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 아름다운 터에서(The Land)
2019.08.23 ▶ 2019.09.22
2019.08.23 ▶ 2019.09.22
전시 포스터
강광
그날 The Day 1981, Oil on plywood, 98x132cm
강광
풍경 썰물 Landscape Low Tide 1982, Oil on plywood, 76x104.5cm
강광
5월에 피는 꽃 Flowers Blooming in May 1985, Oil on canvas, 103.5x136cm
강광
우리의 산하 Our Nature 1989, Acrylic on canvas, 122.3x122cm
강광
구름 Cloud 1998, Acrylic on canvas, 119.8x134.1cm
강광
마을 풍경 Village Landscape 2000, Acrylic on canvas, 115x148.5cm
강광
풍경 Landscape 2000, Mixed media on canvas, 135x162.5cm
강광
호랑이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iger 2000, Mixed media on canvas, 162.2x130.2cm
강광
6월의 정원 June Garden 2005, Acrylic on canvas, 97x130.5cm
강광
아름다운 터 마을 Beautiful Land Village 2007, Acrylic on canvas, 96.5x130.4cm
가나아트는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동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담으며 독자적인 화풍을 구현해 온 강 광의 초대전을 개최한다. 6. 25전쟁, 월남전 참전, 민주화 운동을 몸소 경험하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온 그는 한국 근현대사 속 격동기의 특수한 상황을 자연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작업에 녹여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재현할 수 있는 매재(媒材)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실제 살아가고 있는 혼잡한 현대사 안에서 느끼는 본인의 감정을 자연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로 구현한 것으로, 강 광은 자연에서 느껴지는 냉정함과 원초적 감각을 표현하여 화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1970년대를 보낸 제주시기를 ‘습작기’라고 정의한다. 현실사회의 문제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그는 이 시기에 조형적 실험과 소재에 대한 탐구에 매진했다. 강 광이 제주에 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는 유신 체제의 종말과 신군부 세력의 득세로 어지러운 정국을 맞던 때였다. 미술계에서는 사회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현실비판적 예술활동을 전개하는 미술가들과 그들이 주축으로 만든 모임들이 생겨나면서 ‘민중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태동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강 광 또한 현실비판적 의식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현실주의’를 주창하며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구상적 형상에 매달렸던 여타의 민중미술가들과는 다르게, 작가는 구상과 추상을 모두 아우르는 자신만의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1970-80년대 강 광의 작업은 제한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가 특징이며 작품에 추상과 구상의 특성이 모두 나타난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에 묘사된 산과 길 그리고 나무와 꽃의 형태들은 분명하게 구상성을 띄고 있으나, 원근법과 사실적 묘사와 같은 회화적 기교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산과 나뭇가지, 푸른 색면으로만 묘사된 하늘은 그가 동시대의 사회비판적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조형성을 실험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는 형태를 드러냄으로써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시에 색채를 통해서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러한 구상과 추상의 혼합은 1990년대에 이르면 조금 더 다각적으로 나타난다. 초기에는 추상과 구상을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형태 자체를 추상적으로 변화를 주거나, 단일 색조로 표현했다면 이후에는 구상의 형태와 추상의 형태를 한 화면에 각각 배치하여 서로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화면의 한쪽 면은 단순하게 묘사되었지만 구상성을 띄는 형상을, 다른 면에는 추상의 무늬를 반복적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대비효과를 준 것이다. 무채색에 가까웠던 색채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강 광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는 사회 비판적인 매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한편으로, 개인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단 작가의 양가적인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작업은 오랜 시간 감정을 교류한 대상으로서 강 광 그 자체였다.
