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철
넋-위안부 2006, Oil on canvas, 190x120cm 74.8x47.2in
권순철
예수 1994, Oil on canvas, 177.4x167.5cm, 70x66in
권순철
청주중앙공원 1982, Terracotta, 30x30cm, 11.8x11.8in
권순철
위안부 2016, Oil on canvas, 90.7x72.5cm, 32.7x28.5in
권순철
무제 2020, Oil on canvas, 130x162cm 51x63.7in
권순철
전봉준 2018, Oil on canvas, 162x130cm, 63.8x51.2in
권순철
윤봉길 2017-2020, Oil on canvas, 162x130cm, 63.8x51.2in
권순철
목련 2020, Oil on canvas, 25.7x17.7cm, 10.1x6.9in
• 한국적 표현주의 화가 권순철의 4년만의 개인전 <흔적 Trace>, 평창동 가나아트 기획전
가나아트는 2020년 마지막 전시로 한국근현대사의 이면에 관심을 두고 회화작업을 전개해온 권순철 작가의 개인전 <흔적 Trace>을 개최한다. 2016년 대구미술관 개인전 이후 4년만의 전시이다. 권순철은 한국의 산과 강, 그리고 한국 사람의 넋이 드러나는 한국인의 얼굴을 소재로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한 필체를 캔버스에 담아왔다. 권순철이 반복적인 덧칠을 통해 강조해 온 것은 마띠에르의 물성 자체이기도 하지만, 여려 겹 쌓아 올려진 오일페인트는 견고한 레이어를 이루며 축적된 층위와 밀도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지난 50여년 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 관여했던 사건과 인물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그들의 존재와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 1전시장은 <넋>, <테라코타 연작>이, 2전시장은 <위안부>, <목련> 시리즈가, 3전시장은 대형 풍경화 <백두>, <한라> 및 <얼굴> 시리즈 등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 형상들의 ‘흔적(trace)’을 통해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권순철의 회화
권순철은 사라지거나 혹은 사라지려는 것들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시간과 망각으로 잊혀지고 희박해지는 존재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사라져가는 형상들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그 대상으로부터 연유하는 마음의 흔적, 그것을 그렸던 물질의 흔적, 또한 그 대상의 주변을 떠도는 넋의 흔적을 다시 보여준다. 이들이 그림을 통해 나타날 때 우리는 그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그 생애를 기억하게 된다.
• 물환론적 사고를 보여주는 <얼굴>, <위안부>, <목련> 그리고 <백두>와 <한라>
권순철의 작품은 모든 사물(생물과 무생물 모두)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물활론적(Hylozoism) 사고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읽힌다. 이번 전시작에서 보여지는 작품의 면면들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얼굴, 산, 그리고 목련송이나 면장갑과 같은 소재는 모두 대등한 차원에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그것들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다. 모든 대상은 저마다의 얼굴/머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형상, 윤봉길, 유관순,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의 얼굴, 동학농민운동의 의병들과 그를 이끈 전봉준,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과 손. 그리고 백두, 한라와 같은 거대한 산의 얼굴과 작은 꽃 한송이가 그러하다.
•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보여주는 1전시장의 <넋>, <테라코타> 작품들
제1전시장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형상이 추상적으로 표현된 작품과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암시하는 추상적 회화 <넋> 시리즈, 이와 함께 테라코타로 작업한 인간군상 시리즈가 함께 구성된다.
