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구 개인전 <처음, 웃는다>
2017.12.27 ▶ 2018.02.13
2017.12.27 ▶ 2018.02.13
전시 포스터
이순구
무제-덩어리 130.3x 162.2cm, oil on canvas. 2016~진행
이순구
웃음원형연구 각각 33.4x24.2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웃는가족 3 72.7x 60.6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나귀타고1 116.8x 80.3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나귀타고2 116.8x 80.3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웃다-나비 65.1x 53.0cm, oil on canvas.2017
이순구
웃는사람 , 53.0x 65.1cm, oil on canvas. 2017 .jpg 53.0x 65.1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웃는얼굴-소년(1709) oil on canvas, 116.8x91.0cm, 2017
이순구
웃다-오후 90.9x 72.7cm, oil on canvas. 2017
이순구
처음, 웃는다 90.9x 72.7cm, oil on canvas. 2017
처음, 웃는다
그림을 그릴수록 그 어떤 것으로부터 지속적인 갈증이 일었다. 일상에서, 사물의 관계에서, 관념과 추상하는 것들에서 혼돈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고 가는 운명이지만 자꾸만 느껴지는 혼돈은 늘 생각을 뿌옇게 한다.
1년 전, 잠시 지나던 바닷가에서 우연히 작은 바위하나를 발견하였다. 특별한 모양이 아니라 타원형에 가까운 평범한 바위였다. 집에 돌아 온 후 그저 스쳤을 뿐인 바위가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내 무의식에 무엇이 잠재했던 것일까. 그리고 80년대에 처음 가보았던 전남 화순의 운주사(運舟寺)를 떠올렸다. 나뒹굴던 바윗돌을 옆으로 대충 치워놓은 듯 놓여있는 불상들은 상식을 깨는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는 캔버스 하나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모의 웃는얼굴을 그리고자 시작한 것이었으나 이내 지워내고 옅은 채색에 단조로운 조형을 그려놓았다. 그 캔버스는 매일 그린다기보다는 작업실 한쪽에 세워두고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그러다 색을 다시 덧칠하기를 반복했다.
조각가는 덩어리에서 형태를 찾아 깎고 쪼아내어 형상을 만든다. 나는 빈 캔버스에서 찾아지는 수많은 형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다소 진부한 개념으로 출발한 [그림1, 무제-덩어리]는 그렇게 2016부터 현재까지 계속 진행하는 지속적인 작품이 되었다. 그 ‘덩어리’는 형상이 아닌 것에서 웃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그린다는 욕심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앞으로 개인전 때마다 선보일 것이다. 계속 변화하면서.
[그림2]는 웃음의 원형을 찾고자하는 또 하나의 시도이다. 4호(33.4×24.4cm)크기에 유화로 짧은 시간 단숨에 그린 드로잉 형식의 그림으로 빵,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잠자는 뮤즈>, 백제시대 성주사지 출토의 불두(佛頭)를 그린 3점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잘 익은 빵을 보았고, 그것에 연상되는 <잠자는 뮤즈, 1910>를 떠올렸으며, 백제시대의 불두의 깨진 형상 속에 미소 짓는 모습을 연결하였다. 빵을 발견한 직후 순간적인 일이었다. 빈 캔버스와 덩어리, 그 속에서 찾고자했던 웃는얼굴의 본질을 희미하게나마 발견한 일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의 바위에서 느낀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웃음을 표현한 유물이나 작품들은 흔하지는 않지만 자료들은 꽤 많다. 2013년 대영박물관에서 찾은 웃음에 관한 자료들은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최근 터키 가지안텝(Gaziantep) 지방에서 기원전 1700년 전의 '스마일 냄비'(oldest smile)라 명명된 유물에 스마일마크의 원형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인류사의 구석에 연연히 이어오는 웃음의 표현들을 발견하는 순간, 내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 관찰자가 되어 좀 더 신중해 지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백제와 신라, 가야 등의 유물에서 웃음이 보이고, 조선의 탈에서는 웃음의 큰 정점을 만든다. 더 나아가 동양문화권 부처의 미소는 웃음의 본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며, 인간이 해탈세계의 경계에 이르는 최고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웃는얼굴>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린다. 웃는얼굴을 생략과 과장을 통해 극대화시킨 결과물이다. 시작당시 “왜 그런 싼티(?)나는 소재로 작업을 하느냐”는 쓴 소리에도 그냥 그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던 터다. 그렇다고 치료니 뭐니 하는 시류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맑은 웃음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이런 접근은 앞에서 말한 ‘덩어리’가 웃음을 띤 것으로 읽혀졌으며, 내가 보며 느끼는 그 웃음을 그림으로 표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것이다.
[처음, 웃는다]는 것은 많은 상상을 가져온다. 큰 덩어리 하나를 들추었을 때 그 밑에서 들어난 신세계의 오붓한 새싹들을 보는 느낌이다. 내 그림들이 이러저러한 세상에 던져진 이상, 좋은 말만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런 해풍(害風)정도야 당연한 재미로 느껴야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사람뿐만 아니라 나귀도 그리고, 스치는 풀과 꽃도 그리고, 돌들도 그리자. 하지만 최고의 소재는 사람의 웃음이다. 웃는얼굴을 그리며 가끔 갓난아기의 첫 웃음을 생각해본다.
■ 2017.12 이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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