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노력 An Elegant Endeavour
2018.06.20 ▶ 2018.07.14
2018.06.20 ▶ 2018.07.14
차영석
우아한 노력 장지에 연필, 137×200cm, 2018
차영석
우아한 노력 장지에 연필, 95×71cm, 2018
차영석
우아한 노력 장지에 연필, 95×71cm, 2018
차영석
우아한 노력 검은 종이에 연필, 금색펜_108.5×78.5cm, 2018
차영석
망각한 변형 장지에 연필, 컬러펜, 수채, 115×109cm, 2018
차영석, 우아한 노력
단순한 (사물) 그리기로 환원될 수 없는, 그렇게 그리기를 둘러싼 숱한 어떤 과정들을 수반하고 있는 차영석 작가의 일련의 작업들은 이를테면 그저 잘 그린 그림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작가적 주체성과 긴밀하게 결부된 내용상의 시도만이 아니라 형식적인 실험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견 우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계획적으로 무언가를 농밀하게 쌓아가고 있는 작업들로, 그 순차적인 전략적 설정들이 기저에 깔려 있는 시도들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난한 그리기의 여정 속에서 작가 스스로 역시 이러한 숙성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변해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모종의 혐의마저 갖게 한다. 그렇기에 의뭉스럽고도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이번 전시와 연작들의 동명의 제목인 '우아한 노력'은 비단 전시와 작업들만을 지칭하는 것만이 아닌 결국은 작가의 그리기 행위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일상에 자리하는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부터 시작해서 세상 속에서의 그러한 사물들의 자연스럽지만 이질적인 존재 형태에 대한 존중과 그에 부합하는 그리기의 형식을 부단히 고민하고 실험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알게 된 스스로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취향들, 그리고 어느 순간 단단해지고 있는 작가 특유의 그리기 방식과 스타일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작가는 그리기의 그 힘겹고도 묘한 과정을 거듭하여 종국에는 이들 행위 모두를 '우아한 노력'으로 이끌어내면서 쉼 없이 한 켜 한 켜 그 간극들을 새롭게 잇고 적층시켜 왔던 것이다. 그저 작가 앞에 놓인 대상들을 단순히 그려낸 것만이 아닌 셈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의 전체적인 궤적들은 고고학 혹은 계보학처럼 작가의 그리기를 둘러싼 이면들과 그 작동 원리를 규명해내는 중요한 단서로 작동한다.
첫 출발이 되는 '건강한 정물' 연작들은 작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때로는 과한 장식과 미감들로 넘치거나 모자란 감각의 취향을 뽐내고 있지만 이러한 남다른 대상들 역시 결국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일상적인 사물들에 다름 아닌 것들임을 보여준다. 비범하지만 평범한 이들 사물들을 향한 작가의 본능적인 시선, 무의식적인 선호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이는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취향의 어떤 단면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의 나름 정성껏 공들인 기묘한 장식들에서 착안되었다는 이 연작들은 잡동사니 같은 세상 속에서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세상만큼이나 독특하고 묘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물들과 어떤 존재 양태를 향한 작가의 남다른 시선인 동시에 이들 유별나지만 익숙한 형태들로 존재하는 것들을 그리기 행위로 자연스럽게 품어 관계 맺으려 하는 작가적인 시도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하수상한 우리의 일상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은 저 묘하고 독특한 사물들의 형태들, 배치들, 그리고 그 조악한 미감들에 대한 존중들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누군가의 시선으로 볼 때는 허름하고 촌스러운 것들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또 다른 일상 속에 정성껏 또 다른 미감으로 자리하는 것들을 향한 작가의 남다른 관심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다르지 않다(美不美不二)는 옛 선현들의 가르침마저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미에 대한 어떤 명시적인 문제의식이라기보다는 잡동사니 같은 세상 속에서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얽히고설킨 채로 존재하는 사물들 자체에 대한 작가적 시선, 그 관심과 존중이 무게를 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작가 역시도 이들 사물들을 정돈되지 않은 파편적인 방식으로 화면 속에 우연하게 배치하고, 하나하나 정성껏 그 사물들의 존재 형태를 되새김질해나가지 않았나 싶다. 그리기라는 어떤 특별한 행위가 아닌 습관처럼 몸에 베인 것들로 어떤 의식적인 개입을 배제하고 특정한 구성 원리 없이 하나하나씩 자연스럽게 더해가면서 말이다. 