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생물 - 의미의 구조
2018.09.06 ▶ 2018.10.06
2018.09.06 ▶ 2018.10.06
정수진
빵 린넨에 유화, 30x40, 2018_Just bread, oil on linen
정수진
차원높은 빵과 괴물들 린넨에 유화, 100x100, 2018_Still life3 High dimensional breads and monsters, oil on linen
정수진
동화의 구조 린넨에 유화, 100x100cm 2018_still life1, The structure of fairy tale, oil on linen
정수진
대우명제(역이대우), (같음반대닮음다름) 린넨에 유화, 100x100 2018_still life2, transposition(convers inverse transposition), (same opposite similar distinct), oil on linen
정수진
적형 차원에서의 공백의 구조 린넨에 유화, 30x40, 2018_The structure of void in the dimension of Accumulation of form, oil on linen
정수진
대우명제2(역이대우),(같음 반대 닮음 다름) 린넨에 유화, 50x61, 2018_transposition2(convers inverse transposition), (same opposite similar distinct), oil on linen
정수진
반어법적 구조를 가진 인물 린넨에 유화, 45x70.5, 2018_Human figure in the structure of irony, oil on linen
이유진갤러리는 9월 6일부터 10월 6일까지 다차원의 의식세계를 회화로 풀어내는 작가 정수진(b.1969)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정수진은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언어를 바탕으로 색채와 형태를 기본으로 한 회화의 다차원적 의미에 대해 심도 있게 작업해온 작가다. 오랫동안 작가 내면의 정신세계에 존재해오며 작업의 원천이 되어온 괴물이라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형상들은 무질서와 혼돈의 경계를 거쳐 작품 속 수많은 도상적 이미지들인 다차원적 생물로 전개되어왔다. 작가의 이십 여 년 간의 작업활동을 통해 복합적으로 발전해온 회화적 실험은 작가의 시각논리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견고해졌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혼돈의 의식과 무의식으로부터 이제는 나름의 규칙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서로 관계하고 있는 다차원 생물들과 이들이 제시하는 가시화된 의미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이유진갤러리
괴물들
괴물은 정체성의 혼돈이 만든다.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경계의 혼선, 그래서 인식할 수 없는 존재, 혼돈과 무질서의 나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바로 괴물들이다.
2006년 개인전에 몇 개의 괴물들이 등장했다.
그 당시 내게 괴물이란 그림을 그리고는 있지만 뭐가 뭔지 규정할 수 없는 형상들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알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는 형상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계속 증식하며 나타나는 형상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형상들은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강박증의 원인이기도 했다.
— 미지의 세계, 정체불명의 존재들은 인간들에게 근원적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의 인식의 경계를 벗어난 것들을, 그것이 단순한 생각이건, 존재이건 간에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오랜 시간 괴물과 같은 형상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괴물들은 마치 공기처럼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에게 사로잡혀서 그것이 괴물의 세계인 것을 모른 체 그 세계에 빠져들었고 탐닉했었다. 괴물들은 꿈과 현실 양쪽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내게는 질서에 관한 욕구가 반작용처럼 생겨났다. 질서에 대한 욕구, 그것은 당연히 무질서와 혼돈의 상징인 괴물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구에 다름 아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괴물의 정체가 궁금했었던 것 같다. 괴물을 존재하게 한 무질서와 혼돈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괴물들과 그 세계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부도 이론이다. 부도 이론은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형상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여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가능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반이 없이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한 괴물들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정보들이 가득 찬 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혼돈의 세계를 대면하지 않고서는 새로움이란 없다. 새로운 정보는 내가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있다.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는 조화와 질서의 세계와 상대적 개념으로 공존하는 세계다.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도 사라진다.
확실히 인식의 경계가 확장된다는 것은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의 결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식의 경계가 확장될수록 그와 비례하여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도 확장된다. 왜냐하면 질서란 잠정적인 혼돈의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번 세워진 인식의 경계는 다시 무너져서 또 다른 혼돈 상태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 혼돈 상태는 새로운 차원의 경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보는 새로운 인식의 경계를 세우는 것과 같고 이것은 언제나 기존 경계의 혼돈을 재정리하면서 만들어진다.
부도이론을 이용해서 나는 괴물과 같은 형상들을 인식의 경계에 가둘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상징의 세계
상징의 세계는 다차원 생물들의 세계이며 의식의 세계다.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의식 작용이 색과 형을 입고 보이는 형상이 되어 나타난 것이 다차원 생물인 것이다. 인식이 불가능할 때, 그것은 괴물이고 혼돈이지만 인식할 수 있다면 다차원 생물이다. 그러므로 괴물과 다차원 생물의 경계는 곧 인식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세계는 상징과 표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상징과 표상이라는 매개물 없이 우리가 대상을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징과 표상은 가장 직접적인 상태로 경험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미의 구조—다차원 생물
그림에 대한 해석은 자유롭다. 각자 알아서 느껴지는 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물어보지 말라. 나는 그림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을 좀 수정해야 할 때가 왔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세상을 관찰해보면 자유로움이란 언제나 일정한 법칙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운동의 자유로움이 있을 수 없다. 방향을 인식할 수 없다면 내가 앞으로 가는지 제자리걸음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행동의 자유란 말이 무색해진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적 자유로움이란 더더욱 그러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세계에서의 자유로움은 자칫하면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한계가 없는 자유로움을 주장한다는 것은 형태가 없이 색채의 성질만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이야기다. 색채는 형태가 없는 상태로 나타날 수 없고 형태 역시 색채 없이 나타날 수 없다. 이들은 개념적으로는 나누어질 수 있지만 실재로는 하나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법칙의 관계도 그러하다.
혼돈의 세계에 있던 괴물과 같은 형상들에게 색과 형이라는 옷을 입혀 보이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럼 이제 그림은 무슨 뜻일까? 그림은 의미의 구조를 전달한다.
그림을 구성하는 색채와 형태, 형상이 전달하는 정보는 특정 의미 자체가 아니라 의미의 구조이다. 이 의미의 구조는 각자의 해석이 담기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해석의 자유는 그릇의 구조가 규정하는 한계 내에 있다. 즉 각자 특정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자유는 의미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한계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림이 제시하는 것은 의미의 구조다. 의미의 구조에 어떤 내용을 담는가는 보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이것이 하나의 그림에 다수의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이 가시화 된 의미의 구조가 곧 다차원 생물들이다. 인식의 경계 안에 들어온 괴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괴물들은 이제 다차원 생물들이 되었다.
글/정수진
1969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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