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에게 나의 안부를 묻는다.
2017.12.15 ▶ 2018.01.16
2017.12.15 ▶ 2018.01.16
양경렬
two King 리넨에 유채, 18×26cm, 2017
양경렬
Pink Monster 1 리넨에 유채, 73×91cm, 2017
양경렬
Naked King 리넨에 유채, 70×100cm, 2015
양경렬
Pink Monster 2 리넨에 유채, 45.5×53cm, 2017
양경렬
dinner time 리넨에 유채, 35×26cm, 2017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바라보는 주체와 그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과의 떨림에 관한 이야기다. 바라본다. 이는 일종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행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에너지는 파장의 형태로 존재한다. 쉽게 말해, 에너지는 떨림으로 존재하고 그 떨리는 모든 에너지들은 서로를 끌어 당긴다. 그렇게 우리는 주변의 모든 물질들을 보고, 느끼고 인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물질 역시 우리의 시선, 즉 관찰자의 에너지를 통해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은 보는 사람에 의해 단순화 되면서 스스로의 존재 양식들을 찾게 된다는 건데, 이는 보는 사람, 보여지는 대상 둘 사이에서 진행되는 에너지의 교차 운동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필요 조건인 셈이다. 양경렬은 이와 같이 성질이 다른 두 개 이상의 개체 혹은 물질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작가다. 바라보기, 기억하기, 생각하기 등등 작가의 그리는 행위들 전반에서는 이러한 에너지의 교차 운동과 작가 자신의 끊임없는 감성의 흐름들이 배어 나온다.
양경렬은 사회적 관계, 격정적인 감정 등이 섞이고 배출되는 공간 (광장, 공원, 등)을 바탕으로 하는 화면에서부터 가장 개인적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화면까지, 회화의 자율적 선택과 변화를 매우 진지하면서 위트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 그린다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면서 그의 세계와 주고 받은 은밀한 편지이기도 하다. 가장 감정에 솔직해 지는 순간 그는 그 내용을 담을 만큼의 스타일대로 그린다. 따라서 거기엔 작가의 자유의지를 옭아매는 그 어떤 형식적 매너리즘이 없다. 그의 삶이, 일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그의 회화는 늘 우리에 대한 애정과 은밀한 편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양경렬 회화만의 스타일이다. 다시 말해 양경렬 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그것을 그리는 행위의 조화. 그것이다.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정치적 변화에 굉장히 민감한 공간이다. 늘 역사적 사건들은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건이 지나고 난 광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무료하고 쓸쓸하다. 객관적이고 공공의 공간이었던 광장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간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린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현장이 지나간 광장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런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양경렬의 광장 역시 지나간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비로만 기억되는 장소다. 그 속에서 뒤엉켰을 수 없이 많은 감정들. 시간이 지나고 말 그대로 역사로 사라져 버린 그 감정들에 대해 작가는 다시 그 감정을 기억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그 기억들이 어떻게 다시 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그 역사적 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정신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 무료하고 쓸쓸한 광장에서 잿빛 비둘기들만이 가득한 그 광장에서 작가는 누군가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애정을 그리는 것이다.
양경렬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광장을 지나 자신의 스튜디오로 돌아와 집중했던 이야기들이다. 그 임금님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창작자들의 허무함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작가의 내면에서 발견되든 혹은 외부에서 찾아지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표현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작가의 숙명인 것이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만든 재봉사처럼, '이 그림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림입니다!' 라고 외치고 싶을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고백이다.
갈등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 서로의 정서와 동기가 대립되는 것들 사이에서 생기는 일종의 행동 유발 장치다. 그것은 자기 내면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 집단과 개인 그리고 집단과 집단간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양경렬의 반사적 이미지들은 이러한 정서와 동기의 대립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갈등은 동시에 존재하면서 서로 다른 이해와 견해들이 충돌하면서 생겨난다. 갈등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힘들의 대립이면서 동시에 갈등하는 두 개체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대립하는 개체들 대부분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같으나 그 결과를 위한 방법이 다를 경우 대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내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자기 방어기재를 발동시키면서 해소된다. 반면 서로 다른 두 개체의 갈등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해소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이 때 자기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생겨난다. 양경렬 회화에 있어 둘의 개념, 반사의 개념은 건강한 갈등과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존재들. 이는 작가의 내면에서 쉼 없이 일어나는 자기 분열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는 자기 반성을 위한 자문일 수도 있다.
양경렬이 그리는 대상, 소재들은 대부분 그의 기억을 근거로 한다. 특히 유년의 기억은 잊혀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또렷한 기억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조작가능하고 언제나 사건 사고가 덧붙여질 수 있는 가변의 기억이었다. 해서 그의 유년의 기억은 너무나도 아련하다. 그의 기억은 그리움에 대한 기억이고 외로움에 대한 기억이다. 어쩌면 그가 들려주는 은밀한 이야기가 이렇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그리움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종이배를 띄우고, 물속을 거닐고, 어딘지 모를 미지의 곳으로 떠났던 기억들. 그것이 실제의 경험이든 조작된 기억이든 그의 막연한 기억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우리 모두의 기억과 이어진다. 그것이 실제의 경험이든 그렇지 않든 양경렬의 그리움은 곧이곧대로 우리의 감성과 공명한다.
양경렬은 외로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접근한다. 그에게 외로움은 수행의 감정이다. 그에게 외로움은 내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고통이자 수행과정이다. 외로움은 물리적으로 첨예한 형태를 지녔고, 정신적으로는 허무한 내용을 지닌다. 당신이 있음으로 더 외로운 것. 극단의 수행이다. 그에게 외로움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나에게 나의 안부를 묻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감정들의 발견이다.
술이 덜 깬 늦은 아침, 비 맞은 비둘기에게 물어 보듯이 작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안부는 결국 너에게,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바라보기, 생각하기, 기억하기... 결국 양경렬은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면서 이 모든 그리는 행위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대상이 없는 바라보기는 없다. 경험하지 않은 기억은 없다. 관계를 떠난 생각, 역시 없다. 내면을 바라보고, 내 삶과 일상을 관통하고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두 개체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그 모든 것은 언제나 너를, 우리를 바라보는 양경렬의 회화다. 그의 회화에서 우리가 제외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너는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해서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문득, 그의 회화를 통해 세상에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 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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