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식: 기록사진 記錄寫眞 - 히가시오사까조선중급학교 東大阪朝鮮中級學校 展
2020.10.16 ▶ 2020.11.15
2020.10.16 ▶ 2020.11.15
임수식
H5531 Archival Pigment Print, 15x12cm, 2018
임수식
책가도135 프린트된 한지에 손바느질, 123x107cm, 2015
임수식
책가도183 프린트된 한지에 손바느질, 39x31cm, 2018
임수식
책가도187 프린트된 한지에 손바느질, 86x100cm, 2019
임수식
H4638 Archival Pigment Print, 15x12cm, 2018
임수식
H4707 Archival Pigment Print, 12x15cm, 2018
임수식
H5662 Archival Pigment Print, 15x12cm, 2018
임수식
H5730 Archival Pigment Print, 12x15cm, 2018
한낱 가능성으로서의 사진,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실재
#1 불가능한 읽기와 보기
임수식의 일련의 작품, 「수필」(2007), 「Room.K.」(2009), 「바벨」(2011~2014), 「책가도」(2008~현재)에는 '책'이 공통의 소재로 등장한다. 임수식은 초기 작품부터 언어와 이미지와의 관계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의 인식이 책-문자를 통해 열리고 해석과 분석으로 개화한다면, 작가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책은 귀한 의미존재이다. 로고스의 절대 보고이면서, 의미를 가두거나 비우는 존재의 집인 '책'이 임수식의 사진 작품에서 다채로운 이미지로 박혔다. 「수필」, 「Room.K.」, 「바벨」에서 작가는 책에 대한 정보와 텍스트의 의미 등 확연한 서사와 내용은 사라지게 하고, 문자의 테두리를 해체해 책의 바깥과 물성만을 보여준다. 가령 「수필」은 읽어낼 수 없는 글자들의 얼룩이고, 「Room.K.」에서는 무슨 책인지 도무지 확인할 수 없는 책등만 제시된다. 그런가 하면 「바벨」의 책장은 드넓은 풍경 곳곳에 하얀 여백으로 서 있다. 책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느닷없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작가가 세 시리즈에서 보여준 책-이미지는 읽기가 불가하고 의미가 단절되어 관객은 그저 맹목의 사진 보기를 시도하다가 이내 의미로부터 미끄러지는 좌절을 겪는다.
작가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책가도」시리즈에 이르러 원근이 해체되며 다시점으로 형상화된다. 책이 꽂힌 책장의 왜곡을 최소화해 한 칸씩 촬영해서 한지에 인화한 후 마치 조각보를 만들 듯, 한 조각씩 바느질로 꿰매 책장 전체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공정이 이러하다 보니, 한 점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최소 사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사진을 찍는 눈 보다, 사진을 쥐고 바느질을 하는 손의 시간이 8할을 차지한다. 책장을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칸씩 찍어서 다시 이어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의 지문이 지나가는 자리가 화석처럼 남아서 탄생한 작업, 「책가도」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한 점의 사진이 되었다. 책장을 소유한 이의 사유가 임수식의 바느질을 통해 현현(顯現)되기에, 관객은 꽂힌 책을 한 페이지씩 음미하며 눈길을 연다. 「수필」, 「Room.K.」, 「바벨」이 읽기의 불능을 표상한다면, 「책가도」는 개별 세계를 이어 주는 박음질 '사이'에서 새로운 읽기가 시작된다. '여백'으로 비로소 존재하는 '사이-공간'인 박음질이 길게 뻗어 나가며 새로운 길을 만든다.
#2 숨 쉬는 기억의 연대
재현할 수 없는 것의 직조로 이뤄진 이 「책가도」가 일본에 있는 한 조선학교의 책장을 옮겨왔다. 작가의 일련의 작업을 짚다 보니, 왜 조선학교의 책장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끊김 없이 계속 이어지는, 우리가 독해해야 할, 텅 빈 공간 때문이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 애써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임수식은 국적이 '조선'인 사람들을 찾아간다.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대한민국도 아닌 '조선인'은 한반도가 둘로 분단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남한도 북한도 아닌, 계속 '조선'을 국적으로 가진 사람이다. 일본에 거주하며 '주민세'를 내고 있지만, 일본 국적, 즉 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게 되면서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거주하게 된 교포들은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으로 규정하며, 민족적 정체성을 강고히 하기 위해 조선학교를 설립하고 그들의 후손들도 자연스럽게 조선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재일조선인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근대라는 역사, 세계대전과 분단, 그리고 한일 관계 등 중층적 시공간과 복잡한 회로를 경유 해야 한다. 단순한 흑백논리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기에 조금 힘들더라도 그 근원을 찾아가야 재일조선인의 국적 문제가 보일 것이다.