“내가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고난이 담겨 있는 얼굴, 정신성이 발현되는 얼굴, 내면을 드러내는 얼굴, 슬프지만 위엄을 갖춘 얼굴입니다.” -작가인터뷰 중-
얼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상기해보면 무관해 보이는 작품 간 연결고리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권순철은 한국전쟁을 겪은 개인의 트라우마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주었으며,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을 애환으로 승화시키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전쟁과 예수라는 거대서사의 한 켠에 자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잔소리꾼’, ‘짜증할멈’, ‘까칠영감’과 같은 제목처럼 해학과 익살을 잃지 않은 민초의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시장과 기차역, 버스터미널, 병원 대기실, 공원 등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인간들의 얼굴을 스케치했다가 테라코타로 만들어 냈다.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전쟁의 흔적을 드러내는 작품, 고난 속에서도 인간정신의 기본을 잃지 않았던 예수의 모습 그리고 만고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촌로와 촌부의 모습이 담긴 테라코타 작업들은 권순철 작업의 저변에 깔린 인간과 역사에 대한 긍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위안부’의 ‘넋’을 위한 방, 2전시장 – 그리고 <목련> 시리즈
이번 전시의 주목할 만한 점은 제2전시장의 대부분을 <위안부> 시리즈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순철은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묻힌 개인의 상처와 아픔을 ‘위안부’라는 주제로 드러내는 작업을 <위안부>, <넋>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지속해 왔다. 전쟁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상황 속에서 성적 학대와 폭력을 당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면서 망각 속으로 건너가고 있는 존재들. 권순철은 아픔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어 미해결의 고통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폭력의 흔적을 간직한 존재는 권순철 특유의 붓질과 물감의 두터운 층이 드러나는 방식 그대로 표현되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문질러버리듯이 추상화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위안부 작품 옆에 나란히 걸린 9점의 <목련>시리즈는 인생의 봄과 같은 시간을 훼손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작가의 제스처로 읽을 수 있다. 찬란한 흰 빛으로 만개하여 짧은 시간 생명의 빛을 발한 후 어느 샌가 몸을 떨구어버리는 목련은 애수, 슬픔의 정서를 대변하는 봄의 꽃이다. ‘고귀함’, ‘숭고함’이라는 꽃말을 가졌지만, 빨리 피고 빨리 지는 목련처럼 스러져간 존재. 전시에서는 <위안부>와 병치되는 <목련>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위엄과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 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긍정과 낙관의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 3전시장의 대형 풍경화 <백두>, <한라> 그리고 역사 속 <얼굴>들
3전시장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백두>와 <한라>를 볼 수 있다. 각각 1천호와 5백호에 달하는 대형 풍경화가 마주하는 장면은 또 하나의 스펙터클을 연출하며 권순철 특유의 ‘축적된 층위(accumulated layer)’와 밀도를 드러낸다. 대형 풍경화들과 더불어 작가가 오랜 기간 지속해온 ‘얼굴’ 시리즈가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 <전봉준>,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의병들과 같이 역사적인 인물들로 재현되고 있다. 그 한편에는 특정인으로 규정하기 힘든, 차라리 한국인의 표상이라 할 만한 얼굴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한 채 뭉개지듯 표현된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백두산과 한라산, 독립운동가와 의병들의 얼굴, 그 옆에서 한반도의 풍광과 그 안에서 벌어진 질곡의 역사를 전부 목도한 듯한 한 사람의 얼굴이 내포하는 바는 전시의 전체적인 주제인 ‘흔적’과 다시 연결된다. 사물(여기에는 존재하는 것, 죽거나 사라진 것, 생물과 무생물이 모두 포함된다.)의 형상을 불러와 흔적을 남김으로써 그들의 삶 자체를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 그를 통해 시간과 망각의 한계에 맞서고 대상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이것이 본 전시의 1,2,3관에 걸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겠다.
가나아트는 이번 권순철 전시를 통해 대상 자체가 가진 질감 혹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작가 고유의 해석을 한눈에 되짚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가 불러낸 대상들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과 사물, 그리고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그것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그 너머, 사물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로 이행하기를 요청한다.
