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2020.08.19 ▶ 2020.11.22
2020.08.19 ▶ 2020.11.22
전시 포스터
임동식
MA-03-00006983, 1981년 공주 금강에서의 〈일어나〉 8×11 cm
임동식
화석캐기 2019-2020, 캔버스에 유채, 232×111 cm (3),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임동식
원골에 심은 꽃을 그리다-3 2019-2020, 캔버스에 유채, 182×227 cm,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임동식
MA-01-00007625, 1987년 《예술시도》 도록 29.5×21cm
임동식
MA-03-00007290, 함부르크에서의 〈관계로의 사실회화 단상-꽃그림과 벌〉 사진 12.5×17.5cm
임동식
별빛 1985, 종이, 먹, 29.7×21 cm, 사진: 스튜디오엔아이엔
임동식
MA-03-00006730, 1993년 서산 개심사에서의 〈토끼〉 사진 20×20cm
임동식
일어나 2019-2020, 캔버스에 유채, 104.5×149 cm,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임동식
1980 금강현대미술제 김영호의 강에 흰선 띄우기를 그리다 2019-2020, 캔버스에 유채, 111×232 cm, 사진: 홍철기. 서울시립미술관 제작지원
I. 몸 짓
1964년 서울로 상경하여 1979년 다시 공주로 낙향하기까지, 자생적인 미술 실현에 대한 열망을 가진 임동식이 야외 현장에서 행하는 ‘퍼포먼스’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몸짓은 작가의 ‘몸’, 그리고 무언가 행하는 ‘짓’으로 기존 형식에 변화를 추구하던 젊은 임동식의 날것과 같은 몸부림과 답답한 현실과 대척되는 순수한 자연이 어우러진 생생하고 풋풋한 에너지의 표징이다.
임동식은 본인만의 예술 어법을 모색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1974년 1월에 발족한 ‘한국미술청년작가회’의 창립 멤버로서 꾸준히 야외 현장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행위와 설치 예술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1980년에는 홍명섭 등과 함께 《금강현대미술제》를 개최하고, 1981년 여름에는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자연미술을 시작한다. 독일 함부르크 유학 시절(1981–1989) 동안에도 본인의 작품을 비롯한 야투의 작업을 독일 현지에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이후 한국 자연미술에 관심을 가진 외국 작가들이 내한하여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금강, 1991)을 함께 하기도 한다.
자연이라는 ‘밖’에서 행한 퍼포먼스가 기록되어 ‘안’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의 자연미술은 크게 ‘밖’과 ‘안’의 활동으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방법론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그의 미술은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되어 무한히 순환하는 구조에 가깝다. 순간의 행위를 기록한 사진과 단상은 재편집되어 작품집으로 아카이빙 되거나 전시로서 소개되기도 하고, 다음 퍼포먼스의 개진을 위한 참고 자료로서 다시 활용된다. 지난날 그의 몸짓은 현재 시점으로 반복 소환되어 자연과 인간, 양자의 수평적 유대라는 시각에서 다각도로 재창조되는데, 이는 작가만의 독특한 예술 방식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II. 몰 입
독일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시절 ‘안’과 ‘밖’에서 이뤄진 작업의 계획과 결과는 테마별로 나뉘어 약 스무 권의 손수 만든 자료집으로 거듭나며, 무수히 넘쳐나는 생각의 실타래는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 장의 종이에 자유롭게 풀어진다. 이런 유일무이한 책들과 유희적인 드로잉은 임동식의 세세한 사유의 편린들까지 기록된 방대한 아카이빙이다. 아이가 놀이 삼매경에 빠진 듯, 몰입하여 행한 이 시기의 작업을 ‘놀이(play)’로 특징지어 구분해보면, 다음의 세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음향시각놀이Sound-visual Play
사운드와 영상 매체를 일상적 그리고 자연적인 요소와 함께 결합시키는 작업을 통칭한다. 임동식은 생명의 원천인 ‘알’, ‘거북이, ‘부처’ 등의 요소 외에도 일상의 소리를 채집하여 자연과 유사한 지점을 찾는데, 삶과 예술의 통합을 지향하는 플럭서스(Fluxus) 계열 예술에 영향을 받은 면이 엿보인다.
환영놀이Illusion Play
허상과 실상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들이다. 솔거가 황룡사에 그린 소나무 벽화에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이야기처럼, 작가는 냅킨 위에 그린 꽃에 벌이 날아오기를 기다린다. 실제로 꽃이라고 착각하고 온 벌의 개입으로 인해 허상이 실재로 전환되어 회화를 완성하는 일련의 퍼포먼스 시리즈는 비둘기, 오리, 참새 등으로 놀이의 대상이 확장된다.
