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희, 기억상실중 記憶像實中: 암묵의 풍경 暗默風景
2020.08.29 ▶ 2020.10.04
2020.08.29 ▶ 2020.10.04
전시 포스터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1: 포카라에서 새벽을… 9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2:새로운 땅을 향하여 9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8:도문과 두만 사이에 흐르는 물 9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10:비장한 아침 9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9_ 땅 끝 몽타쥬 162x13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6_ 기억이 기억을 만지다 162x13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7_기억이 기억을 만지다 162x13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3:주울 이삭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11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4:Ozi road, baobab tree 110x170cm, oil on canvas, 2020
양지희
The Jubilee of memory _ episode5_난파선, 사그라질 문명이여 110x170cm, oil on canvas, 2020
“자연, 풍경, 그리고 인간”
카메라타아트스페이스는 2020년 8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양지희 작가 초대전, <기억상실중 記憶像實中: 암묵의 풍경 暗默風景>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광활한 풍경 안에 작은 점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을
다양한 변주로 실험해왔던 양지희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한없이 익숙하면서도 기묘하게 낯선 이중성을 가진 풍경은
여행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해 직,간접 경험한 특정 장소들이 축적되어
작가의 기억과 사진과 회화라는 두 장르의 협업으로 태어난
실재하지만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자연의 총체적인 모습입니다.
거대한 설산, 무한한 바다, 영원에 맞닿은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대지는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존재를 더 없이 겸손하게 드러냅니다.
흠없는 태고의 풍경이 펼쳐진 모뉴멘탈한 작품들 앞에 서면,
18세기 미학자 버크가 언급한 압도적인 숭고미로 정화되는 한편,
2020년을 뒤흔들고 있는 감염병과 폭우로 인한 수많은 상처와 상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을 은연 중에 깨닫게 됩니다.
이상과 실제를 통합한 겸재 정선의 조선시대 산수화의 전통과
17세기 네델란드 풍경화 및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프리드리히를 동시에 관통하고 있는
양지희 작가의 작품들은 심도있는 미술사적 함의를 가지며,
21세기 평면 작업이 지닌 한계를 사진과 회화라는 장르적 실험으로 확장시키면서,
풍경화라는 전통적 장르 안에서 코로나 시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며 승화하고 위로하는 기회를 줍니다.
자연에 빗대어 인생의 덧없음을 들려주는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카메라타음악실에서 감상하신 후,
바로 옆 갤러리에서 양지희 작가의 작품들과 만나보신다면 어떨까요?
작가의 말
“기억의 풍경, 풍경의 기억 – 비분리된 실재의 형상, 평면화된 기억의 사진회화”
모든 대상은 실재하는 것인가?
그것이 실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내 안에 대상과의 겹침이 없다면,
그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내게 실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본인은 사진의 외부의 대상만을 오롯이 나타낸다고 믿어왔다.
카메라가 내 밖에 존재하는 대상을 포착하여
이를 내게 전시하는 것이 사진이라 생각했다.
즉 사진이 보여주는 대상은 내가 관여하지 않은 세상의 실재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나의 바라봄이 없다면 사진도 있을 수 없다.
사진도 눈이라는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관계 맺음의 결과일 뿐이다.
나의 관여가 없다면, 사진은 없다. 결국 모든 형상의 나타남은,
그것이 설사 별처럼 멀리 떨어진 것이라도, 나의 개입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가 나타나는 현장은 내 안의 관념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나로부터 독립되어 철저히 외부에만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내가 소멸하는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과 회화의 풍경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두 가지 모두 무한한 대상들 중에서 나의 시감각이 반응한
극히 미세한 일부를 나타낼 뿐이다.
아무리 거대하고 광활하다 하더라도 내 감각이 가두지 못 한다면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이 나타내는 것은 대상의 실재라기보다는 주체와 객체가 눈을 통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과 회화 중 어떤 것이 실재의 형상을 나타내는가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주체와 객체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기계에 의한 나타남과 손에 의한 그것도 나누어질 수 없다.
또한 사진을 찍는 행위조차 눈과 손과 같은 감감기관 뿐만 아니라
이미 수많은 내가 반영이 되어 있다.
그것은 나의 기호와 성향 혹은 기억 등,
나를 이루는 수많은 특성들로 인해 일어난다.
내가 거세된 이미지의 포착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설사 내가 무의식적으로 찍는다 해도,
그러한 의지에서조차 나는 이미 반영이 되어 있다.
결국 사진이 내가 스스로 새겨놓은 어떠한 형상들의 알레고리일 따름이다.
그 형상들은 외현의 기억보다는
차라리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에 내재되어 있다.
본인의 작업은 그 기억 안으로, 끝과 시작, 깊이와 높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그 기억의 심연 안으로 떠나는 순례의 여정이다.
그 여행의 길을 통해 결국 내가 찾아가는 곳은
내 자아가 싹트고 태어나고 자라나는 곳, 나만의 본향이기 때문에,
기억의 여정에서 나타난 이미지들을 기록한 본 작품들을
‘기억의 희년(the jubilee of memory)’으로 명명한다.
처음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
내게 이것은 일종의 유희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숨은그림 찾기와도 유사했다.
여행지에서의 수많은 사진들을 다시 찾아봤을 때,
그것의 이미지와 내 기억 사이의 매우 큰 간격을 발견했다.
그 커다란 간극을 회화로 왜곡하면서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거나
매우는 것이 초기의 사진 회화 작업이었다.
이후 타인과 나의 시각적 경험을 뒤섞는 형태로 작업을 발전시켰었다.
여행지에서 내가 찍은 사진과 타인의 사진을 몽타주로 매끄럽게 연결시켜
하나의 시각적 경험, 즉 회화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완전히 나를 제거하여,
타인의 사진들로만 포토몽타주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는 마치 타인의 시감각 경험 안에, 그 기억 안에
내가 온전히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합치되는 과정이 두 개의 사진을
하나의 회화로 구성하여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주체와 객체의 기억,
그리고 사진과 회화의 매체적 경계를 넘나들면서
내 안의 여러 벽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혼재와도 같았는데, 나는 마치 모든 기억이 평면화되어
유아와 노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인생 말년의 노인처럼
내 안에 저장된 수많은 이미지들을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고성의 바닷가 하늘에 네팔의 안나푸르나가 떠올랐고,
두만 강변에 살아가는 잔지바르 마을이 기억났다.
이것은 실재인가 허구인가.
두 개의 사진을 매끄럽게 이어붙인 이미지는 거짓의 풍경인가
아니면 내 관념 안에 끊임없이 생성하는 형상 중에 하나인가.
누군가는 언어야말로 존재의 집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이미지라 해서 존재의 근원이라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 무한한 이미지 중에서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만을 골라
내 관념이 기거하는 집을 짓는 것,
그 행위에 있어서 실재와 허상, 사진과 회화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그리고 나와 너, 나와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야말로
내가 지금도 존재하는 방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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