■ 가나아트
권순철 – 형상들의 흔적
박영택 (경기대교수/미술평론)
권순철은 주로 인간의 얼굴과 산을 그린다. 특정한 대상이 재현되고 있으며 자신이 본 것을 그렸고 느낀 것을 담았다. 마주하고 있는 것들은 이내 사라지기에 그 대상으로부터 연원하는 감흥과 정서가 소멸되기 전에 이를 그림으로 머물게 한다. 그림은 그것들의 무게로 무겁다. 마치 그림 자체가 그려진 대상과 대등한 무게를 공유하고 있는 듯하며 촉각적이고 질량적이다. 물감들은 스스로 화면위에서 생성중이다. 마치 자연이 그렇듯, 산과 돌과 나무들의 피부가 스스로 생의 이력을 곡진하게 기술하듯이, 그렇게 남겨진 상형문자와도 같은 흔적들이 화면에 자욱하다. 물감으로 범벅이 된 화면은 오래된 돌이나 흙처럼 다가오다가 어떤 얼굴을 또한 안긴다. 물감이자 이미지이고 이미지이자 붓질 사이를 진동한다. 다채로운 색을 지닌 물감들은 그려졌다기보다는 마치 물질로 실제를 구현하려는 듯이 질주한다. 전적으로 색/물감의 자발적인 엉김이면서도 형상을 망실하지 않는다. 이 형상회화는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문질러버린다. 그것은 물질도 이미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모서리에서 범벅지다가 못내 가시적인 형상을 어느 정도 남기기도 하고 상처와도 같이 들러붙은 물감만을 제시할 뿐이기도 하다. 물감과 색채의 물활론적인 환생!
물감 자체가 스스로 주제가 되고 표현이 되고 영성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이는 고흐이고 이후 쟝 포트리에 또한 그런 맛을 안겨주었다고 기억된다. 이후 현대미술에서 물감은 스스로 모든 것을 발화하는 장소가 되었다. 권순철의 그림 역시 물감의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림의 재료로 무엇이지를 노정하는 한편 그 물감을 빌어 가시적 세계와 그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까지 온전히 규명되기를 바라는 물질의 연출이고 구사다. 그런데 이는 서구 모더니즘미술에서 보여주는 물질의 즉물적인 환원이나 제시, 주체의식에 기반 한 행위의 지표로 안착되는 것과는 다르다. 물감들은 작가의 몸/붓으로 주물러서 반죽된 것들이고 그것들 자신의 몸에서 나온 에너지로 변이를 거듭해 묘하게 영성적인 존재로 빛난다. 권순철 그림의 제목이 대부분 <넋>인데 이는 대상과 재료에 공통적인 편이다. 보이는 대상에서 비가시적인 기운, 영성을 찾아내려한다면 그것을 우선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재료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실어 나르고 구성해나가는 몸의 활력과 에너지를 간직한 존재들이다.
권순철의 그림에는 이러한 물활론적인 상상력이 자리한다. 인간의 얼굴과 산, 그리고 목련 한 송이나 면장갑과 같은 소재는 모두 대등한 차원에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작가는 그것들을 공평하게 다룬다. 모든 대상은 저마다의 얼굴/머리를 지니고 있다. 늙은 사람의 얼굴이나 이미 죽은 이들, 그러니까 전봉준, 윤봉길, 유관순, 안중근의 얼굴이나 위안부할머니의 얼굴, 그리고 백두산, 한라산, 용마산의 얼굴이나 소소한 사물들의 얼굴이 그가 그린 것들이다. 아니 그는 인간의 얼굴 외에도 모든 사물, 대상에서 그 얼굴을 보고 읽는다. 그가 그린 것은 각별하게 선택된 것들이고 그림을 통해 그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 대상들의 생애를 기억하게 한다. 애도하게 한다. 그것은 사라지고 사라지려는 것들의 몸을, 얼굴을 망실하지 않으려는 시도와도 같다. 시간과 망각에 힘겹게 버티려는 흔적들이다. 망실하지 않으려는 어떤 형상들의 비명 같다.
얼굴을 잃는다는 것은 그 존재를 상실하는 것과 동일하다. 자기 얼굴을 지운다는 것은 나를 익명의 존재로, 무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사라진 얼굴, 뭉개진 얼굴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안겨주고 그 얼굴은 인간의 것에서 배제된다. 얼굴은 곧바로 휘발되어 버린다. 어느덧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이름은 물론 얼굴조차 희박해져갈 때 그 누군가의 존재는 내게 부재한 것이다. 권순철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는, 혹은 이미 사라진 얼굴/몸을 다시 보여준다. 그것은 지워지는 얼굴에 저항하는 일이고 망각에 맞서는 것이다. 이미지는 시간과 부재, 죽음에 저항해온 역사를 지녔다. 여전히 권순철은 회화를 통해 사리진 것의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대상의 흔적이자 그 대상으로부터 연유하는 마음의 흔적이고 또한 그것을 그렸던 그림의 흔적, 물질의 흔적이다. 그 주변을 떠도는 넋의 흔적이기도 하다.
