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돌의 시간
2018.05.16 ▶ 2018.06.30
2018.05.16 ▶ 2018.06.30
전시 포스터
박은선
Simmentria combinazione
박은선
Continuazione - Duplicaz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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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divisione 35_2
박은선
Duplicazione contin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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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plicazione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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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nite Column - Accretion - Intension_1
박은선
Infinite Column - Accretion - Intension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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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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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re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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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balls - Accre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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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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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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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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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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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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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Infinite Column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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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z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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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na infinita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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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na infinita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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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na infinita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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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 sf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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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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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divisione 04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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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rescimento - Colona infinita III
숨 쉬는 돌의 시간
“모든 예술은 헤르메스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헤르메스적인 시인은 이해하 지 않는다. 그는 본다.” - H. 롬바흐
조각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유난히 질료에 집착하는 일화들이 적지 않다. 로댕이 마음에 드는 대 리석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형상을 떠올렸다는 얘기는 창작은 물질과 개념의 충돌로 나타나는 불 꽃과 다름없어 보인다. 모더니즘 조각의 기초를 완성한 브랑쿠시는 사물성을 강조했다. 조각의 사 물성은 고전 조각의 전통인 좌대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을 마련한다. 또한 표면의 광택은 사물성을 극대화하는 주요한 효과로 작용하고 이후 미니멀리즘 조각의 특질 중 하나가 된다. 브랑쿠시 이 후 조각의 질료는 더 이상 전통에 머물지 않고 산업화 이후의 사회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고전조각의 영향권에서 이탈하고 만다. 하지만 고전조각의 본질이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다. 아 무리 과거를 해체한다 하여도 그것의 개념과 형식을 재배치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미니멀리즘 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가 펼친 실험 은 전통을 무조건 거절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아르테 포베라 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탈리아 미술만의 특성들을 적극적으로 실험의 요소로 끌어들여 실존주의적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 로 활용한다. 그들은 양식사로서의 고전미술을 배제하고 산업사회의 산물과 예술의 원소로서 재 단되지 않은 바위, 점토, 대리석 판 등을 끌어들여 인간과 사물이 맺는 직관적인 관계성을 제시하 였다. 이른바 서구미술의 모더니티는 과거와 현재, 의미와 반-의미, 형상과 비-형상과 같은 안티- 테제를 기반으로 예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묻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한 편 한국의 전후 현대미술은 서구미술이 처절하게 겪은 과도기를 겪지 않고 그들의 미술적 기틀 안에 한국/동양의 정체성과 의미를 적용 혹은 완곡하게 번역하는 과정으로 형성되었다. 요컨대 이 렇듯 혼합주의식으로 형성된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연구는 이 글의 몫은 아니다. 그러나 모더니즘 조각의 흐름을 거칠게나마 약술한 이유는 박은선의 조각을 미술사란 종적 관점과 경계를 넘어선 횡적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함이다. 알다시피 박은선은 한국에서 서구미술의 기초를 배우고 이후 대리석에 이끌려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그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활동하 고 있으며 그 시간만큼 서로의 차이가 작가의 삶으로 체현되는 과정이었고, 이는 오롯이 조각적 세계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박은선의 조각 세계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그 전에 서두에 모더니즘 조각 과 질료의 관계 그리고 미니멀리즘 조각을 언급한 까닭은 무엇보다 박은선 조각에서 발견되는 모 더니즘 미학의 속성이 어떻게 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을 아우르고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는 모더니스트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고전주의를 거절하는 것과 달리 박은선은 무한과 불멸이라는 생 너머의 세계를 조형적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서구 고전주의 미학의 세계관은 물론이고 생의 순환이란 동양적 사상과도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서구 모더니즘 미학은 고전주의와 달리 의미를 예술 바깥으로 뱉어내고자 했다. 고전주의 미학이 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며 교화와 계몽 을 추구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모더니즘 미술에서는 윤곽과 형상을 지우고 물질의 초월성 을 경계하여 물질 그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여전히 사람 들은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형상이 없어도 표현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작가들은 그것마저 도 제거하고자 한다. 그렇게 미니멀리즘 미학은 말 그대로 어떤 표현도 감정도 드러내지 않겠다 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브랑쿠시 조각의 광택을 떠올려보자. 이것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이 조각 을 의미가 아닌 철저히 하나의 사물로 봐달라는 요구가 아니었을까? 박은선의 조각 역시 외형적 으로 미니멀리즘의 특성들을 공유한다. 형태의 단순성, 반복성, 기하학적 형태와 표면의 광택 등 이 그러하다. 반면 차이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바로 조각 내부의 균열이다. 균열이 생긴 대리석의 불규칙적 표면은 의도와 무관하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공간에 다루는 태도 에도 차이가 드러난다. 미니멀리즘 조각은 세워지기보다는 서있거나 기대어 있다는 묘사가 보다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편 박은선의 조각은 브랑쿠시의 <무한주>를 오마주라도 하는 것처럼 하 늘을 떠받든 신전의 기둥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그의 조각 세계는 동양과 서양, 고전과 모던, 균형과 불균형, 통제와 자율성 등이 대립항이 자연스레 한 몸으로 공존한다.
