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정
고요한 벽체와 나 Serene Wall and I 2018, aluminum, steel, 300x300x200(h)cm
엄태정
기-69-1 Energy 69, No.1 1969, steel, 105x200x135(h)cm
엄태정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 Stranger Holding Two Wings 2018,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아라리오갤러리 서울I삼청과 천안은 2019년 1월 22일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선구자인 엄태정(1938~ )의 개인전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를 개최한다. 이번 그의 개인전에서 아라리오갤러리는 2017~2018년 제작된 대규모 알루미늄 신작들뿐 아니라 지난 50여년 간 추상 조각가로서 작가가 천착해 온 다양한 금속 조각, 그리고 평면까지 40여 점을 선별해 소개한다. 전시는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에 개최됨으로써, 금속의 물성을 경외하며 초대하는 수행적 작업 과정을 통해 치유의 공간을 추구해온 그의 작업세계를 다각도에서 살피는 계기를 제공한다. 서울I삼청점은 2월 24일까지, 천안점은 5월 12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엄태정 작가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재료와 물질을 탐구해오고 있다. 작가는 1967년 그의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70년대에는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조각들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는 우리나라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상들을 반영했다. 2000년대부터 작가는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과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50여 년을 아우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천안에 조각 작품들을, 서울I삼청에 평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나누어 배치하고, 이들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천안 4층 전시장에서는 <기-69-1>(1969), <청동-기-시대>(1997) 연작과 같이 철과 구리 등을 이용해 1969년부터 2010년 사이 제작된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며, 3층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2000년대 이후 천착해온, 알루미늄 대형 신작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알루미늄은 중성적인 재료이자 물질로서, 작가가 작업을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통합의 세계, 즉 만다라(Mandala)에 맞닿아 있는 재료기도 하다. 각기 4계절을 나타내는 이 네 개의 작품들은 전시장을 모든 계절을 품은 하나의 조각 정원으로 변모시킨다. ‘타자(낯선 자)로서의 벽체와 나’와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는 <고요한 벽체와 나>(2018)는 정갈하게 연마된 알루미늄 패널의 은빛 면, 사각 철 기둥의 검정색 선, 즉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된 구조를 통해 타자와 내가 공존하는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신작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2018)는 서 있는 두 장의 대칭된 알루미늄 패널을 검은 선형 철 파이프가 붙들고 있는 작품으로, 이 역시 소외된 낯선 자를 포용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 외 <어느 평화로운 공간>(2018), <엄숙한 장소>(2018)까지, 주변과 소통하는 엄태정의 조각들은 관람객들을 작가가 마련해놓은 시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서울I삼청에서는 작가가 2000년대부터 꾸준히 지속해 온 평면 작품들이 전시된다. 잉크 페인팅 <틈>(2000-2002) 연작은 문자나 사람의 손짓과 몸짓을 연상시키는 유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흰 종이 위에 잉크 펜을 이용해 무수히 선을 수행적으로 반복해 그려 완성된 것이다. 또한 지하 전시장에서는 <천·지·인>(2018), <무한주-만다라>(2018), <하늘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사람도 둥글고>(2018)와 같은 색 띠 평면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드로잉들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잉크 선들을 겹겹이 쌓고, 1cm간격으로 색 띠들을 교차시키고, 또 칠 하는 방식은, 그의 조각이 지닌 조형성뿐 아니라 금속을 두드리고 용접하고 연마하는 제작 기법과도 닮아있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내게 작품을 하는 일은 곧 치유의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상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여러 작품들을 바라보며, 관람객들은 재료의 물성과 조형적 질서 너머 작가가 부단히 추구했던, 자신의 치유에 대한 염원과 통합에 대한 이상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엄태정 작가는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하였으며,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2012년 이미륵 상 등을 수상하였고, 광주 상공회의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 런던 우드스탁 갤러리, 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뮤지엄, 서울 성곡미술관 개인전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하였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938년 경상북도 문경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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