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재유
염전 2020, oil on canvas, 112.1x193.9cm
신이피
죽은 산의 냉철한 새 #03 2020, 4K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
현지윤
신중년도감 2020, 싱글 채널 비디오, 21분 (3-3)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는 2년 연속 경기문화재단과 협력하여 2020 경기예술창작지원 시각예술분야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生生化化’를 개최한다. 매년 경기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신작 창작을 지원하는 경기문화재단은 올해 22명의 유망·우수작가를 선정했으며, 이들의 신작이 11월 성남큐브미술관을 필두로 12월 아트센터 화이트블럭과 단원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발표된다. 《이연연상 Bisociation》이라는 제목으로 여는 화이트블럭의 전시에는 올해의 ‘유망’작가로 선정된 김재유, 김채린, 신이피, 이재욱, 현지윤이 참여한다.
예술 작품을 두고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창작 동기를 요구한다. 작품은 ‘무엇을 왜, 어떻게 표현하려는가’에 대한 예술가의 번뇌를 거치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 등을 고루 반영해 공개된다. 사회는 예술가에게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넘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심리를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렇듯 예술가의 작업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씨앗을 틔우더라도 생산적인 것으로 발전하여 사고하고 소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대상들 사이에서 새롭게 연관성을 찾아내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무관해 보이는 개념들을 서로 연결 지어 생각한다는 의미의 제목처럼, 전시에서는 작가들의 창작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채로운 고민이 또 다른 창조적 가능성으로 ‘전치’되는 흔적을 드러내려 한다. 나아가 전시장에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이 모여 새로운 현상을 야기하는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본다. 참여작가 5인은 사업의 지원 단계부터 작품 발표까지, 창작을 계획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창의적 방법을 모색해왔다. 작가들은 수집가나 관찰자의 역할을 넘어, 창작가로서 특정 문제에 어떠한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망막에 닿은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하여 작품으로 드러내고, 무의식을 스친 것을 여러모로 살펴 의식적으로 조직화하고 통합하려는 작가들의 움직임을 응원하며, 전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발화한 시간을 짚어보도록 돕는다.
주로 창문 밖에 흐르는 풍경을 그리던 김재유는 작년부터 폐쇄된 도로나 염전, 중단한 개발 등 멈춰있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창작센터에 입주 중인 작가는 레지던시가 위치한 대부도와 선감도의 풍경을 그린다. 석산과 그 주변에 멈춰선 공사 현장, 그리고 올여름 장마로 인해 생산을 멈추고 관광객만을 기다리는 ‘동주염전’의 풍경을 회화에 담았다. 오가는 길에 마주한 들풀, 토끼와 들새 떼 등의 동식물을 그린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전시되는 작품은 산과 풀, 바닷물 따위가 먼저 눈에 담겨 자연 친화적인 풍경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도시 개발(또는 중단) 문제, 혹은 정책에 따라 채산성이 급감해 버려진 염전 등 그 이면에 도사린 사회 문제를 독해하도록 유도하는 모호한 힘을 지닌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같으면서도 인공적인, 그래서 아이러니한 대부도 곳곳의 풍경은 관찰자인 작가에게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작가는 이를 최대한 빠르게 캔버스에 옮기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완성했다. 빠른 붓질은 작가가 그 풍경들을 목격한 순간의 감정을 정직하게 담아내는 수단이 되어 감상자에게도 생경한 정서를 일으킨다.
올 초까지 경기창작센터에서 작업하던 이재욱도 이번에 선감도를 소재 삼았다. 이재욱은 평소 머무는 장소마다 역사적 특이점을 발견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사진에 담는다. 사진으로 주변을 기록하며 그것에 얽혀 있는 사회 구조를 응시해오는 이재욱은 이번에 일제강점기 소년 수용소였던 ‘선감학원’ 소년들의 노역 희생을 중심으로 신작을 선보인다.
