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마상청앵 馬上聽鶯_unknown Light colors on paper, 117.2×52.0cm
신윤복
미인도 美人圖_unknown Ink and color on silk, 114.0×45.5cm
신씨(申氏 1504-1551)
포도 葡萄_unknown Ink and wash on silk, 31.5×21.7cm
정선
풍악내산총람 楓岳內山總覽_unknown Ink and color on silk, 100.8×73.8cm
김홍도
무이귀도 武夷歸棹 _unknown Light colors on paper, 119.0×52.6cm
이정(李霆 1554-1626)
풍죽 風竹_unknown Ink and wash on silk, 127.5×71.5cm
정선
정양사 正陽寺_unknown Light colors on silk, 31.2×24.2cm
이징(李澄 1581-1653이후)
연지백로 蓮池白鷺_unknown Light colors on paper, 31.0×21.0cm
김득신
야묘도추 野猫盜雛_unknown Light colors on paper, 22.4×27.0cm
장승업
동자세동 童子洗桐_unknown Light colors on silk, each 142.5×34.0cm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적설만산 積雪滿山_unknown Ink and wash on paper, 22.8×27.0cm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왜곡되고 단절될 위기를 맞는다. 이에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은 민족문화재의 수집 보호가 뒷날 문화 광복의 기초를 이룰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문화재의 수집 보호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문화보국(文化保國)’,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일종의 문화적 독립운동이었다.
그런데 1937년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며 우리 민족 문화를 본격적으로 말살하려 하자 간송 선생은 민족 문화재의 수호 시설이 시급한 것을 직감하고 박물관 건립을 서두른다. 그 결과 1938년, 음력 윤 7월 5일(양력 8월 29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華閣)을 준공하게 된다. 지금부터 꼭 80년전 일이었다. 이후 보화각은 광복과 6⋅25 전쟁 등 격동과 파란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민족문화재의 수호 기능을 손색없이 감당해 왔었다. 그러던 중 간송께서 1962년 타계하신 후,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하고 간송의 유지를 받들어 민족미술의 지킴이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보화각 설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간송이 수집했던 문화재 중 조선시대 그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자리이다. 간송이 수집한 회화 작품들은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시대별로 최고의 성가를 이룩했던 대가들의 걸작이 대거 망라되어 있다. 세간에는 간송의 수집품만으로도 조선시대 회화사의 대강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간송 선생이 조선시대 그림을 이처럼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왜곡과 폄하가 가해졌던 부분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였기 때문이다. 이에 간송은 조선시대 문화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조선의 문화 역량을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정선,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린 조선후기 영정조대의 작품은 식민사학으로 왜곡된 조선후기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적 근거라고 확신했다.
바로 이점이 ‘보화각 설립 80주년’이자 ‘간송미술관의 첫 지방 전시’ 라는 기념비적인 전시를 조선의 명품 회화로 꾸미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38명의 화가들이 남긴 명품 회화 100점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를 지키내기 위해 일생을 바친 간송 선생의 삶과 정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과거 역사의 자취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 안견(安堅, 1418-?)
자 가도(可度), 호(號) 현동자(玄洞子), 본관은 지곡(池谷)이다. 화원으로 벼슬은 호군(護軍)을 지냈다.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명가(名家)로 각체(各體)에 두루 능했다. 세종년간(1419-1450)에 주로 활동했으며, 조선전기 화원화풍을 정립시켰다.
2. 강희안(姜希顔, 1418-1464)
자 경우(景遇), 호 인재(仁齋),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세종23년(1441)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호조참의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시서화 삼절로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를 썼으며, 그림은 남송원체화풍의 소경산수인물화에 능했다.
3. 신씨(申氏, 1504-1551)
호 사임당(師任堂),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진사(進士) 신명화(申命和)의 딸이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모부인(母夫人)이다. 경사(經史)에 밝고 언행이 뛰어났으며 시서화에 두루 능했다. 초충(草蟲) 포도(葡萄) 산수(山水) 어해(魚蟹)를 잘 그렸다.
4. 이정(李霆, 1554-1626)
자 중섭(仲燮), 호 탄은(灘隱), 세종의 현손(玄孫)으로 봉호(封號)는 석양군(石陽君)이다. 시서화 삼절(三絶)이며, 우리나라 역대제일의 묵죽화가로 꼽힌다.
5. 이징(李澄, 1581-1653이후)
자 자함(子涵), 호 허주(虛舟)·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의 서자(庶子)로 벼슬은 주부(主簿)를 지냈다. 산수(山水) 인물(人物) 영모(翎毛) 등 여러 화과(畵科)에 두루 능통하여 부친인 이경윤을 능가하는것으로 평가받았다.