한편, 1990년대부터 강 광의 작업은 그가 ‘전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변화된다. 새로움을 향해 가기 위해 과거사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조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전통을 재해석한 것이다. 때문에 1990년대 후반에 완성된 그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향토성이 강하게 나타나며 우리나라 민화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해학적으로 묘사된 호랑이가 등장하기도 하며, 평면으로 패턴화 된 꽃과 나무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강 광은 한국 근현대사 속 비극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두 갈래길에서 자연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구현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가 풀어낸 역사 속 우리의 이야기들이 담긴 작품을 총망라하였다. 이는 강 광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성찰, 혹은 비판
이경모(미술 평론가/예술학박사)
강광의 작업에는 모더니즘적 형식 실험에 기반을 둔 물질의 탐구와 형태의 변용이 화면 전체를 관류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작가의 역사인식에 따른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민이 나타나 있다. 자연과는 별개인 듯한 무채색조의 화면에는 특정한 존재들의 모습이 각자 특유한 형상성을 띠며 침묵적 발언을 이어간다. 그것은 어떤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는가 하면 냉엄한 현실 역사에서 조차 희망을 염원하는 포기할 수 없는 인간애, 그리고 조국의 산하에 대한 깊은 애정과 땅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지 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인간 역사의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는 형상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여기에 촛불이나 초승달, 한 떨기 꽃을 부가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화면은 명확한 역사인식과 냉철한 현실 비판에 근거한 것으로 차가운 이성이 온화한 인간애로 변주되는 독특한 서사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이전의 리얼리즘 미술에서 볼 수 없던 강광 특유의 논리성을 띠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의 서술 방식은 구구절절한 논리 전개에서 탈피하여 촌철살인의 언어와 응축된 형상, 그리고 비선형적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강광은 제주에 머물던 6-70년대 「관점」이라는 미술동인을 조직하고 ‘신과 창조의 능력을 공유’하면서 당시 제주미술의 고답적 자연주의를 극복하고 동시대 미술의 실험정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추상 이후 현대미술의 가치와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즉 추상과 창조, 시간과 공간, 물질과 관념, 아방가르드 혹은 행위라는 가치보다는 이러한 동시대 미술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각자의 관점과 자유로운 표현방식”으로 개성을 연출해 내고자 했던 것이다. 「관점」展은 그 첫 출범 의지대로 당시 제주미술계의 주요 경향이었던 자연 주의에 반한 새로운 시도들이었고 마이너리티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세력들이 모여서 미술계의 변혁을 꿈꾸며 결성한 미술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1970년대 제주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하면서 발표한 작품들은 당시 미술적 트렌드를 염두에 두면서도 올바른 ‘역사인식과 현실 비판’이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강광은 월남전 참전 후 제주에 정착하여 중고 미술교사와 제주대 강사를 지내며 제주 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하여 인지하게 된다. 작가는 이미 한국전쟁과 4.19혁명, 군사정권에 의한 민주세력의 탄압과 월남전을 몸소 겪으며 부도덕한 권력이 자행한 폭력과 만행을 지켜본 터였다. 제주 시절 4.3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광광으로 하여금 역사적 현실과 사회적 삶을 대하는 자신의 예술적 입장을 확고하게 정초시키는 계기가 된 듯하다. 그리고 이는 세계, 국가, 민족이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의 재편뿐 아니라,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해법을 스스로 찾기 위한 구도의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예술은 형식적으로 모더니스트고 내용적으로는 리얼리스트의 입장을 견지한다. 루카치의 리얼리스트에 관한 언급대로 강광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또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객관적 발전 경향으로서 사회에 대해, 나아가 전 인류의 발전에 대해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지속적 요인들을 찾고자 한 것’이다. 1970년대 강광의 그림은 형식적으로 그 시대 어떤 작가보다도 개성적이었고 사회적 진실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강한 독자성을 보여준다.
제주 오름을 배경으로 널브러져 있는 주검을 그린 <소녀>(1978)나 <오름>(1980)은 어떤 폭력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이들을 무슨 이유로 학살했을까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살육의 참상과 국가폭력의 만행에 대하여 분노케 한다. 마치 종이 인형처럼 평면화된 주검에서 영혼마저도 수습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처연함, 이 순결한 존재들에게 우리는 어떤 위로와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무기력한 우리의 처지를 직시하고 체념하고 말게 된다. <들에서>(1979), <새벽>(1980)과 같은 작품들 역시 학살된 임부(姙婦)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매장된 임부와 오름, 그리고 바다를 수평적으로 배치하여 화면을 안정시키고 초승달을 비스듬히 세움으로써 화면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화면은 여전히 규정 불가능한 비정형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작가는 여기에 가장 처참한 살육의 지표인 임부의 시신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오름 위에 낮게 기울어진 초승달은 사건의 추이를 나타내는 시간성의 의미와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삶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메타포로 비친다. 이러한 그림들을 통하여 우리는 젊은 작가가 역사 변천의 과정에서 민초들이 격은 고통을 보고 번민한 내적 갈등과 고뇌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지치게 하는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이 그의 자화상일 것이다. 강광의 작품 <자화상> 수점은 세상의 정면을 응시하고자 하는 도전과 체념을 동시에 보여준다. 1978년의 <자화상>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응시하는 눈빛은 세상을 향해 던진 분노와 도전의 눈빛이지만 결국 세태가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서 1979년의 <자화상>에서 그 눈빛은 우수로 가득한 체념의 눈빛으로 변한다. 당시의 부조리한 세상이 그랬고 왜곡과 거짓이 판치는 지금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무채색조의 화면 중심에 마름모꼴의 구덩이를 그린 <들에서>(1976)라는 작품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아니면 오름 위에 무덤을 파고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고 복지부동 자리를 지키는 돌덩이 같은 존재들을 파묻어 버리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초승달과 오름, 투시도법으로 재현된 무덤 안의 돌덩이가 일직선상에 놓여있고 화면은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띠고 있어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앵포르멜의 여운이 남아있는 화면의 기조는 동시대 미술의 형식을 일정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가가 발언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암시적이지만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오늘날 진실은 비겁한 침묵, 사건의 조작, 혹은 권력의 음모로 인하여 무덤 속에 비장(秘藏) 된 화석과도 같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그 화석을 발굴해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역사 앞에 사실의 전 모를 드러내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응징할 수 있는 세상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주에 있던 강광은 물리적으로 6-7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 현대미술 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1980년대 인천에 정착해서도 리얼리즘 미술 운동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표현을 전개해 갔다.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가 「창작 미협」으로 이 단체의 모토가 “스타일을 따지지 않고 개개인의 작가가 지닌 바탕에 따라 현대정신을 추구”한다는 정신에 비추어 보면 이 그룹이 강광의 지향성과 부합할 것이다. 이미 강광은 1977년 제주에서 「관점」동인을 창립할 때에도 이러한 모토를 천명한 바 있다. 다만 강광은 인천 미술인 협의회 회원으로 민예총 회장을 지내는 등 인천 리얼리즘 계열의 미술단체를 응원하고 후배들을 격려하였다.
