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
2019.04.02 ▶ 2019.04.14
2019.04.02 ▶ 2019.04.14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자동차 매매시장 0647 2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부품 거리 0546 20x3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부품 거리 9658 40x6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부품 거리 0597 80x12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부품 거리 9297 40x6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정정호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_장안평 중고부품 거리 4131 30x2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9
장안평. 조선시대에는 말을 키우던 방목장으로 유명하였던 이곳이 이름에 ‘중고차도매시장’이란 수식을 달기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다. 자동차 관련시설들이 환경저해시설로 분류되어 서울 중심부에서 밀려나게 되면서,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과 동대문구 답십리동 사이에 있었던 평야 지대에 대규모 중고자동차매매단지가 들어선 것이다.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으레 장안평으로 갔고, 차를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환할 일이 있는 사람들도 장안평으로 갔다. 그러기를 40여 년.
최근 서울시는, 1979년 준공 이후 서서히 낙후되어 온 장안평의 모습을 역사 속에 기록하고, 주거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개선을 위한 ‘도시재생활성화’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백(白)의 발화(發話)> 시리즈로 알려진 사진가 정정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눈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미니멀 하게 표현한 ‘백의 발화’로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에 초대되기도 했던 그가 복잡다단하고 켜켜한 장안평의 공간과 시간성을 어떻게 사진에 담았을지, 장안평 프로젝트에 정정호가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5개월 동안의 프로젝트를 모두 마치고, 촬영한 사진과 기록들을 책으로 엮어 전시로 선보이는 것이 이번 전시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전이다.
전시는 크게 ‘중고차 부품 거리의 집적된 오브제’와 ‘장안평 중고차 매매상가와 답십리 부품상가 일대의 풍경’ 두 개의 유형으로 분류되어 선보인다. 정비소와 부품유통업체들이 즐비한 블록 맞은편에 연립주택과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낯선 풍경부터, 지붕 위에 빼곡히 쌓인 부품들과 거대한 생물의 장기처럼 보이는 내연기관의 모습까지. 사진가 정정호는 오랫동안 문화적 가장자리였던 장안평이 품고 있는 내러티브를 착실히 담아냈다. 풍경들은 한 문명이 끝나고 난 폐허의 느낌마저 든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사진가 정정호는 여전히 장안평에 시선을 두고, 그 공간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담고 있다. 장안평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기억이 있는 사람이든 혹은 장안평을 한 번도 경험치 못한 사람이든, 사진가 정정호가 선사하는 이제 곧 변화될 ‘한 시절’의 풍경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서울시 도시활성화과의 지원과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의 협찬으로 진행되는 이번 정정호 사진전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는 4월 2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린다.
■ 류가헌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Archive: Machine, Car and City)
도시는 변화한다. 생성과 소멸은 도시라 해도 비껴갈 수 없는 운명이지만 너무 빨리 변화한다는 것이, 금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40년간 중고 자동차의 메카였던 이곳 장안평도 흔적 없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의 도움으로 이곳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장안평 중고차 매매상가는 한국 중고차 시장의 산증인이었다. 돈으로 가득 채운 가방을 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던, 직원이 수십 명이었다던 사장님의 화려한 옛 추억은 사무실의 금빛 상장처럼 액자 안에 박제된 채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목청 높인 호객꾼 아저씨도, 발 디딜 틈 없던 지하 식당가의 주인아주머니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지하 구석엔 고양이들이 긴 하품을 하고 있다.
중고부품 거리를 걸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중고차의 부속품이었다. 육중하고 기름때 묻은 덩어리는 마치 인체의 드러난 장기 같아 보였다. 기계공들은 메스를 든 의사처럼 기계를 수술하는 듯했다. 수리를 마치고 회생한 부품들은 주변 공간 안에 적절히, 오랜 시간 공들인 돌탑처럼 쌓여갔다.
부품상가 앞에서는 택배차와 오토바이가 쉴 틈 없이 움직인다. 박스가 곳곳에 쌓여 있다. 부품을 수입해가려는 아랍인들과 아프리카 사람들도 보인다. 그 가운데 하늘을 품은 중정이 돋보이는 부품상가가 있다. 부품상가를 둘러싸고 병풍처럼 유명 건설사 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은 꽤나 위압적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부품상가 일대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파트 측의 민원이 잦다고 한다.
