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그림
2018.04.18 ▶ 2018.04.29
2018.04.18 ▶ 2018.04.29
이채연
엄마여행 한지에 분채, 150x115cm, 2018
이채연이 그려낸 책장으로 보이는 것들 커튼, 케이크, 마트로시카와 금줄, 달력, 복주머니, 아이 구두 외 다양한 형태들은 멀리서 한눈에 관찰하면 예쁘다, 귀엽다 등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을 하나씩 보고 있으면 이내 그 감정들은 사라지고 왜 이렇게 까지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또 한 작품 '엄마에게’를 보면 부엌 한쪽에 창문 넘어 정원이 보여 일상의 평온함이 있으나 표정을 알 수 없는 여인의 초상으로 그림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복잡한 클리셰가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로 파, 달걀은 단순하게 얘기하면 작가의 분신이다. 파는 입시 때부터 접해왔고 결혼과 함께 가정주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사물은 일상이 전제이다. 아름다운 자태로 선으로 자리하다 이내 시들어 마치 우울하다 말하는 것처럼 만화 속 캐릭터처럼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선보인다. 달걀 역시 안락함을 꿈꾸며 쉬고 있는 모습이지만 주변에 흐르는 자세한 묘사 없이 표현된 것으로 지나간 사건과 현재의 시점이 모호하게 겹친 듯 보인다. 기억속의 감모여재도에서 영감을 받고 시작된 작품들은 일상의 시선이 있으나 서사 없는 경계를 오간다. 사건, 사고를 뉴스로 접하고 때로는 작가의 경험이 포함되 그림들은 장르와 장르를 오가며 예술작품이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 없는 막연한 동경도 없애준다. 매체로서 동양화 안료를 사용하고 있으나 스며듦 이라기보다 색칠됨으로 보이는 서양화 표현에 더 근접하며 화면을 가득 메우는 구도 처리란 초현실에 가깝다. 대학에서 유리를 전공하고 우연히 접한 민화와 뜨개질, 일로서 접한 일러스트는 이 작가에게 하나의 매체로 작품을 완성 짓게 하지 않는 좀 더 다양한 표현을 갔게 했으며 거창하지 않고 약간은 우울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조금은 민감한 문제. 작가의 유년기 시절. 트라우마도 포함된 기억은 극복됨이 아닌 반복되는 현실로서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이런 문제가 작품으로 변화한 듯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예술은 관찰되는 사실을 뒤로하고 공간 밖 또 다른 현실, 과거의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품과 함께 텍스트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이 공존하는 동시대 예술이 나오기까지 기나긴 역사적 사건 중 근대시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로 인한 과학발전, 자본주의의 재정립은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인 경향으로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개인이 극복하면 그만이다. 마크로스코, 잭슨폴락, 뒤샹, 프리다칼로, 피카소 등 우리의 기억속에 미술사의 상식처럼 등장하는 유명예술가들의 작품을 떠올리면 정작 조형성 보다 과거사나 주변의 흐르는 역사적 사건이 더 어필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면엔 보통 사람과 비교했을 때 경험 보다는 겪음으로 인한 현상들을 내면과 섞어 작품에 행위로서 강하게 표출 했기에 난해함은 당연하다.
‘하루하루는 존재보다 비존재를 더 많이 품고 있다. 예를 들면 4월 18일 화요일이었던 어제는 실제로 좋은 날이었다. “being"(존재)에서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존재의 순간들」중에서-
작품 ‘나의 퀘란시아1.2’ 처럼 형태가 명확하게 관찰된다는 점에서 감상자는 그 앞에서 무엇을 전달받을 것 같지만 쉽게 전달받는 내용이란 없다. 책장을 가득 메운 도상들은 시간상 나열이 아닌 서로 관계없는 채움으로 추상에 더 근접한다. 원근법 처리없이 그때의 기억은 개인이 다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서로 자연스레 도상들은 섞인다. 마치 그 옛날 예측 못한 겪음으로 인해 흘렀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처럼 나름의 공허함과 숭고가 있다. 강함과 동시에 잔잔하게 흐르는 색채와 더불어 동서양의 키치적 형태 표현은 목적 이라기보다 결론짓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관찰자의 태도로서 미처 떠올릴 수 없는 가족 간의 관계 그리고 다수와 개인의 관계 형성으로 인한 감정의 오고 감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매일을 살고 각자의 선택된 방식의 삶이 있지만 늘 한결같지 않음을 안다. 어느 땐 슬프고 상실감도 있다. 어느 때 기쁘고 행복을 바라지만 개인의 정서, 감정이란 늘 변화 하기에 그걸 진지하게 실존이라 부른다. 미련한 그림이라 칭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일련의 현상들을 개인의 문제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얽히고설킨 다수의 문제로 형태들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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