로 표현하였다. 금빛의 형상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은 표정들과 인간의 형상, 때론 사물의 형상으로….

    이처럼 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하게 사용되어 온 황금색의 조형적인 이미지를 고민하여 왔으며, 색상이 있는 한지를 사용한 것은(그는 미국에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92년도에도 붉은색 한지에 먹물을 사용하여 소를 그렸었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의 재료의 사용이나 조형성의 확장 및 실험적 조형성의 추구 등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재료나 방법을 토대로 한 조형적 실험이 한국성의 확장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유학의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 들어온 이후에도 소와 인간과 자연의 이미지와 내적 형상에 대한 조형적 관심은 계속되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주변의 일이나 주요 사건 등을 다루는 기사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해 깊이 사색하여, 그동안 추구해왔던 인간과 소 그리고 자연과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전개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연상되고 유추된 이미지들이 마치 상호보완이라도 하듯 동일한 성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 이은숙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많이 고민했음을 의미한다. 얼굴의 형상을 다룬 작품 중에서 2003년 일본 동경 나비스갤러리에서의 일련의 작품들은 구름처럼 부드럽고 엷게 처리되어 지금과는 다른 필치의 그림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그가 자신의 조형에 다각도의 실험적인 시도를 꾸준하게 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미술의 흐름에 부합되면서도 우리의 정서가 담긴 새로운 조형적 실험이 절실하였기에 내면에서 표출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조형성을 보다 밀도 있게 구체화시켰던 것이다.

    3.
    지금까지 이은숙은 자연과 인간을 모티브로 한 그림을 그려왔다. 인간의 신체 가운데서도 얼굴을 집중적으로 표현해 왔는데, 이 얼굴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추상에 가까운 얼굴들이었다. 이 얼굴들은 이미지 면에서는 얼굴로 인식되지만 형상적인 면에서는 형질이 변환될 정도로 해체적이며 은유적이기에 얼굴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포정(庖丁)이 소를 자유자재로 풀어헤쳐 놓았듯이 말이다. 이것은 얼핏 보아 관념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얼굴이라는 대상의 본질을 투영(透映)시키는 고차원적인 창작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이라는 이미지, 다시 말해 얼굴의 현상이 환원과 확산을 거듭하는 상당히 수준 높은 조형력을 지닌 창작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얼굴의 이미지를, 수묵의 번짐 효과 등으로 겨우 인식될 만큼 부드럽게 그리거나 투박하고도 거침없는 필치들로 화면을 파괴하듯이 활달하게 펼친다.

    이처럼 얼굴을 소재로 한 그림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화하였다. 2000년 중반 이후 더욱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듯한 이미지는 인간의 형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운기(雲氣)의 움직임이라고 할 정도로 간이(簡易)가 흐르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지속적으로 전개돼 왔지만 내용면에서는 갈수록 더 다양해지고 사색적으로 변화되면서도 모두가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 일상에서 드러난 여러 상태나 상황의 본질을 사색하여 매우 압축된 형상미로 조형화하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한결같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시간성’을 포커스로 하여 접근해 온 일련의 작품들은, 평자들이나 전문가들의 관점에 따라 몇 단계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작가 이은숙이 왜 30여 년 동안 그림의 소재를 달리하면서까지 하나의 테마, 하나의 포커스로 작업을 해왔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은 우리 미술의 자존심 회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넘어간 것도 한국화의 영역 확장과 재료의 다양화를 위한 고민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색으로 된 한지 위에 아크릴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렸다. 현대미술사의 어떠한 시류에 부합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감성과 자신만의 정직한 창의력으로 그 때 그 시간에 부합된 그림을 그려온 것이다. 미국에서 창작 활동을 열정적으로 했던 때의 심경은 마치 속세를 벗어나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구도자의 심경 같았을 것이다. 당시 그에게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존심 외에도 우리 미술의 세계화라는 일념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얼굴, 소, 나무, 하늘 등은 간일화(簡逸化)되어 몇 개의 붓 터치에 의해 부드럽고도 간경(簡徑)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동양적인 격과 세계미술의 흐름에 가장 적절히 부합된 공통분모적인 형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상이 없는 것처럼 표현된 이 형상적 이미지들은 담백함과 아울러 전통의 문기(文氣)를 담고 있으며, 현대 미술의 흐름과 잘 부합된다는 강점을 지닌다. 그의 화면은 그가 추구해왔듯이 진리의 환영이 투영된 가장 진실한 공간이자 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은숙의 작업 세계에는 우리의 조형적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 듯하다. 이 에너지는 곧 군더더기를 떨쳐낸 무(無)로 돌아가는 힘이자 진리에로 환원할 수 있는 원인자이다. 따라서 이은숙의 조형에는 동양적인 사유로 이루어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리의 투영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추구해온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시간성’에 대하여, 마치 하이데거가 ‘예술에서의 진리’를 사색하려 하였듯이, 자신의 평면 작업 속에서 사색하고 작품에 투영시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자 리오타르(J. F Lyotard)는 시각적인 일련의 현상 가운데서 사물의 존재와 형태는 그대로 있을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는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의 작업에서는, 조형적 의미와 이미지가 더욱 진지하게 변화·모색되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이 바라보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현대인의 삶에서 발생된 여러 잡다한 일들이 조형적으로 틀을 잡아갔고, 조형에서의 환원과도 같은 진리의 투영이 펼쳐지게 되었다.

    출처:한국성과 한국 현대 회화에 대한 모색- 장준석 지음-학연 문화사, 2016

    전시제목이은숙 ‘사유의 여백' 展

    전시기간2017.11.29(수) - 2017.12.04(월)

    참여작가 이은숙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팔판동 115-52 )

    기획갤러리 도스

    연락처02-737-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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