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Archaic Beauty, 고미 2021, Ink on paper, 116 x 79 cm, 45.7 x 31.1 in
박대성
구룡폭포 2021, Ink on paper, 140 x 60 cm, 55.1 x 23.6 in
박대성
버들 2021, Ink on paper, 69.5 x 50 cm, 27.4 x 19.7 in
박대성
청우 I 2021, Ink on paper, 44.5 x 69 cm, 17.5 x 27.2 in
박대성
고미 2021, Ink on paper, 60 x 50 cm, 23.6 x 19.7 in
박대성
고미 2021, Ink on paper, 60 x 50 cm, 23.6 x 19.7 in
박대성
송 III 2021, Ink on paper, 100 x 60 cm, 39.4 x 23.6 in
가나아트는 수묵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朴大成, b.1945-)의 개인전 《靜觀自得: Insight》을 7월 23일부터 8월 23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현시대를 대표하는 수묵화 작가인 박대성은 수묵 담채화 <상림>(1979)으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가나아트 최초의 전속작가가 된 박대성은 1990년대 초,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그 중심지인 뉴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이 현대화를 위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귀국 후 경주에서 먹과 서예에 집중하며 한국 수묵화의 현대화를 이룩했다. 이와 더불어 83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며 경주 솔거미술관 건립의 기초를 마련한 박대성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최근 세간에 공개되며 이목을 끌었던 이건희 컬렉션에도 그의 작품들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며, 소산 박대성이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명실공히 최고의 수묵화가로서 한국 미술계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의 이름이 다시 한번 대중에게 각인된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지난 3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한 아이가 보험가 1억 원 상당의 작품 위에 올라가 이를 훼손하고, 그의 부모는 사진을 찍으며 이를 방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현장을 담은 영상이 보도되자 한국의 관람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많은 이들이 영상에 등장하는 아이의 부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며 질책했다. 하지만 박대성은 아이가 미술관에서 안 좋은 기억을 가져가길 바라지 않는다며 그들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했다. 또한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한 작품의 훼손 역시도 나름의 역사이기에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며 거장다운 도량을 보였다. 이 사건을 다룬 뉴스는 유튜브에서 219만 회 이상 재생되며 많은 사람 사이에 널리 회자되었고, 소산 박대성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의 진경산수화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는 박대성은 전통에 머물러 있던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새가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듯한 초점인 부감법과 다시점을 적절히 이용하여 한 화면에 담기 어려운 빼곡한 산맥과 그 사이의 문화재를 강조와 생략을 통해 역동적으로 배치한다. 담대하면서 섬세한 붓질과 농묵, 담묵의 기술적인 조절로 탄생한 그의 수묵화는 마치 광각렌즈를 통해 보는 듯한 파노라믹 뷰를 평면적으로 연출한다. 또한 막사발이나 청화백자 같은 한국 전통 도자기의 표면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수묵화 주제의 다양성을 제시한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 靜觀自得(정관자득)은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작가는 기존에 선보였던 작품의 주제들을 되돌아보고 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금강산, 천제연, 소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신작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수집한 전통 도자기 및 공예품을 사실적으로 그린 ‘고미’ 연작 또한 대거 전시된다. 이와 더불어, 소규모 정물화도 함께 전시되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아우르는 전시가 될 것이다.
박대성 작가는 서양의 미술사조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화의 모더니즘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2022년 7월, 미국 서부에 위치한 LA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그의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며, 같은 해 가을에는 미국 동부의 여러 명문 대학교에서 순회전이 진행된다. 해당 순회전은 개관 4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박대성의 작품을 조망하는 전시를 열기로 한 하버드대학교의 한국학연구소(CGIS)를 시작으로 다트머스대학교(Dartmouth College) 내에 위치한 후드 미술관(Hood Museum of Art),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메리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Mary Washington)에서 연이어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북미 순회전 기간에 맞춰 다트머스 대학교의 김성림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미술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는 서적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는 서양에서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서적으로, 특히 한국 전통 수묵화의 현대화에 앞장선 박대성 작가를 주목한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미국 순회전에 앞서 국내에서 개최되는 마지막 개인전으로, 박대성의 주요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다. 《靜觀自得: Insight》전은 7월 23일(금)부터 8월 23일(월)까지 인사동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의 본 전시장, 제 1전시장, 제 2전시장, 제 3 특별관에서 진행된다.
