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Silence
2018.03.07 ▶ 2018.03.19
2018.03.07 ▶ 2018.03.19
전시 포스터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V 캔버스에 아크릴, 200×300cm, 2017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VI 캔버스에 아크릴, 200×150cm, 2017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VII 캔버스에 아크릴, 200×150cm, 2017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Ⅲ 캔버스에 아크릴, 160×390cm, 2016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VIII 캔버스에 아크릴, 150×200cm, 2017
정유미
The wall in the mind Ⅳ 캔버스에 아크릴, 150×190cm, 2016
보이지 않는 벽에 관하여 / 최정윤 (독립 큐레이터)
흰색 고요(silence), 푸른색 차가움…. 평면을 바라보는 경험에서 우리는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시각적 경험을 토대로 청각적 혹은 촉각적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심리적인 경험까지 이어진다. 한 점의 그림으로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갈래의 가지를 치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어떤 회화 작품을 보면 특정 작가가 바로 연상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경우, 혹은 붓 터치나 색감이 독특하게 일관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정반대로 자신이 쌓아 온 기존 작업 스타일의 제약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작가도 있다. 정유미 작가는 후자에 더 가깝다. 그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사람과 사람 혹은 다른 대상 사이의 관계, 안과 밖의 경계와 그 차이, 기억을 좇아 재구성한 시공에 관해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하지만 시기에 따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사용한 재료, 기법의 측면에서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서 사람도 변하듯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에는
전시에 출품된 캔버스 작업은 모두 아크릴 물감을 재료로 사용했다. 물감의 두께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붓 자국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평평하게 채색되었으며, 빈 공간 없이 매트하게 물감이 발라졌다. 대상은 명암법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그려졌는데, 직육면체들 사이에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형태들이 한 덩어리로 엮이지 않고 개별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측면이나 바닥면 위주로 짙은 색으로 처리했다. 다시 말해, 정유미가 화면 안에 담은 대상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상 같지만, 동시에 절대로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화면 안을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색, 형태, 표현 방식보다도 이 시리즈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작품의 크기다.
전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몇 점의 드로잉이 있다. 정유미는 런던(2012~2014)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아이슬란드(2015)와 노르웨이(2016)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3개월여씩 체류하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스스로를 위치시켰다. 그 안에서 차근차근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마치 일기를 쓰듯 드로잉으로 남겨 모아두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변화된 환경에 반응하는 자신을 오롯이 느껴보는 경험 말이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드로잉하기를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드로잉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선과 색, 그리고 명확히 식별하기 어려운 형태로 치환된 행위의 집적이다. 커다란 흰 캔버스 앞에서 선 페인터는 모두 같은 고민에 직면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질문 말이다. 정유미와의 대화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그는 무엇인가를 결코 보고 그리지 않으며, 어떤 것을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머리로 완성된 대상을 쫓지 않는 대신, 그는 붓과 연필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드로잉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 이는 끊임없이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은 정유미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한다.
1982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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