매체놀이Medium Play
번뜩이는 실험 정신으로 가장 원초적이면서 다채로운 매체와 기법을 활용한 드로잉을 일컫는다. 날달걀, 지우개 가루, 풀잎, 동물의 털, 철사 등 다소 생소한 매체와 덧그리기, 지우기, 오려 붙이기와 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존재와 부존재, 완성과 미완성, 자연과 비자연, 과거와 현재의 경계와 의미에 대한 담론을 이어나간다.
III. 마을
임동식은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3년부터 10여 년간 공주 원골에서 터전을 잡는다. 마을에 정착한 그는 손수 살 집을 짓고, 수선화를 비롯한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고, 어미 잃은 산토끼, 강아지를 키우며, 몸으로 자연과 부대끼며 생래적 자연율(自然律)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자신을 자연 속에서 풀어 놓는 법을 터득한 작가의 몸짓과 붓질은 더욱 자연스럽게 영글어 간다.
한편, 마을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으면서, 임동식은 ‘농경’이란 ‘자연과 교감하는 삶의 방식’으로 농사짓는 행위와 자연 예술 행위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동네 사람들도 임동식과 동료 작가의 활동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동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는 10년간 원골 주민들과 함께 《예술과 마을》이라는 미술제를 개최하는데, 이는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 미술의 선구적 형태를 선보인 사례이다. 예술이 마을과 일상에서 구현되는 사례를 통해 작가는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 즉 농경이야말로 자연생명예술의 원형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동시에 현대인들이 겪는 환경적, 정신적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단위의 삶과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IV. 시 상
임동식의 예술세계 저변에는 사라져가는 자연 그대로의 것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있다. 이에 ‘0’, 즉 순수한 자연상태에 과한 균열을 가하는 행위를 지양하고, 0에 수렴하는 무위(無爲)의 몸짓으로 틈을 만들어 그 자체로 예술인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자연과 예술의 경계선상에서 그의 작품은 고도로 함축적이고 축약된 표현을 통해 시(詩)에 드러나는 미학적 정서와 닮아 있다.
친구 우평남과의 만남은 임동식 예술세계의 깊이와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우평남을 ‘자연예술가’라 칭하고, 자신이 ‘0’의 상태에 무언가를 더하고 빼며 작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를 반추해보며, 삶 안에서 미적 의식을 끌어내는 친구의 순수한 눈을 닮고자 한다. 우평남은 아름다운 장소를 임동식에게 소개하고, 작가는 벗이 권하는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화답한다.
자연과 삶을 대상으로 안팎이 연결된 무한 순환적인 임동식의 예술 방법론은 회화에서도 적용되어 독특한 회화적 언어가 탄생한다. 자연과 동등한 관계로 상호 교감하는 미묘한 순간을 가장 자연적인 형태로 묘사하기 위해 긴 세월에 걸쳐 구조, 안료, 표현 방식 등을 끊임없이 실험하여 ‘개작’을 하는데, 떠오른 시상(詩想)에 잠겨 시를 반복해 가다듬는 과정과 닮아 있다. 또한 동양화의 여백처럼 보는 이가 사유할 수 있는 틈을 주거나, 심지어 비나 눈이 내리는 현재 진행적인 효과를 내어 그 사이공간의 공기층까지 느끼게 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연결한다. 나아가 한 대상을 여덟 방향에서 그리거나, 몸짓으로 한 행위를 하루의 주기에 걸쳐 각각 표현한다. 이는 시시각각 떠오르는 심상을 회화로 구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여 반복해온 그의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최근 작가는 동료들의 과거 작업을 소환하여 회화의 주제로 삼고 있다. 또 이십 년 전 미처 기록되지 못한 동료의 퍼포먼스를 기록하고자 시도하여, 이를 글과 사진으로 『예술과 마을』에 실은 바 있다. 이번 신작은 회화로써 유실된 기록을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새로운 개념의 창작물이자 아카이브이다.
그의 회화는 과거 자연에서 행한 퍼포먼스에 대한 ‘재연’을 넘어선 새로운 ‘해석’으로서, 사진과 영상 등의 기술 매체가 담아내지 못하는 기억과 감정의 흔적이 가감, 증폭된 한 편의 시(詩)와 같다.
1945년 충남 연기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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