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욱 개인전《칠漆하다(OVERLAYNG)》
2020.06.05 ▶ 2020.06.28
2020.06.05 ▶ 2020.06.28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168x162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122x90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243x180.5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245x245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300x300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250x250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61x710cm
허명욱
Untitled 2020, Mixed media(Ottchil) 350x120x90cm
1. 옻칠, 그리고 허명욱
가나아트갤러리는 감각적인 색으로 색면회화를 구현하는 허명욱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허명욱은 회화, 조각 그리고 공예 등 생활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에 머무는 다양한 작업을 전개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허명욱의 전반적인 작업들이 공개되는 자리로, 앞서 개인전이 개최된 가나아트 나인원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대작들과 새로운 신작들이 대거 전시될 예정이다.
허명욱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작업에 수반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작업은 크게 4가지의 연작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강판 위에 옻칠을 접목한 작업, 매일의 색을 기록한 나무스틱을 하나로 집합한 스틱 작업, 캔버스 천을 중첩하는 작업, 마지막으로 드로잉 기법을 활용한 작업이다. 강판을 본체로 사용한 작업의 경우는 ‘칠하기’의 반복이다. 강판 위에 옻칠을 한 후, 여러 차례 오븐기에 굽는데, 금속 위에 옻칠은 고온경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초벌이 된 바탕 위에 색을 입히기 위한 바탕 작업이 두, 세 달에 걸쳐 진행되고, 충분한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색칠하기와 건조를 반복적으로 행한다. 캔버스 천을 중첩하는 작업 또한 ‘칠과 건조’가 기본적으로 따르되, 찹쌀풀과 생칠을 섞은 호칠을 한 후 캔버스를 붙이는 과정이 추가된다. 캔버스 위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다시 생칠과 토회칠을 한 후 캔버스 천을 중첩하여 반복적으로 쌓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로잉 작업은 캔버스나 나무 위에 옻칠과 드로잉을 한 뒤 건조한 다음, 그 위에 패브릭을 붙이고 다시 건조한다. 이후 토회칠과 생칠의 과정을 거친 후, 충분히 건조되었다 싶으면 패브릭을 뜯어낸다. 그러면 남은 화면 위에 오랜 시간 동안 풍화된 듯한 흔적이 남는데, 작가는 이를 위해 그리고, 붙이고, 뜯어내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다. 즉, 그의 작업들은 칠과 건조, 쓰고 지우기 그리고 쌓고 뜯어내는 행위가 수없이 결집된 결과물인 것이다.
2. ‘공예가’ 허명욱, ‘화가’ 허명욱
매일 아침 허명욱은 색을 만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작가는 그날의 감정이 담아 직접 색을 배합함으로써 자신만의 색을 만들고, 이를 바탕이 될 매체 위에 겹겹이 바른다. 전시장을 찾는 많은 이들이 감각적인 원색을 통해 ‘허명욱의 작업’임을 알아채고 그를 떠올린다. 그만큼 색은 그의 작업에서 옻칠이라는 주재료보다 중요하다. 이와 같이 그의 작업에서 색에 부여되는 가치는 ‘옻칠’ 그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각적인 색을 구현하는 작가’로 정의되기 보다는 ‘옻칠 공예가’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옻칠’이 그를 드러내는 매체이면서도 동시에 가두는 매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개의 경우, ‘공예가’ 허명욱과 ‘화가’ 허명욱의 간극을, 굳이 어느 하나로 정의 내리려 한다. 그들은 종종 미술과 공예의 차이를 두고자 하며, 그 가치를 재단한다. 두 영역의 교차점에서 드러나는 유사성 또한 공예와 미술을 가르는 하나의 요소로 여길 뿐 아니라, 이를 순수회화와 실용공예 사이의 위계질서를 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실용공예와 순수미술의 관계는 더욱 밀접 해졌으며 다수의 예술가들이 실용공예와 순수회화의 통합이라는 목표로 새로움을 모색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바우하우스(Bauhaus)는 공예와 미술의 통합을 목표로 종합예술을 추구하였으며, 모홀리 나기(Moholy Nagy, 1895-1946),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등의 미술가들이 예술영역 간의 상호교류와 일상생활과 밀착된 예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따라서 허명욱의 작업은 분리와 배제가 아닌 상호 공존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가치 체재로 탐구해야 한다. ‘옻’은 허명욱의 전 작업의 기반을 이루는 공통 매체이긴 하나, 옻을 순수회화와 공예를 정의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옻이 전통적인 공예 재료라는 이유로, 혹은 작가가 공예를 병행한다고 해서 그를 회화도 하는 ‘공예가’ 혹은 공예도 하는 ‘화가’로,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허명욱의 작업을 순수미술과 실용미술이라는 인위적인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이해할 필요는 더욱 없다.
실제로 작가는 옻칠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옻칠’은 작가에게 조금 더 감각적인 색을 만들어 내기 위한 갈망에서 비롯된 매체다. 허명욱은 본인이 원하는 색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매체들을 활용한 색 실험을 해왔으며, 오랜 노력 끝에 찾아낸 옻칠을 통해 그가 원하는 감각적인 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허명욱은 ‘색’이 그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색채를 통한 감성을 추구하는데, 색은 그날의 감정이고, 그날의 생각을 담은 매개체로, 매일 아침 그가 색을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다.
