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수연
에어스트립 2016,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cm
김선영
Pause-cleaning 캔버스에 채색, 가변설치, 2018
김천수
Low-cut #49 white ink snap-lines on archival pigment print
염지희
나는 미래를 보았다 엘리펀트스페이스, 2018
임지민
기억하지 않기 위한 기록 oil on canvas, 130.3x162.2cm, 2018
정진
우연적 일치의 밤 acrylic on paper, 112x166cm, 2018
정재원
가을과 겨울 사이 mixed media on paper, 97x130cm, 2017
정철규
그냥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8
얼마 전 인터뷰 촬영이 있었습니다. ‘팔십 명도 아닌 여덟 명 일정 맞추는 게 뭔 대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입주 작가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 달에 채 하루나 날까 싶은 귀한 시간이었지요.
《2019 Cre8tive Report》는 그 맥락이 한 데 모이는 강어귀와 같은 전시이다. 강줄기를 되짚으며 여덟 군데 발원지를 하나씩 들여다 본다.
늦가을로 접어들어 실내에도 제법 냉기가 서렸건만, 촬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온기와 웃음이 넘쳤습니다. 누군가 최신형 핸드폰을 자랑스레 매만지자,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며 맞은편 작가가 실토합니다 “얘한테 넘어가서 나도 바꿨어요.” 그러자 신을 냅니다. “선생님도 폰 바꾸셔야겠네! 공모전에 쓸 사진도 찍고, 아이디어도 바로 메모하고 얼마나 좋아~” 어제 같이 밥 먹은 작가, 서로 열흘 만에 본 작가도 있을 텐데 서로 모르는 근황도, 장난에 농담에 거리낌도 없습니다. 단독 인터뷰를 앞두고 심호흡에 여념이 없는 어느 작가. 떼 지어 문틈으로 엿보던 다른 작가들이 키득거립니다. “진지 너무 잡수셨네.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생업과 작업, 서로 다른 일상으로 바삐 엇갈리는 와중에도 오며 가며 삼삼오오 다져 온 친분과 우정이 또렷이 느껴집니다.
입주 작가 생활에 친분이 늘 긍정적일 순 없겠지요. 파벌이 생겨 ‘친목질’을 부를 수도, 특정 작가 간 갈등의 빌미가 되어 오히려 작업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때 “웃고 떠들다가도, 언뜻언뜻 서로의 작업을 보면 자극받곤 한다.”, “먼저 와서 나중에 일어나는 누군가를 보면, 전시 소식에 들뜬 모습을 볼 때면, ‘열작’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늘 다짐한다.”라며 주억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 아마도 이게 바로 시너지이며 입주 작가 생활을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약력 한 줄 늘어나는 것 말고도 말이지요. 그리고 이번 《2020 CRE8TIVE REPORT》는 여덟 덩이 그 시너지를 여러분께 자랑하는 자리입니다.
불안정한 위치, 불분명한 방향, 불확실한 태도…거대 사회 속 왜소한 현대인 대부분이 느끼는 자신일 것입니다. 김선영 작가는 이런 스스로를 외면하는 대신 부릅뜨고 마주보려 애씁니다. 알 수 없는 동네, 쓰임을 잃고 널브러진 무언가, 흔들리고 움츠러든 풍경들은 생김새가 단지 사람이 아닐 뿐 일종의 자화상입니다. 어떤 작가나 작업은 종종, ‘내면을 담았다’는 둥, 딱히 와닿지 않는 설명으로 외면받거나 오해를 사곤 합니다. ‘나를 닮은 녀석’이라 보면 쉽습니다. 나약한 내 꼴과 속과 겁을 꿋꿋하게 응시하는 작업이지요. 작품을, 같은 박자로 닳고 늙고 성숙하는 분신으로 애틋하게 바라보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김선영의 ‘성숙’은, 불안을 깨고 밟고 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감싸 안아 원동력으로 키울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세상 생김새가 모두 그럴싸한 건 아닙니다. 사랑은 불멸 아닌 필멸이고, 봄꽃 가을꽃은 서로 만날 겨를이 없으며, 달의 뒤통수를 볼 수도 없습니다. 김수연 작가는 세상을 반죽해 입맛대로 다시 빚어냅니다. 사랑은 다시 다듬어 더욱 굳건히 하고, 개나리가 코스모스를 만나며, 보름달 같은 대가들의 숨은 그늘을 전면에 꺼냅니다. ‘대가’라 하면 으레 유명세나 웅장한 작업이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색색의 조각들이 기하학적으로 공중에 사열한, 칼더의 ‘모빌’같은 것들 말입니다. 누구나 아는 그의 작업 말고, 작업실은 어떤 모양새일까요? 어쩌면 빨강 검정 노랑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고, 원색을 사냥해 오와 열이 잘 맞게끔 꼬치에 끼워 익히고, 잘 익은 녀석을 다듬어 ‘모빌’로 출고했을는지도 모릅니다. 달의 뒷면엔 절구에 걸터앉은 토끼들이 ‘담배 타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요.
김천수 작가는 사진을 전공한 ‘정규 사진가’입니다. 그리고 그의 진짜 관심은, 반듯하고 진지한 정통보단 그 주변의 ‘삐침머리’나 ‘허점’을 기웃거립니다. 테러 현장 디지털 사진의 데이터 일부를 ‘테러하여’ 기괴하게 변형합니다. 카메라 센서 오류로 흔들린 사진을 바닥에 깔고,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 재개발 현장에서 쓰는 먹줄을 가져와 먹선을 칩니다. 무척 낡고 바랜 스키장 사진, 색이 날아가고 곳곳이 박락된 표면을 계속 바라보면 문득 불꽃놀이라도 하는 광경처럼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최근에 찍은 사진입니다. 폐 건물에 덩그러니 남은 ‘사진을 사진 찍은’ 것입니다. 낚였다 헛웃음을 칠 게 아니라, 데이터를 마치 재료나 오브제처럼 사용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유린하며 유희하는 그의 엉뚱함과 과감함에 주목해 봅시다.