지역에는 자연스레 그곳의 역사가 스며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장안평에서 보는 건물, 거리 곳곳의 모습은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 지역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일하며 쌓아 올린 기억들이 그들의 주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앞으로 몇 년 뒤 다가올 정비사업으로 인해 도시가 어떻게 변화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 정정호
《장안평을 아시나요?》중 일부 _ 정현(미술비평, 인하대 교수)
장안평의 기록
정정호는 원래 분쟁지역 기자를 꿈꿨을 정도로 인간의 욕망과 이념, 가치 등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사진작가가 된 이후로도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곳에 다가가려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할아버지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를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어떠한 기록도 명예도 갖지 못한 채 한국전에서 전사한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장안평 자동차산업단지 기록 작업도 크게 보면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시적으로 횡단한다는 관점과 마주친다. 하지만 장안평 작업은 기존 작업과는 그 바탕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우선 장안평 아카이브는 시민참여 프로젝트로 기획되었고, 정정호는 작가라는 수식을 지우고 서울시민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작가로서의 비평적 입장을 앞세우기보다 장안평 자동차산업단지의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본인 스스로 부여한 의무감을 들 수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4차원 공간을 2차원으로 재현한다는 필연적 한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평면에 담긴 세계는 어쩔 수 없이 착시효과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평범함 피사체가 갑자기 특별한 사연을 가진 대상으로 돌변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점이 또한 사진에 매료되는 지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이러한 사진은 현실을 허구화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정호는 되도록 사진의 극적 효과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평면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우리가 장안평 사진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진의 재현과 그 윤리와의 관계에 있다. 사진술은 현실을 재현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만 담아내지는 않는다. 왜곡, 과장, 삭제 등을 통하여 대상을 극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바로 사진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안평의 모습은 우리가 품고 있는 지역에 관한 선입견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조용했다. 최근 해외무역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경기둔화의 영향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거리나 업장 모두 차분한 분위기였다. 또한 시선을 지배할 정도의 강력한 스펙터클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규모 사업장으로 이뤄진 면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노포가 주는 강력한 향수나 적재된 기계부품이 압도적이지도 않았다. 중고자동차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세차된 다종다양한 자동차들이 열을 맞춰 세워진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어서인지 새롭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평일이라 거래가 뜸한 상황에서 호객하는 딜러의 전형적 말투, 상가 건물의 간판과 서체, 거대한 성벽처럼 우뚝 서 있는 브랜드 아파트 단지와 재개발로 문을 닫은 재래시장의 황폐함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었다. 장안평 사진은 집적된 자동차 부품과 장안평 단지의 내·외부, 두 개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작가가 사물 사진이라 부르는 첫 번째 유형은 고철, 기계부품, 재조합 등의 열쇳말을 연상시킨다.
정정호는 조금의 사적인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이 사물들을 기록한다. 두 번째 유형은 장안평 단지 건물의 안팎을 조망한다. 재개발을 앞둔 시장을 경계로 다세대주택과 아파트단지를 담은 풍경과 인적이 드문 거리를 장악한 부품들로 채워진 정비소 거리의 모습은 시간이 비껴갔다는 낭만적인 묘사보다는 기능만을 탑재한 거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황현산 선생은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은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포항, 울산, 창원 같은 대규모 산업단지는 일상과 분리되어 또 다른 하나의 도시로 존재한다. 한편 도시 내 산업단지는 일상에 가까이 존재하기에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발생한다. 정정호는 섣불리 장안평의 정체성을 기호화하지 않았다. 또한 관음적으로 내부를 적나라하게 재현하거나 표현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현재의 장안평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문래, 성수, 청계천, 장안평 등의 도시산업단지는 맹목적으로 외연을 키우기 위해 시각적 기호로 본질을 가리지 않았다. 대신 정정호는 장안평의 거리에서 어둡고 차가운 계절의 날씨와 생존하기 위해 쌓아 올린 기계 부속들과 기름때의 냄새를 사진으로 포착한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차가운 느낌은 촬영 기간이 이번 겨울에 이뤄진 탓이다. 기록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연스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도 담기게 될 것 같다. 오늘의 아카이브는 무엇보다 개인, 일상의 기록에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소 양식화되는 것 같아 노파심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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