대립항의 공존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아마도 간략하게나마 제작 방식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는 색이 다른 두 개의 대리석 판을 한 겹씩 쌓아올리면서 동시에 원형, 사각형, 원반 과 같은 조각의 외형을 마름질한다. 이 과정은 미니멀리즘 조각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미니멀리스 트들은 의미를 배제한 채 기계적인 반복을 의도한 반면 박은선은 제의에 가까운 수행적 태도에 무게를 둔다. 겉보기에는 유사해보이지만 미니멀리스트는 형식 그 자체를 의미로 여긴다면 박은 선은 형식에 의한 정신적 충만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제작 방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 다보자. 판을 쌓고 형태를 마름질하는 반복적인 과정 중에 일종의 ‘접목(graft)’ 과정이 개입된다. 여기에서 접목이란 판들이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일률적으로 회전되다가 새로운 중간에 새로운 회전축이 첨가되는 방식이다. 식물의 접붙이기를 연상하면 된다. 그의 조각에 있어서 접목은 화음 이 쌓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접목은 기하학 형태의 반복적 움직임으로 무한을 향하 는 조형적 질서 안에 나무의 뿌리나 줄기가 여러 갈래로 뻗고 다시 합쳐지기도 하는 자연의 흐름 과 같은 예측할 수 없고 불확실한 역동성을 덧붙여준다. 여기에 또 다른 방식의 접목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박은선 조각의 가장 대표적인 조형적 특성이자 핵심적인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 ‘균열’을 들 수 있겠다. 균열은 정확히 재단된 대리석 판을 의도적으로 깨트림으로서 우연의 효과 를 작업 과정 안에 끌어들이는 공정이자 행위로 볼 수 있다. 균열은 이미 다수의 평론가들로부터 박은선 조각의 철학적 차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미학적 장치”로 해석되었다. “불규칙하게 파열 된 틈으로 인간의 숨결과 생동감을 불어넣고 문명과 인간의 공존을 시도”(류병학), “의도된 파열과 균열은 완정성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자 물질 자체가 갖는 시간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최태만), “유연한 경도의 균열은 무한을 향해 솟아오르는 성장이라는 가능성 사이에서 취약함을 드러냄으 로써 생의 진리를 드러냄”(루치아노 카라멜), “균열을 통하여 크로노스 진동의 흔적과 물질문명에 대한 덧없음의 통찰”(도메니코 몬탈로), “형체의 설계와 파괴 사이의 대화, 그 틈새를 통하여 인류 의 생성과 파멸의 기억을 환기”(가브리엘레 시몬지니). 평론가들은 균열을 문명과 자연, 축적과 파 괴의 역사, 시간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시간으로 축적되는 지층을 발견한다. 자크 데리다는 접목이 란 이론을 통해 해체주의 글쓰기가 어떻게 의미의 겹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쉽게 설 명하자면 일종의 해제나 주석의 효과와 비슷한데, 글쓰기 안의 또 다른 글쓰기를 삽입(접목)시켜 의미의 완성을 방해하거나 결정적 해석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박은선에게 균열은 해체주의식 접 목으로 기능한다. 조각 내외부를 가로지르는 균열은 얼음판 위를 매끄럽게 질주하는 움직임 속에 자잘한 파열음을 삽입시켜 자의식을 깨트리는 불교적 수행이고 객관화된 논리적 층위 사이에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연결시키는 주관적이고 자발적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균열은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인 셈이다.
독일 철학자 롬바흐(Heinrich Rombach)에 따르면 돌은 중요한 세계의 존재인데 예술을 상징하는 헤르메스가 바로 돌의 신이라고 한다.
“문헌학적 추측에 의하면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고대 세계에서는 이정표와 경계석으로 알려져 있 었던 돌더미(Herma, 퇴적석, 돌탑)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종종 이러한 현상을 나무 표 시판 대신에 돌더미가 여행자를 안내하는 고산지대에서 접할 수 있다. 전에는 그 돌더미들이 헤 르메스 신에게 바쳐졌으며 그 위에 돌을 하나 더 올려놓는 여행자에게 행운의 축복을 약속해주었 다.”(『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서광사, 79~80쪽)
박은선은 조각을 배우면서 돌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평생의 벗인 돌을 좇아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리고 마치 돌탑을 쌓아올리듯 25년간 같은 행위를 반복하 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고, 매일 같은 이웃과 어울린다. 역사학자 유발 하 라라는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지역 유적지에서 50톤이 넘는 폭이 자그마치 30미터가량 되는 거대한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로 추측한다. 우리는 이처 럼 과거를 통하여 돌을 깍아 세운 비석이 단지 죽은 자연 위에 새긴 의미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삶 이후의 삶을 위한 기원이자 기억의 존재임을 배울 수 있다. 박은선의 조각은 고대의 기념비처 럼 어떤 바람이 담겨 있다. 돌탑을 쌓는 단순한 행위가 억겁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에도 존재하 듯, 그의 조각의 틈-균열은 단단한 세계를 지탱시켜주는 소우주와 같다. 그곳은 또한 동양과 서양, 무한이란 서양의 진리와 순환이란 동양의 진리가 마주치는 시공간이다.
정현 (미술비평, 인하대)
196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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