물론 여기에도 작가에 의해 수집된 사물로서 일정한 취향의 취사선택이라는 개인적인 과정이 있긴 했었겠지만 적어도 이들 연작들은 개별 사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특정한 미적 규준이라는 잣대보다는 불확실한 미감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세상 속에 존재하는 이들 사물들 그 자체, 곧 우리의 일상의 한 구석에서 그저 소박하고 정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자리하는 것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시선의 움직임, 그 경청과 존중들이 더 큰 요소들로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 하나하나 정성껏 그려낸 각각의 대상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양상들, 그 무대가 되는 세상이라는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모습 자체에 더 큰 의미의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노력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 자체를 향한 어떤 관심과 주목들 말이다. 비록 하찮고 소소한 것들로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하수상한 일상의 풍경들이겠지만, 그리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본질로 환원되어 존재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정물화가 아닌 일상의 파편들로 일시적으로 덧없이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그 정지된 순간만큼은 '건강하게' 자리하는 것들을 향한 작가적인 배려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런 정물화로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세속적인 삶 속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들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미적인 혹은 감성화 된 삶을 향한 작가를 포함한 우리네 이웃들의 간절하고 애틋한 희구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건강한 정물'은 비단 대상으로서의 세상의 타자화 된 사물들만을 담고 있는 그림만이 아니라 그렇게 이질적으로 얽혀있는 세상의 사물들을 향한 작가의 혹은 우리 스스로의 모습들, 그 지향성들 또한 관계 짓고 있는 작업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이어지는 연작인 '습관적 세계'는 무질서하게 혹은 건강하게 존재하는 세상의 사물들보다는 그러한 세상(의 사물들)과 관계 맺고 있는 스스로의 그리기의 차원으로 향한다. 정돈되지 않은 방식으로 우연하게 나열된 사물들의 배치가 아닌, 다시 말해 이질적인 세상의 사물들 자체가 아닌 그러한 세상 속 사물들을 향한 작가의 특정한 시선과 사유들, 혹은 습관들을 조곤조곤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사물들의 구성에 있어 안정적인 배치가 눈에 띄기도 하고 작업에서 반복된 특정한 사물들, '러시아 인형, 부엉이, 배, 스노우 볼, 도자기, 그리고 작은 식물들과 실에 꿰어진 구슬들…', 곧 작가의 취향에 의해 선택된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한 보다 정련된 묘사들이 시도된다. 화면 속에서의 무원칙적인 나열이 아닌 일정한 구성 원리에 따라 각각의 대상들이 화면상의 정돈된 배치를 이루며 여유를 가지고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전 작업보다는 각각의 사물에 대한 미시적인 시선과 묘사가 더 두드러지는데 특히나 개별 사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패턴에 대한 관심들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들이 자리하는 배치의 다양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전 작업에 비해 안정적인 모양새와 느낌들을 전한다. 아무래도 세상의 여느 사물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나열이 아닌 작가 스스로에 의해 선택된 특정한 취향, 그리고 그 습관들을 의식하면서 포착하고 구성된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습관적 세계' 연작들은 다시 '은밀한 습관', '망각한 변형', '어떤 것'시리즈로 계열들을 이루면서 펼쳐진다. '은밀한 습관'의 경우 작가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특정한 사물들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들, 그리고 이러한 취향 속에서 반복되는 형태나 패턴, 색감과 구성을 발견하고 확인하려는 시도들이다. 