80년대 강광의 작업은 회색 톤과 붉은 얼룩, 오름 등 이전의 모티브들을 적극 수용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여 발언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풍경-썰물>(1983)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면 그가 구사해 온 수사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당시는 신군부에 의한 무단통치가 가속도를 내고 있을 때로, 이미 강광은 정권에 의해 소위 ‘불온 작가’의 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을 때였다. 간조시 썰물에 드러난 인천 앞바다의 갯벌은 ‘생태의 보고’도 ‘자연의 정하지’도 아닌, 어두운 시대 참혹한 국토의 한 단면일 뿐이다. 단지 멀리 보이는 주홍빛 바닷물이 저녁시간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국토의 현실을 암시하고 있다. 중경에는 주인을 잃은 폐선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나문재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갯벌은 죽음의 긴 여운이 가시지 않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대하는 듯 황량하다. 이렇듯 젊은 시절 강광은 수사(修辭) 없는 풍경화 한 폭으로도 부조리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비판 정신을 보여주곤 했던 것이다. <오월의 노래- 잃어버린 섬> 은 제주와 광주의 잔혹한 사건을 오버랩하여 표현한 것이다. 잿빛 파도와 붉은 얼룩, 오름과 해골을 배열하는 방식은 이전의 작품들과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4월의 여인>과 <5월의 여인>, <상황-오름> 역시 4.3과 5.18에 대한 작가의 역사인식이 유랑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데, 그것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유는 작가가 창조한 도상이 마치 떠도는 유령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스산한 정적만이 작가 의식세계의 복잡한 층위를 대변할 뿐이다. 단지 1948년이나 1980년이 다르지 않은 사회 현실은 강광으로 하여금 분노와 체념이 교차하는, 그러나 이 부당함과 계속 대적해야 하는 소명적 존재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회색 지대-정물> 역시 당시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민주화운동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야기된 희생에 대한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전의 <화실-정물>이 동물의 해골을 통하여 살육의 현장을 암시하였다면 이 그림에서는 방독면을 통하여 탄압과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상황>, <자화상>, <가족-회색 지대> 등의 작품들은 해골과 오버랩 되는 방독면을 통하여 이것은 동시대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 그럼에도 저항할 수밖에 없는 현실 상황이 교차한다.
한편 강광의 수미일관한 작업태도는 이러한 내용적 측면과 더불어 형식적 측면, 즉 세심하게 배려된 형태의 적용과 물질의 실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1990년대에 그린 <오색구름과 꽃나무>, <4월의 계곡>, <늪에 사는 새> 등은 자연을 해석하는 작가의 창의성과 예술가로서의 형식 탐구가 잘 나타난다. 이 작가는 일필휘지 혹은 감각에 의지해 대상을 희롱하는 것보다는 화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공간을 구성하고 대상을 배치한다. 아울러 재료나 매재(媒材)의 스밈과 번짐, 형태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단순화 또는 패턴화, 그리고 오브제의 사용이나 물질의 실험 등 현대회화가 이루어 낸 다양한 형식적 성과들을 작품에 적용함으로써 여타의 리얼리스트들이 근접한 바 없는 실험성의 극한으로 자신의 작업을 몰아가기도 한다. 이 모든 가치들이 작가의 내적 사유와 외적 실천에 근거한 예술적 성취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강광이 수미일관하게 천착해온 부분이 자연이다. 물론 여기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인간과 환경문제를 포괄하는 것으로 당초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가 마니산 기슭에 작업장을 짓고 귀촌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상태와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의중을 실천한 것이다. 이렇듯 예술적 실험과 현실참여로 규정되는 그의 운동가적 캐릭터에 역설적으로 부합되는 전원생활은 작가에게는 축복일 것이다. 이러한 자연은 그에게 현실적 모티브이자 정신적 참조 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삶의 터>, <나는 고향으로 간다>, <문산리의 05시> 등은 강화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자연을 재해석해 내는 예술가적 상상력과 미적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풍요로우면서도 함축된 형태와 초현실적 분위기, 유토피아적 공간 탐구는 현실 세계와 내면세계의 경계선상에서 그가 예술적으로 가시화하고자 하는 다양한 가치들이 내재되어있다. 그러나 그가 자연에서 찾은 모티브는 재현의 패러다임과는 일정 거리가 있다. 그는 마니산 자락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통하여 다시금 땅의 역사와 삶을 사유한다. 이렇게 환기된 삶과 역사는 자연의 수레바퀴라는 궤도 속에서 순환을 거듭하나, 그의 작품 속에서 유형·무형의 형태로 존재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머금은 채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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