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용
1996 동대문운동장II 2016, Digital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
1995 삼풍백화점 2016, Digital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
1996 잠실 주공아파트 2016, Digital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
2005 은평뉴타운 2018,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
1996 무악재개발지구 2018,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
1995 성수대교 2018, Pigment print, 80x120cm
조준용의 네 번째 개인전 «4.9mbSeoulscape»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 더욱 집중해서 시공간의 심리적 속도를 측정하고, 현재의시간 감각을 환기시킨다. 4.9mb 용량으로 남아 있는 과거 서울 사진을 비-장소적 공간으로 설정한 서울을 연결하는 순환도로에 영사하고, 지나가는차량 위에 남겨지는 잔상을 촬영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과거의 거리, 시간, 그리고 방향을 통하여 서울의 속도를 측정하는 목표를 세운다. 4.9mb의 작은 용량의 사진들은 199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경관기록화사업으로 촬영한 2만 5천여 장의 서울연구 데이터 서비스에서검색하여 축출되었다. 여기에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 뿐만 아니라 뉴타운개발의 시초였던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 최초 종합경기장 동대문 운동장,구 국립중앙박물 등의 화려했던 시절의 모습들 또한 볼 수 있다. 작가는 '화려했던 과거의 시절이 모두 초라한 기록 사진으로 정렬되어 회상하게만 할 뿐, 현재의 그 어느 곳에도 그들의 흔적이 연결되지 않는다'고말한다. 이어서 '지나가는 차량 위에 아주 잠시맺히는 잔상을 사진으로 고정하여 서울이라는 시공간의 심리적 속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덧붙여 설명한다. ■ 갤러리 룩스
타인의 기록과 비장소의 중첩이 만들어낸 시공의 좌표에 대하여
어두운 배경의 도로가 있다. 그러한 배경 이미지 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놓칠세라, 또는 촬영자가 현장에서 사진을 통해 바라보던 당시의 시간의 총량을 기록하듯 빛의 궤적이 수를 놓으며 흐르고 있다. 그리고 주어진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이미지의 구성상 중심을 이루는 어떤 이미지가 배경의 전경을 장식하며 흐릿하게 중첩되어 있다. 조준용의 사진은 일반적으로 공통된 하나의 배경 - 도로와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는 이미지가 중첩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작가의 사진에서 사각 프레임 안에 담기는 이미지의 형식적 구조는 작가의 과거작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띤다. 예를 들면 2015년의 개인전 (아마도예술공간, 2015)는 빛의 흐름이 수놓은 도로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수첩에서 발췌한 이미지를 오버랩하여 하나의 풍경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구성 안에서 첫째로 주목해볼 만한 것은 배경의 전면으로 유령처럼 반투명하게 떠 있는 이미지 (위에서 언급한 이미지의 구성상 중심을 이루는 흐릿한 이미지) 로부터 볼 수 있는 작가가 취하는 시선/ 심리적 거리이다. ‘Memory of South, 416km‘ 연작에서는 일반적인 풍경 사진과는 사뭇 다른,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을 들춰보는 듯한 분위기의 이국적인 풍경과 군인의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이미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아버지가 직접 찍은 사진과 당시 다른 이가 찍은 사진이 담긴 실재 앨범에서 발췌한 것으로, 특정 시대를 대변하거나 역사책의 한 챕터를 장식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지의 구성에서 배경이 되는 고속도로, 그중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경부고속도로와 맞물리며 한국의 근대사와 독재정권, 국가개발정책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준용의 시선이 취하고 있는 거리의 문제이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주요한 사건과 장소를 주요 이미지로 다루며, 그것을 하나의 평면 위에 새롭게 재구성하여 사용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금은 더 개인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형성된 사유의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근대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특정 사건과 역사를 읽기보다는 타인에 의해 옮겨진 미시적 기록에 기대어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시선이다. 그의 사진가적 시선과 앵글에 의해 다시 사각의 프레임으로 옮겨진 기존의 사진 이미지는 근대사의 크고 작은 주요 사건, 사고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보편적 책임감이나 윤리의식, 깊은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거대 맥락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렌즈를 통해 외부의 현상과 풍경을 관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가 다루고 있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기록된 풍경은 적절한 시선의 거리를 담보하며 시공을 초월한 풍경이 된다.
