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이수진
night walk 76x183cm, 광목천에 아크릴, 2019
이수진
ceremony 143x183cm, 광목천에 아크릴, 2015
이수진
ghost 130x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18
이수진
girl with wolf 150x108cm 광목천에 아크릴 2020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살아가기 위해 관계를 맺고 그 매듭이 다시 관계를 끌어온다. 인간이기에 살갗에 스치고 만나지 못할 거리에서도 차마 목적대로 내뱉지 못한 둘러댐이 두루뭉술하게 관계의 그물 사이로 뿜어져 나온다. 이수진은 관계가 지닌 부드럽지만 때로는 가시 돋친 면모를 동화와도 같은 천진난만한 화면으로 보여준다. 그 해맑음은 복잡하게 여겨졌던 지난 사건에 대한 허탈하고도 우스운 깨우침 일수도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해타산을 넘어선 욕망과 시기로 얼룩진 미소 짓는 가면처럼 잔혹한 블랙코미디일 수도 있다.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원활히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그 둥글고 부드러운 껍질의 경계가 지닌 싸늘한 모서리를 조명한다. 삶의 사소한 공간을 채운 삶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익히기 위해 배려와 논리를 배웠다. 배움의 다음에는 늘 저마다 온도가 조금씩 다른 보금자리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한 적 없는 보살핌의 울타리 밖에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순이 과정의 도처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상식과 적정선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배덕감이라는 걸림돌이 마음을 지그시 짓누르지만 그것을 밟고 넘어서면 곧 편안함과 쾌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울타리를 넘어서는 개인이 가득 찬 사회에서는 경계를 넘는 인식이 무뎌지면서 고요한 표면 아래 더 격렬한 충돌과 상흔으로 채워진다.
이수진이 그려내는 광경에는 사건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 담겨있다. 설명하듯 보여주는 분할된 여러 장면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굳이 느끼려 하지 않는 흐르는 시간의 한 순간이 박제된 듯 멈추어있다. 인물의 시선은 작가가 만들어낸 임의의 공간 속 어떤 대상을 향하고 있거나 관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점을 향해있다. 하지만 화면 속의 인물들은 서로의 위치를 향해 서있다 해도 결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관계를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묶어서 표현하는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는 드문 장면마저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대상끼리의 충돌로 표현되어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몰입할 수 있는 인물과 한 장면에 대치된 채 장막에 가려진 알 수 없는 존재는 인기척을 느낄 만큼만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인물의 자세와 무덤덤한 표정은 작품의 분위기를 어둡지 않으면서도 싸늘하게 조절한다.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던 따뜻한 배려 또한 어떠한 시각에서는 모순의 정점일 수 있다. 작가는 이성의 간판을 달고 흠집에 무감각해진 동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비이성과 모순이 무엇인지 들쑤신다. 스치듯 보면 천진난만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깃든 듯 그려진 작품에서 냉소적인 싸늘한 감상을 읽는 것은 어떤 관객에게 있어서는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며 예측한 내용과 비슷함에 자기 위안에 정착하는 것은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작가가 대접하는 정성의 온도는 반드시 따뜻한 것이 아니다. 이해의 부재로 인한 관계 아닌 관계의 세태가 담겨있는 이수진의 작품을 통해 환상을 기대하고 찾은 곳에서 마주한 현실이 도리어 감정에 새로운 깊이를 새기게 된다.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198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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