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청년작가초대전 기묘한 식객_하루.K ”와신짬뽕“
2019.12.14 ▶ 2020.02.23
2019.12.14 ▶ 2020.02.23
전시 포스터
하루.K
편집된 산수 2019, 장지에 수묵채색, 160x130cm
하루.K
맛있는 산수 2017, 장지에 수묵채색, 200x240cm
하루.K
회피의 기술 40x60cm, 디지털 프린트, 2019
하루.K
가장 중요한 고민 2019, 디지털 프린트, 40x60cm
하루.K
그림 속 그림 2019, 장지에 수묵채색, 160x130cm
하루.K
Rainbow Moodeung Mountain 2019, 캔버스에 유채, 227x900cm
하루.K
맛있는 산수 2013, 장지에 수묵채색, 160x140cm
하루.K
백숙 2017, 장지에 수묵채색, 160x130cm, 성남큐브미술관 소장
전통 회화를 현대의 회화 속에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의 고민은 오랜 한국 미술의 과제였다. 급속한 서구화, 근대화 속에서 전통 회화는 나아갈 방향을 잃었으며 전통회화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문제는 우리의 것이 무엇이냐는 해결해야할 숙원의 과제를 던졌다. 이러한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의 과제는 그 토양과 문화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를 거쳐 전개되어 온 가장 고유한 성격을 찾는 정체성의 문제이며, 세계화 속에 열려 있는 동시대의 삶과 문화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가장 잘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면에서 하루.K는 전통을 계승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자유롭게 펼치며,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의 시대 감성을 산수화 속에 담아내고 있다.
하루.K는 산수와 음식을 주제로 주어진 공간 안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다른 소재를 뒤섞어 독특한 작품을 제작했다. 시대에 따라 산수의 표현은 변화했는데, 산수를 경외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의 산수화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산수 유람의 흥겨움과 흥취를 가지고 있다. 조선 화가들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야를 유람하고 산수화를 그리며 맑은 심성을 기르고 즐거운 삶을 꾸리며, 은둔과 풍류의 공간을 찾으며 산수를 찾았으나 그의 산수화는 현대인이 산수를 즐기는 모습이다. 그의 회화는 현대인의 여가문화를 담았지만, 산의 형태 표현은 먹으로 그린 전통적 회화기법이다. 이러한 산수화 표현은 이상향을 꿈꾸거나 산수와 벗하고자 했던 산수의 정신성과 영원성의 요소들을 담고자 했던 전통 산수화를 계승한다는 의지로 보인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전통 산수화의 계승적인 면을 이처럼 보여 주고 있지만 동시에 전통 산수화의 고답적인 그림 그리는 방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볼 수도 있다. 그의 산수화는 즐거운 것들로 넘쳐남을 강조한다. 영원하지 않은 순간의 기억들 뒤편에는 현대인들의 분주하고 바쁜 일상들의 풍경은 보이지 않고, 삶의 즐거움만을 만끽하기 위해서 움직였던 일시적 찰나적 시간이 있다. 이런 넘치도록 풍족함 속의 기억의 편린들은 보이지 않는 곳의 빈곤,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찰나에 지나지 않는 덧없음 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의 산수화는 전통 산수화에서 강조했던 내면적 정신성을 품은 채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연을 보는 유희적 이미지, 그리고 그 안에 순간적, 쾌락적 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작품을 그리는 형식에서도 기존의 한국화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 실험을 추구한다. 작가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데페이즈망 기법, 즉, 물체를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어내어 엉뚱한 곳에 놓아 심리적인 충격을 주는 기법을 적극적으로 화폭에 사용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은 크고 세밀하게 그리지만 덜 중요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 한 화면에 배치했던 전통 민화 기법들의 요소도 볼 수 있다. 끝없는 상상력의 변주를 중시하는 작가의 이러한 창작기법은 전통과 현재, 안과 밖,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과 민화적 기법, 여가활동을 즐겨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조선 시대 산수를 즐기며 유람했던 풍속도 등을 연상시키며 색다르고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의 산수화는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현재의 감성,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간 현대 사회와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근 입체 작품 「편집된 산수」(2019)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산수의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이를 컴퓨터 작업으로 변환한 3차원 입체 조형물이다. 100여 개의 다양한 흰색의 산으로 제작한 입체의 산수화는 아름다운 산수들의 컬렉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의 진보로 인한 대량화 속에 인간을 객체화시킨 작업이다. 기계화로 인해 쉽고 빠르게 인간의 경험이 기억되고 저장되지만, 수치화된 데이터들에는 인간의 감성을 담지 못한다. 작가는 순간의 쾌락과 영원의 기억, 풍성함 속의 허탈감, 미술품과 상품, 인간과 기계 등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에 대해 사유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기존의 부감법을 중시하는 산수화 형식과 달리하여 산수를 클로즈업한 대형 산수화 「Rainbow Moodeung Mountain」(2019)를 제작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변화를 주었던 기존 작품의 경향처럼 이 작품은 다양한 색채의 줄무늬를 통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수를 표현하였다. 그는 그동안 여러 고정화된 가치를 투영한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함과 강렬한 에너지를 품어내는 무등산의 이미지를 이 작품에 표현했다. 하루.K는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했으나 광주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시 근경에 위치해 광주의 상징체로서 수많은 화가들과 문인들의 소재가 되어 왔던 무등산을 산수화로 지속해서 그렸던 작가로서는 꼭 한번 그려 보고 싶었던 소재였을 것이다. 그의 「Rainbow Moodeung Mountain」은 자신을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던 토양 또는 정신적인 것에 대한 환원의 의미이며, 항상 변화를 추구했던 자신을 산수로 의인화한 표현으로 보인다.
미술관에서는 매년 광주전남 출신 청년작가 1인을 선정하여 청년작가초대전을 개최해 왔다. 초대작가 선정을 위해 학예연구직의 추천이 있었고 추천된 작가에 대한 작품 활동과 작품 세계를 알아보기 위한 세미나를 통해 다각적 리뷰와 토론을 거쳐 이번 초대작가로 하루.K가 최종 선정되었다. 하루.K는 12회의 개인전과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13년 신세계미술상을 수상했고 의재문화재단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번 전시 『기묘한 식객_하루.K "와신(嘩兟)짬뽕"』을 통해 2012년부터 제작한 「맛있는 산수」 연작부터 입체작품 「편집된 산수」까지 그간 청년작가로서 보여주었던 그의 주요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창작 의욕과 작가 생활을 영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예술가적 열정에서 오는 변화의 추구가 다음에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기대된다.
■ 홍윤리(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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