각자가 사는 서로 다른 세상, 땅을 디딘 사람 수만큼의 세상을 콜라주한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닐까 합니다. 이질적인 것들, 서로 다른 눈높이와 원근, 모순과 갈등이 마치 원래 한 덩어리의 장면인 것처럼 천연덕스레 얽혀 있지요. 염지희 작가는 서로 다른 시공의 사람과 풍경, 시집을 읽으며 받은 영감 조각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직조합니다. 시선도 스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사는 인물들, 소실점을 소실하며 뒤섞여 버리는 풍경을 엮었음에도 의외로 화폭은 자연스럽습니다. 적당히 성글게 짠 화면 곳곳 틈새를, 감상자 저마다의 경험과 상상으로 채우며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별 기억 조각’과 ‘기억 덩어리’는 좀 다릅니다. 임지민 작가의 작업은 일종의 ‘기억 타래 memory collage’입니다. 실타래와 달리 기억 타래는 알 수 없는 논리-그렇다고 또 ‘무논리’는 아닌-로 뒤얽혀 있습니다. 기억 조각들은 분명 내 것임에도 때론 낯설고 새삼스럽습니다. 한 몸이었던 기억이 파편화하고, 다른 기억에 치이고 짓눌리며, 정처 없이 떠돌다 색과 맛이 변하고, 심지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건만 다른 기억에 가리고 굴절되어 전혀 새롭게 현재로 소환되기도 합니다. ‘손’은 기본적으로 강한 지시성 의도성을 띠는 대상인데, 특히 그의 작업 전반에서 인물과 정황을 제시 혹은 암시하는 효과적 장치로 활약합니다. 상황을 그대로 담거나, 처지 혹은 감정을 우화적으로 풀어내는 등 기억 못지않게 변화무쌍 다채로운 표현도 돋보입니다.
수십수백 년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나 웅장한 산세는 경이롭습니다. 전형적인 멋이죠. 반면 정재원 작가는 자연의 이면적인 매력을 찾아냅니다. 인적이 끊긴 재건축 현장은 을씨년스럽습니다. 주차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주민, 자전거 타다 넘어진 아이의 울음으로 번잡했던 시절이 불과 수 년 전일 텐데, 적막과 바삭한 낙엽 울음, 퀴퀴한 바람이 대신 들어찬 그곳의 첫인상은 사뭇 쓸쓸하고 공허합니다. 한편 미처 함께 이주하지 못하고 유기된 원래 주인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잎새는 더욱 짙어지고 수풀 사이로 이름 모를 온갖 식물들이 기다렸다는 듯 티격태격 세를 겨루기 시작합니다. 활기가 떠난 곳에 싹튼, 또 다른 활기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각축일 수도, 인간 사회의 이해관계 틈새에서 건진 자연의 어부지리일 수도 있지만 이 ‘역설적 황홀’은 여전히 그곳을 지킵니다.
그림을 보다 보면 가끔은, 장면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정진 작가의 그림은 곳곳을 열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트리 빵처럼 물리적 그림 층을 지녔지요. 뚫린 틈새로 엿보이는 또 다른 레이어는 보다 과감한 재료와 형식 변화도 너끈히 어루만지며 마치 한 화면의 확장처럼 자연스레 소화합니다. 틈새 너머 무한한 다른 시공을 암시하며 내용은 무궁무진 다방향으로 전개합니다. 만화에서 본 듯한 효과선을 회화 연출에 적극 활용하고, 동서양의 캐릭터나 설화를 거리낌 없이 호출합니다. 한정된 면적의 캔버스는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의미 밀도를 블랙홀처럼 계속 높입니다. 우주의 끝을 찾듯 회화의 의미, 역할, 가능성의 끝을 구도하는, ‘다채널 회화 실험실’이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구석, 그늘, 언저리, 이면, 부작용, 모호함…정철규 작가의 눈길은 초점에서 소외된 것들을 어루만집니다. ‘사랑’ 하면 따뜻하고 황홀한 이미지부터 떠오르지 엇나간 혹은 과도한 ‘사랑이 부르는 갖은 부작용’이 주인공을 맡는 건 드물지요. 사랑은 때때로 상위 구조나 권력의 변호인이나 전위대, 하수인 노릇을 합니다. “널 생각해서,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선의를 가장한 강요, 따뜻한 윽박지름에 도리 없이 아스러지는 연약한 존재들이 식물이나 돌멩이 등 작은 물체로 무대 중앙에 섭니다. 잊히고 버려진 것들은 트로피로 환생해, 오히려 이젠 ‘모시고 기릴’ 대상이 됩니다. 분명함을 강요받던 자신은 스스로 어중간하고 모호한 색상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미묘한 사람답게 감 색도 배 색도 아닌 중간색에 당당히 머뭅니다.
가끔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옵니다. 작업만 보면 이번 기수 작가들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다릅니다. 그러면서 또 어느 때보다 서로 잘 살려줍니다. 일종의 ‘인문학적 색채 대비 효과’같은 걸까요? 부디 이 화기애애의 불씨엔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고이 모셔다 미술계에 활기를 주는 큰 불씨, 9기 여덟 입주 작가 모두 서로 다른 색상과 모양새의 미술계 핫팩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큐레이터)
1984년 출생
불안 해방 일지 Anxieties, when Shared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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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OUT 4회: 권혜수, 김지수, 키시앤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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