프레임에 담긴 갯벌이 명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가늠하기 힘든 <굽은 물> 사진 연작으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나 작가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채기 어렵다. 그가 어떤 장소의 어떤 지점을, 왜 찍었는지는 사진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렌즈의 시점과 사진의 색감, 인쇄된 사진의 크기로 미루어 작가가 해당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특정 분위기를 제시하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에 한시적으로 거주했던 한 개인으로서 이재욱은 해당 사건을 방관하지도, 사건을 ‘안다’는 몸짓을 취하지도 않은 채로 건조하게 선감학원을 응시했다. 이는 실존했던 사건 속으로 작가 본인이 개입해볼 여지를, 그리고 관객이 그 사건에 대해 ‘상상’해볼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연사 박물관에 진열된 오브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짚어보길 반복하는 신이피는 올해 도시 생태를 리서치한 <죽은 산의 냉철한 새> 연작을 발표해온다. 정부가 주도한 계획형 신도시 아파트단지 이름이 자연물을 띈 것과 그러한 아파트 개발이 도시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역설적 풍경을 시리즈의 신호탄 삼았다. (<죽은 산의 냉철한 새 #1>, 2019) 이어서 2020년 구제역으로 인한 예방적 살처분 명령으로 희생된 돼지들의 매립지를 조사했다. (<죽은 산의 냉철한 새 #2>, 2020). 이 번에 소개하는 연작의 세 번째 작품, <죽은 산의 냉철한 새 #3>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한 돼지 사체 매립지를 영상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와 함께 희생된 돼지들의 액침표본을 만들어 진열한다. 신이피는 저장조에 매몰되어있다가 발버둥 치며 솟아’오르려’는 돼지들을 영상에 담는다. 그리고 가축이라는 이유로 표본 제작해 보존 가치를 지니지도 않은 돼지를 자체 표본 하여 전시장에 ‘올린다’. 이는 이미 직립하는 인간이 써나가는 역사의 가치에 도전해보려는 작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저급하게 취급되는 동물의 움직임과 영혼에 수직성을 부여하여, 돼지의 생명권과 수도권 매립지의 환경 문제를 가시화해보려는것이다.
김채린은 조각을 통해 관계를 들여다본다.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몸짓이나 언어를 조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조각을 특정 장소와 대화하듯 놓아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관람객의 신체를 고려한 재료와 물성으로 오브제를 제작한다. 유기체처럼 보이거나, 유기체와 같은 성질을 지닌 사물을 전시장에 놓고, 그것을 만지는 주체(신체)와 사물과의 관계, 그리고 그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사물이 지닌 맥락을 파악해보려는 것이다. 이번에 그가 제시한 사물은 사용자의 신체가 다양한 감정을 발화해보도록 전시장에 놓였다. 사용자는 딛고, 오르고, 끌고, 주무르고, 조합하는 등의 행위를 거쳐 사물의 질감이나 양감, 물성을 느껴볼 수 있다. 사물과의 이러한 접촉을 통해 사용자는 창작자가 겪은 시간을 떠올려본다. 한 명의 사용자가 사물에 남긴 온기가 다음 사용자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전시장의 사물은 이렇게 서로가 남긴 흔적을 공유한 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현지윤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세대’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작가는 평균 수명과 기대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고령화의 인구 비율이 높아지는 것, 그런데도 중-노년층의 삶은 관심 밖의 영역으로 비춰지는 것에 집중한다. 올해는 ‘신중년(5060)’ 세대의 사적인 이야기를 수집했다. 중년의 시기가 길어지면서 중년층의 가치관이 변화하거나 젊어지는 현상이 현지윤의 영상과 사진, 아트북에 담겨 전시된다. 며느리, 자영업자, 정년퇴직자이자 평범한 가장, 시니어 전문직 종사자 등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영상 속에서 자기 삶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시대를 고찰해본다. 신중년 세대의 보편적인 이야기는 1987년생 작가 세대의 시각과 감수성과 만나 도감(圖鑑)으로 공개된다. 현지윤은 다양한 중년들의 새로운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이러한 창작 행위에 자신과 다른 세대를 응원하는 마음을 더한다.
■ 글 ㅣ 김유빈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큐레이터)
1981년 서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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