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검은 숲 속 Dark Forest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53x40.9cm
박광수
단단한 나무 Rigid Tree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53x40.9cm
박광수
흔들머리 Shaking Head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7x162cm
박광수
60 페이지 60 Pages 2012-19, 드로잉 애니메이션 Animated video, 반복 재생 Continuous loop, 150(h)x15x46cm (including plinth)
박광수
60 페이지 (스틸 이미지) 60 Pages (Still image) 2012-19, 드로잉 애니메이션 Animated video, 반복 재생 Continuous loop, 150(h)x15x46cm (including plinth)
박광수
사과 세 개 Three Apples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27x162cm
박광수
깊이 - 먼 산 Depth - A Distant Mountain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16.8x80.3cm
박광수
두 나무 Two Trees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116.8x80.3cm
박광수
큰 여울의 깊이 Depth of Great Rapids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59x193cm
박광수
크래커 003 Cracker 003 2019, 종이에 잉크 Ink on paper, 18x12.5cm
박광수
크래커 081 Cracker 081 2019, 종이에 잉크 Ink on paper, 18x12.5cm
박광수
크래커 121 Cracker 121 2019, 종이에 잉크 Ink on paper, 18x12.5cm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두운 숲을 헤매는 것과 비슷하다”고 고백하면서, 작가는 “힘을 다해 정확히 대상을 포획해보려 하지만 대상은 나에게 명확히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매 순간 진동하며 움직인다”고 덧붙인 바 있는데, 그의 그림이 “어두운 숲을 헤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대상 자체가 “매 순간 진동하며 움직”이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 다시 말해 숲과 어두움이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대상 자체가 숲이나 어두움과 구분 불가능한 방식으로 “진동”하며 분산되는 것이다. 명확하게 주어진 ‘숲의 선’이 아니라, 안정적인 선으로 머무르거나 남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역할을 바꿔가며 진동하는” ‘선의 숲’, 아니 ‘숲으로서의 선’이 문제인 것이다. […] 그에게 형상은 이미 언제나 시간 속에,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파멸 혹은 변형의 가능성 속에 있다. […] 이러한 ‘모호함’은 그의 드로잉들이 포착하는 시간성이 일직선적이거나 연대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혹은 특정한 순간에 ‘유예’된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나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는데, 그중 하나는 색채에 관련된 것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 The Raven>을 참조점으로 삼는 이번 전시의 제목(‘Nevermore’)이 웅변하듯, 그의 작업은 지금껏 검은색(과 흰색)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가 최근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을 사숙하는 것은, 이 색채라는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미술사의 고전들을 윤곽선 없이, 거칠고 화려한 색채의 브러쉬 스트로크로 재해석하는 브라운의 작업들은 드로잉으로 형상과 배경의 구분을 허물고 구부리는 박광수의 작업과 흥미로운 공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광수의 이후 작업이 탐사하게 될 또 다른 이행과 중첩의 지평에, 이들이 효과적인 탐침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의 작가가 하나의 선 안에서 분기하는 숲을 보고, 그 맹목의 길을 그 누구보다 탁월한 방식으로 더듬어온 박광수라면 말이다.
『‘형상과 배경’ (혹은 켄트리지) 이후의 드로잉: 박광수의 모험과 디지털 시대 드로잉의 변형』 中 발췌
■ 곽영빈 (미술비평가/영화학 박사)
긁적이는 속도
큰 벽에 붙어 이런저런 말과 형상을 긁어 그리며 앞으로의 전망을 생각해 본다.
눈과 손 사이에 그리기를 위한 어떤 얇고 긴, 통로로 된 근육이 있어 그 근육을 단련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통로에 어떤 대상이 걸려 있는 상태. 어중간하고 두루뭉술한 형상으로 시각 세계에 드러나지 않은 형상들은 가장 작은 단위로 해체되고 허공에 부유한다.
공기 같은 그림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과거와 미래의 끝이 아주 정교하게 맞물려 겹쳐있는 시간을 생각해본다.
불완전과 어눌함이 환대 받는 시각 세계를 생각해본다.
어떤 대상이 사라짐 이후 상태가 있다면 그 상태로 가는 통로 한가운데 있는 대상의 흔적들을 생각해본다.
이 물리적 세계에 발 디딘 것들에게 온전한 사라짐은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안다. 사라진 듯하지만 둘러보면 드러난다.
그들은 어디 멀리든 어느 구석이든 가게 되고 나는 그곳에 당도하기 전과 후의 과정에 위치한 그들을 기린다.
언어가 있기 이전과 이후를 생각한다.
사과를 굳이 사과라고 부르지 않아도 ‘사파’ 혹은 ‘ㅆ파ㅏㅏ’ 라고 불러도 되는 때를 생각한다.
거울에 붙은 사과 스티커를 본다. 스티커를 응시할수록 그 뒤의 나의 모습은 멀리 흐려지고 가까이 다가오기를 반복한다. 거울 너머와 스티커의 표면, 그 깊이감은 1-3cm 정도 되는 얇다면 얇은 두께로 인지되고 때로는 끝도 없는 바다의 깊이처럼 한없이 유영한다.
반투명한 선의 궤적이 표면 위에 얇게 쌓여 큰 그물을 이룬다. 속도와 방향이 있는 그물들이 뒤엉켜 이곳의 세계를 만든다. 형상과 배경은 서로를 뒤덮으며 침투하고 흐트러 놓는다. 형상들은 흔적만 남기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로 변형되어 보이기도 한다.
맥락 없이 덧붙여진 그래픽 스티커나 이모티콘, 티슈에 끄적이던 그림을 몸에 새긴 타투,
이미지를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급하게 떠내려 오는 계곡물의 나뭇잎처럼 사실 대상은 불확정적인 경로로 존재감을 획득한다.
■ 박광수
1984년 철원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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