임수식작가가 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오사카시 이쿠노구)를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조선학교 중 학생 수가 가장 많았던 이 학교가 2018년 3월에 폐교하게 된다. 일본 정부의 고교무상화제도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비롯해 재정난이 큰 요인이라고 했다. 그즈음의 뉴스 기사를 살펴보니 우리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 실태 보고서를 유엔(UN)에 제출해 "일본 내 조선학교와 학생들은 현재 심각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며 "특히 2010년 시행된 고교무상화제도로부터 배제되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급되는 교육보조금이 중단되는 등 심각한 교육권 침해상황에 처해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고, 최근 조선학교는 일반학교와 통폐합 수순을 밟으며 서서히 자취를 감출 날만 남은 것 같다.
처음에는 조선학교 도서관의 서고가 궁금해 찾아갔다가, 학교가 없어지는 전 과정을 목도한 작가는 남아 있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물과 공간을 낱낱이 촬영한다. 사진 속 어느 교실의 뒷벽에는 "앞으로도 우리 학교에 다닌 긍지와 자부심을 항상 가슴에 새겨 마음껏 배우고 또 배워 훌륭한 조선청년으로 자라나리라 굳게 믿습니다"라고 적힌 졸업축전이 분홍빛으로 빛난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텅 빈 운동장, 사라진 문고리, 위로 비틀어진 수도꼭지, 방치되어 먼지가 자욱한 트로피, 교실의 깨진 유리창, 뽑힌 기념탑 등 사진 속 사물에서 온갖 사연이 들려온다. 책장에 꽂힌 책을 살펴보니, '내일의 도시', '인문지리학 개론', '문화코드', '대중문화의 이해', '일본사회 개설', '그리스 민주정치의 탄생과 발전' 등의 책과 함께 '서양사강의'와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중고생 교실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사물과 풍경이다. 임수식은 오직 사진기록에 충실히 임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기록해 기억의 창고에 보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기록하는 자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의 마중물이고, 없어진 과거의 시간대를 흔들어 깨운다. 깨진 기억은 박음질로 꿰매질 수 있기에, 일단 조각난 파편이라도 모아야 한다. 그래야 기억이 숨을 놓지 않는다.
#3 불가능한 실재, 사진과 조선학교
조선학교의 책장을 옮긴 임수식의 「책가도135」와 「책가도187」을 보며 지난 100년의 시간대를 짐작해본다. 저 높은 간도의 윤동주로부터, 서쪽 멀리 팔레스타인의 에드워드 사이드, 그리고 현재 일본 내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정치적 상황들,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재현의 문제도 드러난다. 흔히 '재일동포', '조총련', '북쪽'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일본 내에서 겪어야 할 불편도 찾아보게 한다. 조선학교를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들의 의지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다. 조각난 파편을 꿰매 기억의 망으로 건져 올린 작가의 '책가도'의 형식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국적 없이 떠도는 이들의 '실재'는 박음질의 '사이-공간'에 겨우 잔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모두 보여주거나,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매끈하고 얇은 표면이 감춘 진실은 때로 두텁기도, 허무하기도 하다.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두텁고, 한편 나와는 무관하기에 허무하다. 그래서 쉽게 실재와 접속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텅 빈 공백만 응시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일조선인'은 참으로 '사진적'이다. 이미지로 존재하거나, 이미지 뒤에서 숨 쉬다가 가끔 유령처럼 우리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며 '(불)가능한 실재'를 드러낸다. 임수식작가가 그동안 읽어낼 수 없는 텍스트를 사진으로 찍고(수필, Room.K. , 바벨), 원근을 해체하며 다시점(多視點)과 공백으로 연대하고(책가도의 박음질), '한낱 가능성'으로서의 기록(히가시오사카 조선중급학교의 기록)을 한 이유는, 비가시적인 세계에 숨 쉬는 실재를 어떤 식으로든 보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임수식 사진의 어떤 가능성이 아닐까. ■ 최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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