말 그대로 작가 개인의 은밀한 습관(Confidential Custom)이라 할 수 있는데, 작가의 특정한 사물들에 대한 선호나 취향 이상으로 사물들의 세밀한 형태, 패턴, 리드미컬한 배치에 대한 가시화가 도드라지는 작업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면모들이 더욱 실험적으로 강화된 작업이 '망각한 변형' 연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곧 사물을 직접적으로 보고 그리지 않는 작가의 내밀하고 개인적인 그리기의 방식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테면 작가의 무수하게 반복된 이른바 습관적인 그리기의 과정이 세상의 특정한 사물들에 대한 작가의 특정한 선호, 취향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인 양태들, 곧 형태, 패턴, 배치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형태, 패턴과 같은 장식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되기도 하고 이들 각각의 사물들 간의 자유로운 배치, 구성에 관한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다채로운 그리기의 시도들로 인해 작가의 작업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세계를 담아낸 구상성의 차원이 아닌 스스로의 감각적인 사유 속에서 자유롭게 재구성된 추상성의 차원마저 획득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사물들의 객관적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습관적인 그리기의 과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곧 주관적인 망각과 변형을 통해 화면이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 연작들은 비단 세상의 특정한 사물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양태들에 작가의 선호, 취향은 물론 이러한 그리기를 펼쳐온 행위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작가 자체 또한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나 이어지는 연작인 '어떤 것'은 내용과 형식면에서는 이전 작업에서 다루었던 사물들의 개별적인 양태들을 더욱 특화시켜 담아낸 작업들이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그림의 대상과 분리되지 않은 그리기의 수행적인 차원 또한 결합시키고 있는 작가인 점을 감안할 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더욱더 도드라지게 가시화시키고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면모들은 다시 작가의 이전 작업을 역순하여 복기해볼 때 분명해진다. 우리의 일상 속에 모순적으로 그러나 건강하게 존재하는 사물들의 엇갈린 풍경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사물들에 대한 작가의 취향 말고는 일정하게 정돈된 구도나 형태, 명암과 같은 아무런 그리기의 원리 없이 비롯된 그림으로부터 시작하여('건강한 정물'), 점차 그러한 사물들의 특정한 형태, 패턴, 배치에 대한 선호와 관심을 특화시킨 그리기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드러내었고('은밀한 습관', '망각한 변형'), 이러한 과정이 결국에는 개별적인 사물들의 구체적인 형태, 패턴, 색감, 구성에 대한 형식적인 긴장감과 균형까지 실험한 연작들까지('어떤 것') 이어지게 되면서 작가만의 고유한 그리기 방식을 서서히 완성해 갔기 때문이다. 단지 그리기의 대상에 대한 시도만이 아닌 그러한 내용성에 수반된 작가만의 그리기 형식에 대한 부단한 실험을 결합시키면서 작가 특유의 그리기의 스타일을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모습들로 이루어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아한 노력'은 지금까지 나름의 원리와 방향성으로 지속해온 작가 작업의 궤적들의 발전, 확장인 동시에 그동안의 작가의 그리기 행위를 얼마간 종합시킬 수 있는 계열화된 연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별적인 사물의 형태, 패턴, 색감, 배치 등이 더욱 과감하고 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면에서 이전 작업들보다 더욱 진전된 방식의 형식상의 실험을 전개하고 있지만 작가의 처음 문제의식이었던 우리를 둘러싼 모순적인 일상의 사물들의 좀처럼 알 수 없는, 이를 테면 속되지만 세련된, 그렇게 세상 속 사물들의 건강한 존재들과 양태들에 대한 작가의 선호와 취향,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잡동사니 같은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존중만큼이나 스스로의 작업(의 과정)에 대한 위로와 존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꾸준히 펼치고 접어온 나름의 미적인 취향과 지향성, 그 노고에 대한 어떤 격려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단서를 달아야겠지만 작가의 그리기 행위에 대한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해진 어떤 면모들, 더욱 더 유연하게 무르익은 자세와 태도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특유의 미적인 관심과 취향, 그리고 이에 자연스럽게 상응시켜온 그리기 행위를 통해, 점차 단단해지고 있는 작가적 주체마저 확인하게 하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그리기의 문법과 스타일을 얼마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록 덧없을지라도 세상에 오롯이 존재하는 사물들을 향한 작가의 꾸준한 시선과 취향이 그리고 그러한 사물들의 생생한 양태들에 대한 작가의 더욱 자유롭고 단단해진 그리기 형식이 묘한 궁합을 이루면서 작가의 그림들이 건강한 정물들로, 습관적인 세계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우아한 노력으로 재차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 민병직
1976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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