얼굴은 자신의 외면과 내면 모두를 보여주는 경계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얼굴, 표면을 통해 그 이면을 떠올려본다. 시각적 대상이 아닌 얼굴 속은 얼굴 표면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얼굴은 다분히 사회 속에서 조율, 관리되는 기호다. 흔히 얼굴은 사회적 기호이고 머리는 생물학적인 자리라고 말한다.(들뢰즈) 그러니까 얼굴이 사회와 부단히 연동된 것이라면, 머리는 이와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대상의 얼굴이 아닌 머리를 그리려는 듯하다. 머리는 가시화할 수 없는 것들로 곤죽이 되어 있고 어둡고 눅눅한 침묵,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연과 내력, 상처와 아픔, 어떤 트라우마와 연관된다. 알다시피 트라우마란 그 이유를 알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일종의 존재론적 상처를 지칭한다. 권순철은 산과 사람의 얼굴 혹은 소소한 사물의 초상에서 그 존재론적 상처를 되새김한다.
권순철이 그리는 모든 얼굴은 그것만이 강조된 얼굴이다.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파괴하여 통일성이 없는 파편적인 부분들로 만들어버렸다. 통일된 유기체로서의 신체라는 조화로운 형상으로부터, 표준적 비례 속에 귀속될 수 없는 하나의 특수한 ‘파편’을 떼어내어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이질적이고 부수어진 세계다. 여기서 인격적 표정인 얼굴은 파편이 되었다. 특정인의 얼굴이자 보편적인 인간의 얼굴이고 모호하고 낯선 물질로도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사물, 이른바 우연히 맞닥뜨리는 기호에 해당한다. 기호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가 시작되도록 정신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기호를 ‘우연히’ 나타나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바를 해석하기를 ‘강요’하는 대상이라 한다. 그가 보여주는 얼굴은 결코 그릴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어떤 얼굴이다. 모든 얼굴은 결국 슬픔으로 사라진다. 시간에 의해 자멸한다. 명료한 형상을 지니지 못한 체 마냥 부유하는 색채와 선들, 물감 덩어리들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를 얼굴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얼굴이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려운 그런 안면이다. 붓으로 그렸다기 보다는 자기 몸으로 이겨 바르고 더듬어서 촉각적으로 만져놓은 그림과도 같다. 다만 물감을 바르고 붓질을 했을 뿐이다. 그 붓질은 일정한 손의 궤적을 이어가는 붓질. 형태를 온전히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하게 물감을 밀착시켜 물감들 스스로 발성하게 한다. 해서 겨우 한 얼굴이 떠오르고 있다. 얼굴이기도 하고 물감으로 뒤덮인 바닥이고 동시에 산이고 돌이자 얼굴이다.
작가는 가시적 대상 모두에서 껍질로서의 얼굴이 아니라 그 내면에 깃든 무엇인가를 그림 밖으로 도출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도 얼굴과 몸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생의 이력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보일 수 없는 것, 따라서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애써 불러내는 의식과도 같다. 무당이 간절히 신을 불러내고, 죽은 이의 넋을 호출하고 그들과 접신하고자 하듯이 권순철은 어떤 형상을 호명한다. 무엇인가의 흔적을 애타게 남겨놓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것만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마주한 모든 대상에서 혼을 본다. 그 넋을 그리고자 한다.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과 정적인 대상이나 모종의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것들이 그의 그림에 함께, 평등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사람의 얼굴 형상을 그리든, 산의 형상을 그리든, 사물을 그리든 그것들은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 그림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얼굴을 가진 모든 존재들의 삶과 그 삶에 대한 모종의 정서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고흐가 그린 구두와도 같은 맥락에서 진동한다.
1944년 경상남도 창원출생
불안 해방 일지 Anxieties, when 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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