작가적 시선의 거리를 조율하기 위한 통로로써 타자의 기록 -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최근의 연작 <4.9mb Seoulscape>(2017)에서도 이어진다. 전작과 동일한 이미지 구성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연작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시대의 상흔을 간직한 장소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닌 특정 기관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기록한 사진 모음에서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조준용은 서울시가 온라인을 통해 제공하는 도시경관 기록화사업[1]의 일환으로 기록한 약 2만 5천 장의 사진 중 일부를 취사선택하여 사용한다. 이를테면 ‘삼풍백화점’, ‘동대문운동장’, ‘구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이 한국 근대사의 사회/ 정치/ 문화적 맥락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획득하는 장소에서부터 ‘아현동 재개발 구역’이나 ‘청계고가’, ‘청량리 홍등가’와 같이 도시재개발사업에 따라 소멸된(되어가는) 장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작가는 이러한 근현대사의 궤적에서 주요한 족적을 남겼던 서울의 장소와 지역이 온라인상에서 4.9mb의 용량의 디지털 이미지로 환원되어 글자 그대로 ‘전시’되는 방식에 주목한다.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장소가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되어 특정 목적 안에서만 기능하게 되는 방식.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안에서 다층적으로 엮이며 끊임없이 특정한 의미를 산출하던 장소가 저용량의 이미지로 환원되어 특정한 텍스트와 기호로만 존재하게 되는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다. 최근작을 중심으로 보자면, 과거 타인의 기록에 기대어 관조하던 작가의 시선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외부의 풍경과 심리적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1990년대 당시 미성년자였기에 주체적 개인으로 시대의 흐름을 이끌 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보고 느꼈던 시간의 축을 공유하는 대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의 변화는 관조의 시선에서 작가 스스로 뒤처져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유예하기 위한 능동적 제스처로 바꿔놓게 된다.
조준용의 작업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소는 ‘도로’이다. 그의 사진에서 일관되게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도로이며, 의미의 바탕으로서 앞서 언급한 중심의 이미지와 끊임없이 연동하는 것이 바로 이 도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두운 배경으로 전면의 이미지를 매혹적인 빛의 율동과 함께 담아내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을 관통하는 전면의 이미지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개념적 바탕이자 과거의 이미지를 현실의 차원에서 묶어내는 중첩된 시공의 무대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오제(Marc Augé, 1995)는 과거와 분리되어 항상 현재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고 개념화하였다. 개개인의 경험에 의해 매개되는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와는 대비되는 개념인 이 ‘비장소’는 텍스트나 이미지에 의한 매개가 중심이 되는 곳이다. 또한, 인간에 의한 직접 경험 없이 단어나 이미지에 의해 매개되어 경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여기에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기억이나 경험, 역사가 축적되지 않는다. 조준용의 작업에서 도로는 현재성이 지배하는 익명의 공간이며, 빛이 수놓은 궤적이 암시하듯 고정되지 않고 유동하는 시공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미지와 텍스트로 매개되는 비장소의 관점에서 조준용 작업의 배경 - 도로를 보자면, 장소의 성격을 상실한 채 과거의 시점에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되어버린 전경의 이미지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개념적 배경으로 기능함을 알 수 있다.
전경과 배경의 중첩, 과거의 장소와 현재의 장소라는 두 개의 시간 축의 충돌, 타인의 기록과 익명성의 공간을 하나의 사각 프레임 안에 위치시키는 것, 이러한 중첩의 풍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준용의 시선은 고유한 상징성과 정체성을 보유했던 장소가 그 장소성의 상실과 함께 특정 목적에 종속된 하나의 풍경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양가적 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타인의 기록을 경유함으로써 시선의 거리를 확보한다. 작가는 이렇게 대상을 향한 시선과 심리의 거리를 조율함으로써 지난 시간에 대한 개인적 상념과 소멸해가는 과거에 대한 보편적 책임의식을 가로지르며, ‘지금, 여기’라는 우리의 현재적 시간의 좌표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시공을 압축하여 평면의 프레임 위 현재의 시간에 고정시킴으로써, 과거의 시간 위에 쌓아 올려진 현재, 과거의 역사로부터 유리될 수 없는 현재를 환기하고자 한다. 이렇게 시공의 추이를 쫓는 조준용의 시선은 소멸된 과거를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시선으로 보듬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1] 도시경관 기록화사업은 도시의 빠른 발전 아래 변화하는 도시의 경관을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향후 도시의 지속적인 도시경관 관리와 아름다운 경관형성을 위한 기초로 수행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으며, 서울시는 1995년 시책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하였다. ■ 김성우 (전시기획 / 아마도예술공간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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