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왈종: 그럴 수 있다-A Way of Life
2021.03.04 ▶ 2021.03.28
2021.03.04 ▶ 2021.03.28
전시 포스터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재료 162x130cm 64x51.1in.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재료 112.1x145.5cm 44.13x57.2in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 재료 99.8x199.5cm 39.2x79in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 재료 99.8x199.5cm 39.2x79in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 재료 911x16.8cm 36x46in.
이왈종
제주생활의 중도 2020 장지에 혼합재료 53x45.7cm 21x18in
뭇 생명들과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풍류’의 멋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왈종의 최근 작품에 들어가 있는 문장이다. 말풍선 안에 작게 쓰여 있는 이 문장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혼돈 상태에 빠진 사회 현실에 대한 그의 낙천적인 세계관이 잘 담겨 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하거나 외부로부터 큰 충격을 받으면 “그럴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흥분하게 된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서 패닉에 빠져 적절한 대처를 못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 데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원인과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이면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사태를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우리가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이 밤낮을 바꾸고 계절을 바꾸면서도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한 것은 바로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도 외부의 자극에 따라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변하지만, 마음의 중심에는 텅 빈 고요가 있다. 이것이 있기에 우리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중심이 있는 사람에게 변화는 자유를 의미하지만, 중심을 잃은 사람에게 변화는 파멸을 낳게 된다.
이러한 중도(中道)의 철학은 오랫동안 이왈종의 작품세계를 지탱해 온 미학적 기반으로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에서 얻은 지혜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반야심경에 매료되어 이를 자신의 생활철학으로 삼고 예술을 통해 실천해왔다. 반야심경의 지혜는 이 세계의 삼라만상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인(因)과 연(緣)의 연기(緣起)작용 속에 지속으로 변해가기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아, 무상, 공, 연기 등으로 불리는 이러한 사상은 인간의 이분법적 지식과 분별에서 생긴 집착을 초월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이왈종의 훌륭한 예술 철학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꽃과 새, 물고기, 노루, TV, 자동차, 집, 사람 등 삼라만상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오랫동안 생활의 터전이 된 아름다운 제주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며 보고 느낀 경험의 세계이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온갖 꽃이 피어나고,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밤에는 풀벌레와 곤충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낙원 같은 제주에서 그는 제 빛깔을 가진 개체들이 어우러진 자연의 조화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동물과 식물, 인간과 사물 등이 주종과 우열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연을 맺고 평등하게 어우러지는 양식이 그의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농익은 홍매화의 향기가 진동하는 화면에는 집과 자동차, 사람들이 열매처럼 매달려 있고 새와 물고기가 공중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거기에는 제주에서 그림 외에 그의 일상이 된 골프를 치거나 요가를 하는 자화상 같은 인물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인간은 결코 만물의 주인공이 아니다.
만약 인간 중심적인 시각으로 그린 서양의 풍경화라면, 사람을 중심에 크게 그리고 자연은 그저 배경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이와 달리 그의 작품은 원근법이 무시된 평면적인 화면에 상식적인 크기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우열 없이 자유롭게 재구성되고 있다. 이것은 시각의 논리가 아니라 마음의 논리를 따른 결과이다. 그의 그림은 서양의 재현회화처럼 눈으로 본 시각적 풍경에 끌려가지 않고, 또 추상회화처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완전히 환원시키지도 않는다. 그가 그림에서 의존하는 것은 일상에서 자연과 감각으로 교류하고 공명하며 몸에 새겨진 마음의 기억이다. 이처럼 체화된 기억을 마음의 논리로 재구성하기에 그의 작품은 객관적인 시각의 세계와 주관적인 환상의 세계가 공존한다.
이러한 이왈종 특유의 양식은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어린이의 그림과 유사하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본 시각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희를 즐긴다. 이것은 객관적 이성과 낭만적 상상력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인간의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진한 표현은 그림 그리는 기술을 배우거나 어떤 형식에 물들게 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피카소는 “모든 어린아이는 예술가다. 나는 아이처럼 그리는 데 80년이 걸렸다”라고 했고, 클레는 “나는 갓난아이가 되어 원초적인 상태에 도달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이왈종 역시 어린이 같은 천진하고 원초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표현을 동경했다. 그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20년 넘게 아동들을 위한 무료 강좌를 열어온 것도 아이들의 거침없고 천진난만한 표현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경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선악과 미추가 분리되기 이전의 천진한 본성의 세계이다. 그것은 이분법적 분별심이 만든 경직된 사회에 저항하여 예술을 통해 성취하고자 한 그의 궁극적인 주제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이데올로기가 각종 편협한 중심주의를 낳고 차이를 차별로 대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의 인간 중심주의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오늘날 생태계 파괴와 심각한 환경오염의 문제를 낳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자연에서 서식처를 잃은 야생동물로 인해 발발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계몽적인 환경운동보다 더 절실한 것은 천진한 인간의 본성을 되찾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열과 차별의 세계에서 벗어나 모두가 친근하게 어우러지는 평등한 세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왈종의 작품세계는 평등성을 추구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한국인 특유의 낙천적인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일본인들은 불교를 미학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쓸쓸한 비애미로 해석했다. 일본의 미학인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는 인간의 힘으로 붙잡을 수 없는 무상한 대상에서 느끼는 비애의 정서이다. 그리고 부족하고 하찮은 대상에 주목하는 와비(侘び)의 미학이나 오래되고 버려진 대상에서 느껴지는 사비(寂)의 미학 역시 쓸쓸한 정취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전통회화인 ‘우끼요에(浮世繪)’에서는 무상한 현세를 잠시라도 잊고자 하는 염세적 향락주의가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불교사상을 쓸쓸한 정서로 해석한 것과 달리 이왈종은 한국인 특유의 낙천적인 풍류 정신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가 합쳐진 풍류는 멋스럽게 노는 것이다. 그것은 염세적으로 방탕하게 노는 것이 아니라, 뭇 생명들과 사랑으로 한데 어우러져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최치원은 풍류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 하고, 유불선을 포함하는 모든 종교의 이상이자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추구해온 현묘(玄妙)한 도라고 정의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풍류적 삶을 ‘멋’이라고 불어왔고, 이는 서양의 ‘미’ 개념을 대신할 수 있는 한국 예술의 특징을 이루어 왔다.
삼라만상이 접화군생으로 어우러지는 이왈종의 작품은 잊혀 가는 한국의 멋과 풍류 정신을 현대미술로 꽃피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유쾌한 낭만과 해학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유연한 생각과 불행한 사건마저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넘길 수 있는 한국인 특유의 낙천적인 풍류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작품은 소박하고 천진한 조선의 이름 모를 민중들이 그린 민화에 그 정신적 뿌리를 대고 있다고 여겨진다. 사회적 계급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조선의 민중이 그린 민화에는 인간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제 빛깔을 가진 존재들을 신성시하고, 그들과 접화군생으로 어우러지는 유쾌한 낭만과 해학이 있다. 어떠한 정해진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은 민화의 파격과 자유는 지식과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천진한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는 원초적인 표현이다. 사실 민화에는 한국 특유의 미의식과 현대적 감성이 농축되어 있다. 이왈종은 민화의 양식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해학적인 미의식을 계승함으로써 독창적인 자기 양식을 구축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화의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중국화의 아류에서 벗어나 한국적 정체성과 현대성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일구어낸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롯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외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에서 접화군생의 풍류 정신과 낙천적인 한국의 멋이 담긴 그의 작품이 더욱 정겹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안빈낙도하며 삶을 즐기는 여유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최광진(미술평론가)
1945년 경기도 화성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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