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두 작고 30주기 기념: 류민자 개인전
2019.10.04 ▶ 2019.10.27
2019.10.04 ▶ 2019.10.27
전시 포스터
류민자
대나무 숲 한지에 채색, 97×194cm, 2019
류민자
만남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2×130.3cm, 2002
류민자
물뫼리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5×130.3cm, 2018
류민자
가족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97×194cm, 2018
류민자
피안의 세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62×130.3cm, 2002
가나아트는 하인두 화백의 작고 30주기를 맞아, 그를 회고하는 전시와 함께 그의 부인, 류민자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부부이면서도 한편으로 동료 미술가였던 이들은 서로의 예술관을 공유하고, 다양한 회화적 양식을 실험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성을 구축하였다. 하인두는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1세대 추상화가로서 한국의 전통과 불교 사상을 기조로 한 기하학적인 색면 추상을 선보이며 한국적인 추상화를 실현했다. 류민자 또한 전통성과 불교적 도상을 작업의 소재로 탐구하였는데, 이를 추상 형식으로 구현한 하인두와는 달리 구상과 추상의 조형 양식을 모두 실험했다. 그리고 나아가 자연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작업의 모티프로 끌어들임으로써 주제 영역을 더욱 확장하였다. 이번 전시는 상호영향 하에 있었던 하인두와 류민자의 작업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작업을 이해하고, 이와 동시에 하인두 화백의 작고 이후 현재까지작업 세계를 다층적으로 발전시켜온 류민자를 조명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류민자 – 정토에의 소망
한지와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이룬 다채로운 색채들은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분절된 일정한 띠들이 특정 형상들을 그려나가거나 그 자체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은 색 면들은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가 전체 무늬를 이루었을 때 장식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모자이크와도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색채의 조각들이 촘촘히 채워지거나 한 획이 절도 있고 분명한 선을 이루면서 지나간 자취들인데 그것들이 흡사 만다라나 단청, 꽃담, 색동 등을 두루 연상시켜준다.
대부분 단일한 한 가지 색이 칠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채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채워진 층이자 물감/색상들 간에 상호 겹치고 밀린 흔적이 고스란히 색으로 형성된 살의 촉감을 또한 일으켜 세워준다. 색은 여러 가지 색이 합쳐져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색을 더 발휘한다는 사실을 실감시키는 편이다.
작가는 화면 전체에 병렬식으로 혹은 좌우대칭으로 도상을 펼쳐내고 있는 편인데 그것은 여러 시간과 공간, 그와 함께 전개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한 화면에 종합적으로 펼쳐놓는 역할을 한다. 마치 불화나 탱화와도 같은 구성 방식이자 그 조형체계와 흡사하다. 굵은 윤곽선과 색 띠의 직조로 이루어진 단속적인 붓질과 두툼한 질감, 물성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색채가 공존한다. 특히 붓질은 짧고 단속적이고 끊어지면서 이어진다. 마치 하나의 획들이 자립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획의 성질, 나아가 선의 맛이 강조되면서도 강렬한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다. 한편 모필에 의해서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천을 잘라 뭉쳐 찍어가면서 화면에 터치를 만들거나 단속적인 붓질을 끊어가면서 연결해나가고 있다. 그 작은 터치들이 상당히 리듬감을 동반하면서 율동적이다. 너울거리는 곡선의 궤적도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파동 치는 리듬감이 있는 선과 운동감을 가시화하는 흔적, 선회하고 윤회하는 추상적인 선들의 움직임이 강조되는 그림은 일종의 기 氣의 가시화로 보인다. 채색화에서도 여전히 기운생동 하는 선의 흐름, 기의 세가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는 그것은 작가가 느끼는 영성이나 신성과도 같은 것의 시각화다. […]
작가는 자신이 평생 추구한 세계가 다름 아닌 '생명의 규칙'에 있다고 말했다. 그 생명의 법칙은 작가가 스스로 부여한 질서라고 생각되는데 동어 반복적인 표현이나 구획을 이루어 제각각 자리를 잡은 형태들이 그러한 예다. 하나의 구획을 지닌 선 안에 보색들이 섞여있고 여러 색들이 공존한다. 저마다 독립된 단위의 붓질, 선, 면이 서로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며 그림을 만들고 있다. 선/색 면의 밀집․병렬에서 오는 풍부함, 깊은 맛이 나는 색깔, 피부로 느껴지는 일정한 질감이 일반적인 채색화와는 매우 다른 무게와 질량감을 동반한다. 그리고 동시에 표면에서 일어나는 다소 낯선 질료성과 감각을 발생시킨다. […]
작가가 평생 추구해온 것은 결국 극락세계였다. 이른바 '평정심의 정토'였다. 그것들은 평범한 자연풍경 속에서, 추억 속 유년의 풍경 안에서, 한국인이 지닌 보편적인 경험의 자장 안에서도 마구 솟아난다. 그 추억의 형상과 색채들은 마음속에서 걸러내고 단축된 선과 색의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힌 어울림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빛을 발한다. 우리 한국인의 미의식의 지층에 깊숙하게 자리한 색채에 대한 감각의 지평을 거느리면서 출몰하는 그런 정토에의 도상화 작업이다.
그래서 작가가 즐겨 그리는 산과 바위, 달과 해, 사람 및 나무와 꽃, 집과 대나무 등은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도상이자 일정한 질서 속에서 순환을 거듭하는 것들이고 영원과 불멸, 이상적인 것들이기도 하다. 마치 십장생이나 민화, 불화, 혹은 우리네 옛 그림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찰나적인 흐름 속에서 소멸하는 것이자 동시에 거듭 환생하는 것들이며 한국인의 심상의 기억 속에 잠재된 원형으로서의 풍경, 공간이미지이자 극락이자 정토요 보살의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
■ 박영택
194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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