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진 개인전: The Very Eye of Night
2020.12.29 ▶ 2021.02.03
2020.12.29 ▶ 2021.02.03
오연진
Lamella 1 2020 Inkjet print 120 x 84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오연진
Lamella 2 2020 Inkjet print 70 x 5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오연진
Lamella 3 2020 Inkjet print 70 x 5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오연진
Lamella 4 2020 Inkjet print 70 x 5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오연진
Lamella 5 2020 Inkjet print 70 x 5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오연진
Lamella 6 2020 Inkjet print 42 x 3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The Very Eye of Night
오연진은 작업 과정 내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인화 방식을 바탕으로 사진의 매체성을 탐구하는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왔다. 사진과 회화, 판화 등 다양한 매체들이 갖는 관계성에 주목하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진행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영상의 이미지를 고유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신작 〈Anorthoscope〉(2020)를 선보인다. 〈Anorthoscope〉는 마야 데렌(Maya Deren, 1917~1961) 이 1958년에 발표한 흑백 단편 댄스필름 〈밤의 눈(The Very Eye of Night)〉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다. 영화는 별빛이 반짝이는 어두운 밤하늘 같은 배경에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된 무용수들의 이미지가 하나둘씩 떠오르며 시작된다. 얼핏 보면 납작한 종이 인형 같은 인물의 형상들은 곧이어 전환되는 화면에서 움직임을 부여 받고, 무한한 공간에서 중력에 무관한 춤사위를 펼치듯 검은 배경을 부유한다. 별자리에 관한 고대의 신화를 무용수의 몸짓으로 재현했다는 데렌의 영상은 그 자체로도 황홀할 만큼 아름답고,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듯한 신비로운 감상을 준다. 더욱 주목할만한 점은 작품에서 카메라의 역할이 단순히 무용수들의 동작을 담는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촬영과 편집 기술을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한쪽 발을 내딛는 무용수의 동작은 다시 전환되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이처럼 분절된 시간 속 각각의 장면들은 신체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즉, 이들의 ‘움직임(무빙)’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시 한번 움직임을 얻는다.
‘무빙’은 은연중에(혹은 직접적으로) 오연진이 최근 작업들을 통해 꾸준히 드러내온 키워드로, 그 관심의 출발점에는 ‘시간성’이 자리한다. 작업의 초창기부터 이어진 〈시리얼 북 시리즈(Serial Book Series)〉를 살펴보면, 작가는 2015년작 〈Still Mute〉에서 동명의 영상작업을 다양한 초당 프레임의 단위로 나누어 캡처하고, 이 이미지들을 각 초당 프레임에 비례한 이미지 스케일로 삽입하여 나타냈다. 2017년작 〈Quad by Ratio〉는 사뮤엘 베케트(Samuel Bechket, 1906-1989)의 단편극이 상연되는 정방형 무대가 다른 비율로 변화하면 어떻게 될지 가정하고, 이때 어떤 구조로 움직임이 확장될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공간적인 조건의 변화로 배우들의 동선이 왜곡됨에 따라 수반되는 시간상의 변화까지 도식화하여 나타낸 것으로, 작가에 따르면 이처럼 특정한 조건 하에 변주되는 요소들을 탐구하는 과정이 결국 모든 변화에 전제되는 ‘시간’과 그에 따른 ‘무빙’에 대한 관심의 단초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연진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데렌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먼저 전시장의 중앙에 설치된 회화 작업들은 반투명한 재질의 쉬폰 천에 출력한 이미지를 캔버스 프레임에 씌우고, 여기에 아크릴 물감을 더해 완성되었다. 물감을 여러 번 발라 코팅한 상태의 캔버스 표면은 흡수되는 성질을 지닌 천이라기보다는 필름과 같이 매끈한 질감으로 표현된다. 전시장의 벽면에는 일종의 ‘판' 역할을 한 캔버스를 인화지 위에 밀착인화해 얻어낸 결과물들이 액자나 틀 없이 그대로 전시된다. 인화 시 CMY 필터값이나 노광의 시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여러 가지 변수는 작가가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결과로 도출되었다. 예를 들어, 이론상으로는 캔버스 색상의 보색이 현상되어야 하지만 주변의 빛에 따라 예상치 못한 색이 나오거나, 노광을 주는 초 단위의 시간에 따라 상이 달라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는 작가가 직접 컨트롤하려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조건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상과 색감이 반전되어 나타난 <밤의 눈>의 장면들은 캔버스 상의 원본 이미지들과 서로 대칭을 이루며, 작가가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가상의 물 이미지와 함께 전시된다.
다른 작업 〈Lamella〉(2020)는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비눗방울의 형상을 담은 6점의 사진 연작이다. 오연진이 처음 일반적인 촬영 기법으로 카메라에 담은 피사체가 ‘비눗방울’이라는 사실은 유체 필름을 이용했던 지난 작업들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작가는 사진에 있어 ‘필름’이라는 조건을 변화시키고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OHP 필름으로 제작한 작은 케이스에 슬라임을 넣거나, 유리 판 위에 물을 흘려놓고 이를 촬영하는 등의 다양한 실험을 전개해 왔다. 비눗방울의 막은 틀에 따라 그 형태와 차원이 달라지며,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터져버린다는 점에서 순간적인 성질을 지닌 유동적인 물질이다. 막에 맺히는 무지갯빛 스펙트럼 또한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형태로 존재하며 빛이나 각도에 따라 다른 양태를 보인다. 이처럼 조건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는 비눗방울의 성질은 작가뿐 아니라 오래전부터 많은 학자들의 관심사였는데, 그중 비눗방울 막 사이에 존재하는 법칙 을 발견한 19세기의 물리학자 조셉 플라토(Joseph Plateau, 1801-1883)가 무빙 이미지 장치인 아노토스코프와 페나키스티스코프 를 발명했다는 우연은 비눗방울이라는 피사체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오연진은 ‘무빙 이미지’를 조건이 변화하는 이미지로 정의한다. 이미지가 움직일 수 있다는 전제가 없이 제작된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은 다르다. 여기서 ‘무빙'이란 반드시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 마야 데렌의 이미지는 영상에서 캔버스로 복제되었다가, 다시 암실에서의 작업을 통해 사진으로 재탄생한다. 천장과 벽에 걸린 캔버스와 사진의 이미지는 매체를 옮겨가며 변화하는 비종결성을 통해 계속해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오연진의 작업들은 비록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움직임을 간직하고 있는 무빙 이미지다.
이러한 무빙의 세계가 독보적으로 근사한 지점에 닿아 있는 이유는 이 세계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무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일 수 있는 곳에서 정지 이미지는 비로소 무빙의 가능성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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