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00x100cm, 2009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16.8x91cm, 2009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62.2x91.0cm, 2009,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90.9x72.7cm, 2010,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16.8x91cm, 2009,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90.9x72.7cm, 2009,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93.9x112.1, 2009,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90.9x72.7cm, 2009, 개인소장
오흥배
Bodyscape Oil on Canvas, 145.5x112.1cm, 2009, 개인소장
bodyscape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생물학적인 껍데기의 기능만을 갖지 않는다. 신체는 개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전달체이며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 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동시에 많은 상황에 놓이게 되고 신체는 세상과 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수단이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신체는 사라짐과 만들어짐이 반복되며 흔적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신체는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기록하며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자아를 연결하는 것 이다. 즉 신체에서 볼 수 있는 흔적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내면의 흔적인 것 이다.
본인은 이런 육체에 남겨진 흔적과 몸짓을 통해 지나온 세월을 환기시키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최근 관심을 갖는 주제는 이런 신체에서 볼 수 있는 무언의 욕망이나 원초적 의미를 내포하는 몸짓에 있다. 몸짓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말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데에는 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몸짓을 함으로써 그 뜻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몸짓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기능은 ‘상징’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몸짓 언어는 단순한 손짓 하나로 단어 혹은 문장을 상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짓 언어는 “말을 하지 않고 신체적 동작이나 신호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방법” 혹은 “말보다는 신체의 부위나 동작으로써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남에게 보이는 수단”으로서 흔히 body language라고 불린다. 이처럼 몸짓언어(gesture language)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무의식중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 할 수 있는 다른 표현수단에 비해 훨씬 본능적이며 원초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확대된 신체는 각기 다른 무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손이다. 손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외에 간접 혹은 직접적으로 여러 의미들을 표현할 수 있으며 여러 신체기관 중에서도 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내포 하는 기관이다. 또 손은 다른 신체 기관들에 비해 활동 범위가 넓고 다양하며 그 모습만으로도 약속, 화해, 평화, 바램 등 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손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많은 상징성을 내포 하고 있으며 많은 역사와 표정과 인성이 담겨있다.
또 다른 주재는 신체의 다른 부분인 발이다. 발 중에서도 구두를 신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포착한 작업인데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 의 끝없는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하는 모습 이라 생각한다. 최근 여성들이 즐겨 신는 하이힐은 원래 17세기 하수도가 없어 오물 천지였던 유럽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신기 시작 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최근 하이힐은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는 욕망의 자화상이 되었다. 남성인 본인이 본 여성의 하이힐은 인간의 욕망, 환상, 자아만족, 과시욕이 불러온 대표적인 결과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발의 변형과 신체의 고통을 감수 하면서 신는 하이힐은 최근 그 이름을 킬힐(kill hill) 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기 도 하며 끝없이 높아만 가는 인간의 욕망과 과시욕에 일종의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있다. 하이힐은 신체 여러 부위에 고통을 가져다주며 특히 발의 고통과 변형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하이힐을 신은 아슬아슬한 모습은 남성인 본인의 시각을 통해 해석 되고, 일그러지고 변형되어진 신체와 함께 그려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메스미디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을 정하고 획일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제각기 다른 존재로 태어났다.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 이 아닌 서로 다는 개체로서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죽는 날까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신체에 기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평론
시간의 흔적과 존재의 본질 사이
김종길 | 미술평론가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존재이며, 서로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름일 수도 있고 주민등록 번호 같은 것 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바꿀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주름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아 질 수 없다. 주름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몸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새겨지는 고유한 흔적들이다. 주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를 기록하는 개인의 연대기와도 같은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주름은 더 깊어지고 늘어만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름을 추하다고 생각하고 보기 싫어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면 추억과도 같은 것으로서, 세월을 따라서 서서히 변화한다. 그 안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거나 접어 감춘다. 사람의 성격이나 생각이 바뀌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던 본래의 성향은 세월이 흐르면서 타의에 의해 바뀌어가고 어느 순간에 자기 자신을 내보이거나 감추기도 하는 것이다.
오흥배는 이런 것들이 바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자 인간의 본질(本質)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본질을 사람의 피부에 보이는 주름을 빌려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주름을 멜랑꼴리(Melancholy)한 분위기의 배경과 함께 접목을 시켜서 또 다른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발뒤꿈치 피부의 각질을 정밀하게 표현하거나 빨간 메니큐어가 칠해진 여성의 발가락은 성적인 느낌을 더해 주고 있다. 마치 사진과 같은 이 그림이 더욱더 특별할 수 있는 것은 배경과 함께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고유색을 어떻게 믹스 앤 매치(Mix and Match)할 것인가를 자가 스스로는 잘 풀어내고 있다.