또한 색은 특별한 재현요소 없는 허명욱에 작업에서 조형언어로서 기능한다. 작가는 특별한 조형적 구조 없이 오로지 ‘색’이라는 특성만으로 평면에 깊이감을 더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성을 구축하였다. 예컨대, 원색의 파랑색이 전면을 덮은 작업은 빛과 화면 안에 드리운 그림자, 그리고 칠과 캔버스 천이 만들어내는 마티에르(matière)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추상의 평면에 조형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겹겹이 칠해진 색들은 반복적인 칠 과정을 통해 더욱 짙어 지면서 깊이 있는 추상화면을 만들어내며 나아가 뜯어내고 지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의 변화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흔적들은 작가만의 회화적 조형언어로서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칠과 건조, 붙이기와 뜯어내기의 과정이 수반되는 작업방식은 허명욱의 작업에 촉각성을 부여한다. 그의 회화작업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옻 자체의 물질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나는데, 패브릭 작업에서 나타나는 반복되는 형태들은 표면의 촉각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로써 작가는 옻칠에 수반되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물질성, 촉각성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색채를 통한 서정적인 감수성까지 전달한다. 즉, 색을 향한 그의 예술적 본능이 바르고 건조하고 다시 칠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가능케 함으로써 감성과 물질이라는 양극의 특성이 작업에 동시에 구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물질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그리고 ‘실용공예와 순수미술’을 넘나드는 허명욱의 작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허명욱의 삶’이다. 아침마다 그가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색채들과 옻칠을 바르고, 구축하고, 지우고 건조하는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은 결국 그의 삶을 대변한다. 작가는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더욱 중첩시킬 뿐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작업에서 드러나는 시간의 흔적 또한 담는다. 허명욱은 작업에 우리의 세월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는 시간이 만들어낸 색으로 세월에 안에 담긴 우리의 서사를 작업에 풀어내는 것이다. 그림은 작가가 색으로 쓴 글과 같으며 삶과 예술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다. 예술과 삶은 깊이 연결된다고 믿는 허명욱에게 색은 그의 이야기를 보는 이에게 전달이 가능케 하는 언어다. 우리는 그가 색으로 보여주는 삶의 이야기를 읽고, ‘예술가’ 허명욱의 서사를 눈에 담아내면 된다. 이에 따라 이번 전시는 그가 만들어낸 시각적인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수공예적 아름다운이 깃든 허명욱만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허명욱, 시간의 결을 찾아
서성록(문화평론가)
허명욱의 작업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물감이 아닌, 전통적인 옻칠을 기용하여 자신의 작업을 꾸려가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을 찾은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을 예술재료로 사용해보자는 발상이었다. […]
문제는 나무를 보호하고 광택을 내는데 쓰이는 옻칠을 어떻게 회화의 재료로 응용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작가는 이 문제의 해법을 다른 안료와 혼합하여 옻칠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독특한 표정을 갖도록 하는 방식에서 찾았다. 담백하고 수수한 미의 성정을 선호한 옛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그의 작업도 단 한번의 필선이나 기교에 의해서가 아닌 무수한 행위의 축적 위에서 밑의 색이 올라오는, 마치 음식에서 재료를 숙성시켜 오묘한 맛을 자아내듯이 자연발효의 과정을 닮아 있다. […]
‘폐허의 로베르’(Robert of the Ruins)라는 애칭을 들었던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가 문명이 멸망한 미래의 모습을 끈질기게 묘출한 것은 결국 시대의 오만한 수호자들에 대한 경고였다. “현자, 귀족, 권력가, 왕, 정복자 / 죽음은 이들을 겸손하게 만든다 / 왜 한 시간의 영광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는가”(Edward Young) 시인은 이끼가 낀 묘석에 앉아 과거 위대한 사람들의 운명을 이렇게 읊었다. 결국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사물의 시간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간성도 엄연히 한계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존재는 소멸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허망한 생각을 ‘염세주의’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세속적 욕망의 아편에 해독제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소멸의 상기(想起)만한 특효약도 없다고 본다. ‘내려놓음’을 하루라도 거른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욕망에 사로잡혀 시간의 썰물에 떠내려가게 되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시간의 엄중성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변치 않는 것의 갈망은 작가의 금박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금박 작품은 금박 특유의 재료에서 나오는 화려한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그 무엇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품고 사는 것 만치 의미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향한 열망, 즉 인간의 허기를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금이 지닌 ‘불변의 상징성’이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더미에 있지 않고 마음의 행복에 있음을 나타내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좀더 근원적인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메를르 퐁티(M. Meleau-Ponty)의 마지막 에세이 “눈과 마음”(Eye and Mind,1961)에서 역설했듯이 우리는 예술 ‘자체를’ 본다기보다 그것을 ‘통해서’ 본다. 허명욱의 작품을 볼 때도 그런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더 넓은 곳, 의미의 지평으로 뻗어가게 된다.
서성록 평론글 중 발췌
196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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