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의 양쪽 (Both Sides of Everydayness)
2018.09.04 ▶ 2018.09.22
2018.09.04 ▶ 2018.09.22
이상권
와라 제발! 163x112cm, acrylic on canvas, 1992
이상권
낮술 227x182cm, oil on canvas, 1992
이상권
대충해결하기 163x130cm, acrylic on canvas, 1992
JJ 중정갤러리에서 9월 4일(화)부터 9월 22일(토)까지 이상권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인 거대도시의 대량생산된 일상을 포착해온 이상권 작가의 90 년대작들이 전시된다. 현재로 올수록 따뜻한 색감과 삽화적인 익살을 더해온 것과 달리, 그의 초기작들은 일상을 견뎌내는 삶을 좀더 직설적이고 거칠게 담아내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가 말하는 도시의 일상성은 교통지옥 속의 출퇴근으로 대표되는 강제된 시간, 지겨워하면서도 할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의무의 시간, 그리고 술집과 유원지에서 보내는 자유시간이라는 세 가지 양태의 시간속을 맴돈다. 강제된 시간은 점점 증대되고 자유시간은 줄어드는 속에서 극도의 권태 및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일상성에서 탈출할 엄두는커녕 그 일상성에서 제외되는 것이 곧 떨려나가고 낙오되는 것인양 두려워한다. 실직의 공포이자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상실감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태피로 및 공포감을 잊기 위해, 잠시라도 해방되기 위해 사람들은 여가 시간에 기대를 건다. 대중교통 및 일터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이 위안을 받기 위해 가는 곳은 여전한 회색빛 도시 속의 카페나 술집이다. 이래서야 물질적인 재화만이 아니라 욕망 자체도 생산해 열렬히 소비시키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허망한 가짜 위안을 맛볼 뿐이다.
그 만족스럽지 못한 욕망의 수레바퀴 속 헛되고 부질없는 것처럼 보이는 남루한 생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포착하고 사람의 손으로 그려내는 구상적인 회화가 붙잡아내는 한 순간. 그 순간은 영원으로 연장되며 상상력이 발휘될 시간을 만들어낸다. 마치 소설 해리 포터 속 7 과 1/2 역처럼, 어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상이 벌어지는 시공간으로 이 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그림 속 인물들 사이의 밀도 높은 틈새에 깃들어 있고, 그림과 관객 사이에 일렁인다.
▷ 강홍구 - 서문 <맘에 안 드는 세상에서의 삶> 중 발췌
이상권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으로 가득한 지하철 속에 짓눌려 있는 삶들이나, 술집에 마주 앉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 모두 다 그렇다. 한 사람도 정말 환하게 웃거나 기분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 들어있다. 만원 지하철, 스트립쇼가 벌어지는 술집, 공사판에 익명으로 끼어 있다. 즉 이상권이 그린 그림은 자신이 겪고 관찰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삶들은 고단하고 쓸쓸하다. 고단하고 쓸쓸한 삶은 그가 자신의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줄기차게 관심을 가져온 소재이다.
이상권의 인물들은 삶이 무슨 연유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도 그와 같은 질문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어떻게 해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리고 아마 그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유는 묻지 않더라도 아스라한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나란히 늘어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버스를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팔짱을 끼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목을 늘여 뺀 채 일제히 한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버스 이상의 어떤 것, 구름처럼 부풀어 둥실둥실 떠오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다. 그것이 적어도 상식이 통하고 최소한의 정의라도 이루어지는 사회건,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작가 자신의 희망도 그 안에 겹쳐 스며있을 것이다.
196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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