자신만의 색상과 미묘하게 클로즈업 된 화면의 구성은 시간성과 함께 인간의 극소한 부분을 집중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화면의 구성 속에는 항상 시간성이 담겨져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같도록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그림을 통해 관찰 할 수 있는 첫 번째 부분일 것이다.
시간의 개념에는 ‘사이’, ‘틈’, ‘동안’, ‘경계’, ‘흐름’, ‘의식’과 같은 말들이 결어의 비중을 형성한다. 이것과 저것의 상대에서만 시간을 찾을 수 있단 얘기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무한 연속의 지속성에서 시간을 규정한다. 시간은 그 내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말해진다. 통상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라 할 때 시간은 그 지속의 운동에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연과 인간, 우주는 모두 그 시간의 존재에 탑승하고 있다. 그 중 ‘흐름’이 운동에 해당하는 지속적 개념이라면, ‘의식’은 ‘기억’과 유사하다. R.세몬은 시간의식으로서의 이와 같은 기억의 원리를 유기적 기억생물학의 문제로 보았다. 그가 말하는 기억은 “모든 유기적 사상의 변이성에 있어서 보유소지(保有所持)의 원리”라 할 수 있다. 풀면, 생물에 작용하는 모든 자극은 일단 인상(印象)되어 일정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오흥배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 흔적이다. 그는 시간의 퇴적이 진행되는 표피, 즉 피부에 집중한다. 특히 인간의 손과 발은 변이적 속성이 다른 부위에 비해 비교적 속도가 빠른데, 작가는 손과 발의 표면과 형상성에서 시간의 독특한 자취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이 시간의 실체를 찾는 ‘발견’에 예속된 것은 아니다. 그가 시간을 찾아 나선 것은 2005년의 초기작에 한정될 수 있다. 이때는 대지에 새긴 이랑들처럼 피부의 시간성이라 할 수 있는 ‘주름’의 사실성에 주목했다. 미세한 주름이 극사실로 살아 난 작은 부분들은 당혹스러우면서 아름답다. 산맥의 지세, 대지의 융기를 여기에 비유할 수 있겠지만, 세밀하게 보면, 단지 주름의 차원을 떠나 인간의 피부가 갖는 결의 무늬와 형식, 색의 분방함을 엿볼 수 있다. 이후 2년간 변화된 작가의 작품들은 여전히 피부를 주제화하고는 있으나 ‘손의 모양’, ‘발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피부의 언어에서 시간의 ‘본질’을 그려내고자 했다면, 이제 그는 손과 발을 통해 시간의 ‘존재’를 찾는다.
최근에 제작된 작품들은 이렇듯 ‘존재’를 포착하기 위해 순간의 정지를 기록한다. 이것은 그가 처음 생각한 시간의식과 다른 시선이다. 이제 그가 바라보는 것은 어떤 순간에 노출된 손과 발의 표정이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표정의 언어를 읽는다. 희노애락의 정치성은 인간과 짐승을 불문하고 얼굴을 가진 모든 것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오흥배는 그것을 얼굴이 아닌 몸의 신체성으로 바꿔놓는다. 심지어 그는 머리카락만을 모아 제시하기도 하고, 가슴 한 부위에 솟아 있는 젖꼭지와 털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짙은 어둠에 휩싸인 주름들이 바다와 숲과 풀밭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표정을 풍부하게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장치란 얘기다.
그의 작품 중에는 피부를 꽃이나 토마토와 병치시킨 예가 있다. 인간의 피부에 한정했던, 아니 인간의 피부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었던 그의 미술적 정체성은 자칫 범위의 한계를 노정할 수 있어 그가 의도적으로 보여준 작품들이라 생각된다. 그는 인간의 피부에서만이 아니라 자연의 ‘껍질’에서도 시간의 본질을 찾는다. 또 어떤 작품은 시계추의 중심을 그려 병치하는 직설어법을 통해 시간성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존재의 본질’이다. 그는 “그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던 본래의 성향은 세월이 흐르면서 타의에 의해 바뀌어가고, 어느 순간엔 자기 자신을 내보이거나 감추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사람의 본질이라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1980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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