6. 김명국(金明國, 1600-1662이후)
자 천여(天汝), 호 연담(蓮潭)·취옹(醉翁), 나중에 명국(命國)으로 개명했다. 화원으로 교수(敎授)를 지냈다. 도석인물(道釋人物)을 특히 잘했으며, 갈필(渴筆)과 독필(禿筆)로 호방장쾌(豪放壯快)한 필선을 구사했다. 일본에까지 화명이 높아2회에 걸쳐 일본 사행(使行)을 수행했다.
7. 정선(鄭敾, 1676-1759)
자 원백(元伯), 호 겸재(謙齋),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종2품)에 이르렀다. 산수 인물 화훼 초충에 두루 정통하였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창안한 조선 후기 제일의 대가(大家)로서 토산(土山)과 석산(石山)이 어우러진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북방화법의 특장(特長)인 필묘(筆描)와 남방화법의 특장인 묵법(墨法)을 조화롭게 구사하여 음양조화(陰陽調和)와 음양대비(陰陽對比)를 통해 형상화 해내었다.
8. 조영석(趙榮?, 1686-1761)
자 종보(宗輔), 호 관아재(觀我齋),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군수(郡守) 조해(趙楷)의 아들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도정(都正)을 지냈다. 산수 인물에 능했으며, 특히 속화(俗畵)에 장처(長處)를 보였다. 조선의 풍속화풍(風俗畵風)을 정립했으며, 시서화 모두 능했다. 겸재(謙齋)?현재(玄齋)와 더불어 사인삼재(士人三齋)로 불린다.
9.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자 이숙(?叔), 호 현재(玄齋),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죽창(竹窓) 심정주(沈廷?)의 아들이다. 어렸을때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으나, 겸재와는 달리 명(明)의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등 오파화(吾派畵)로부터 시작하여 동원(董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남종화(南宗畵)의 본원(本源)을 궁구하여 남종화의 조선화(朝鮮化)에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수 이외에도 화훼 초충 영모 등에 두루 능했다.
10. 변상벽(卞相璧, 1730-1775)
자 완보(完甫), 호 화재(和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화원으로 벼슬은 곡성현감(谷城縣監)을 지냈다. 닭과 고양이 그림에 탁월하였으며, 초상(肖像)에도 당대의 국수(國手)로 꼽혔다.
11. 김홍도(金弘道, 1745-1806경)
자 사능(士能), 호 단원(檀園),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만호(萬戶) 김진창(金震昌)의 증손이다. 화원으로서 벼슬은 현감(縣監)에 올랐다. 신선(神仙) 인물(人物) 불화(佛畵) 화훼(花卉) 영모(翎毛) 진경(眞景) 풍속(風俗) 등에 두루 능했다. 풍속화는 관아재 조영석을 계승하고, 산수화에서는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을 계승 발전시켜, 독자적인 경지를 이룩함으로써 정조(正祖)대 최고의 화가로 평가된다.
12.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자 현보(賢輔), 호 긍재(兢齋),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의 조카이자 자연암(自然庵) 한종일(韓宗一)의 생질(甥姪)이다. 화원으로 벼슬은 초도첨사(椒島僉使)를 지냈다. 단원을 계승하여 풍속에 능하였고, 영모와 산수에도 뛰어났다.
13. 신윤복(申潤福, 1758-?)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화원인 첨사(僉使) 신한평(申漢枰)의 아들이다. 화원으로 첨사를 지냈다. 전신(傳神) 풍속(風俗)에 뛰어나 정세한 필치에 진채(眞彩)를 사용하여 인물의 정태(情態)를 핍진(逼眞)하게 묘사해 내는데 탁월한 명가(名家)로 춘의풍속도(春意風俗圖)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다.
14.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자 원춘(元春), 호 추사(秋史)·완당(阮堂), 본관은 경주(慶州)로 유당(酉堂) 김노경(金魯敬)의 아들이다. 벼슬은 참판(參判)에 올랐으며, 청(淸)의 옹방강(翁方綱), 완원(阮元)을 이은 북학파(北學派)의 거벽(巨擘)으로 고증학(考證學)을 대성(大成)하고 금석(金石) 경학(經學) 문자(文字) 사학(史學) 지리(地理) 등에 두루 정통했다. 조선의 전통서법을 익힌 위에 명(明)에서 한예(漢?)에 소급하는 수련과정을 거친 다음 팔분예법(八分?法)에 근본을 두고 여러 서체의 특장을 겸취하여 추사체(秋史體)를 이루었다. 일세를 풍미한 조선후기의 대가로 중기의 석봉(石峯) 한호(韓濩)와 쌍벽을 이룬다.
15. 장승업(張承業, 1843-1897)
자 경유(景猷), 호 오원(午園), 본관은 대원(大元)이다. 화원으로 벼슬은 감찰(監察)을 지냈다. 청대(淸代) 여러 화풍을 수용하여 산수 인물 영모 절지(折枝)등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晋)에 의해 그의 화풍이 계승되어 우리나라 근대 회화의 토대를 이루었다.
1676년 출생
1686년 출생
1745년 출생
1754년 출생
1758년 출생
184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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