■ 가나아트
정관자득(靜觀自得): 박대성 해외출국전
김형국(가나문화재단 이사장)
말은 그 사람이다. 부모 따라 전시장을 찾았던 아이가 너무 길어 전장(全長)을 벽면에 걸지 못해 마룻바닥까지 펼쳐졌던 그림을 발로 밟았다. 무심코 밟았고, 밟다 보니 미끄럼틀 놀이로도 밟았다.
어른들 눈엔 그림 훼손이었다. 소동이 난 것은 그 다음. 복구⦁보상 같은 말이 어른들 사이에 오가자 ‘대인(大人)’이 대뜸 한마디, “불문(不問)에 붙여라!” 무엇보다 ‘예방 전시’를 못한 어른들 탓이라 했다.
대인은 아이를 위한 말도 보탰다. 소동과 불문의 전말을 눈치챈 아이는 필시 장차 그림사랑이 될 거라고(「왼손 없는 무학의 화가 박대성」, 『조선일보』, 2021.6.12).
스스로를 위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놈’ 소동이 오히려 “봉황의 발자국이 되었네.” 당신 그림이 뉴스를 타고 세상에 널리 보이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중국 고사 “연작(燕雀)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는 우리말로도 익숙하다. 본디 아이는 연작일 수밖에 없고, 연작과 봉황 사이는 천길만길이다. 그런데 아이 발자국을 봉황 그것에 비유하고 나자 연작과 봉황이 이제 한길로 불쑥 올랐다.
동양화단이 눈여겨보는 선망의 경지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붓끝이 운률(韻律)에 실린 양 살아 움직인다”는 말이다. 기운생동은 타고난 자질인 것. 타고난 것에 배움이 보태지면 임계치(臨界値) 문턱을 훌쩍 넘을 것임은 자명하다.
수묵화가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1945- )의 기운생동이 수직상승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뉴욕 견문 뒤끝이었다. “모더니즘, 모더니즘 그러는데 그렇다면 현장에 가서 직접 배움을 얻어 보자!”며 대뜸 나선 길이었다. 당신의 취학 경력에서 영어 익힐 기회가 없었다던데 “어찌 무모한 행각이었던가? 연작의 걱정에, 거기도 벙어리가 살고 있데!” 대붕의 한마디였다.
성인 교육반을 찾았다. 조선 선비가 연경(燕京) 가서 나누던 필담(筆談)처럼 영어 대신 화담(畵談) 자리였다. 소산의 붓질을 보자 그만 선생이 놀랐다. 그 길로 경주로 가야 한다며 귀국길에 올랐고, 곧장 불국사를 찾았다. 큰 가람을 두 발로 서서 두 눈으로 바라보자 그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기운생동의 느낌을 한순간에 받고 있음이었다.
불국사가 통일신라 미술의 정화(精華)임은 세상이 안다. 해도 타고난 안목가가 말하면 한결 실감이 난다. 신문왕 「옥적(玉笛)」 피리에 얽힌 ‘만파식적(萬波息笛)’ 미덕을 기려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 그 소리 은하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명시의 김상옥(金相沃, 1920-2004) 시서화 3절(絶)은 이어 말했다.
“불국(佛國)으로 꿈꾸는 불국사 뜨락, 거기 묘하게 두 개의 꿈과 현실을 세웠다. 하나는 다보탑, 하나는 석가탑, 하나는 곡선, 하나는 직선, 하나는 동(動), 하나는 정(靜), 하나는 환생, 하나는 순교, 하나는 육신, 하나는 영혼, 하나는 전쟁, 하나는 평화...”라 노래했다.
(「묘한 일, 묘한 일」, 『시와 도자』, 아자방, 1975, 43쪽)
정반(正反)⦁대척(對蹠)의 둘이 조화됨은 물론 아예 하나가 되고 있음이 불국사의 미학이라 했다. 거기서 더 걸어 올라 석굴암 부처님을 만났던 일본 고고학자 또한 절창이었다. “아버지로 보려니 너무나 자비롭고, 어머니로 보자니 너무나 엄격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된 모습이 감동이었다는 말이었다.
조형만이 정반합(正反合)이 아니라 문학 또한 그랬다고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열변했다. 먼저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면서 같이 존재한다”고 운을 뗀다.
모순이라는 말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해요. 우주는 모순으로 존재합니다. 지구도 원심력과 구심력, 팽팽한 두 상극 때문에 우주공간에 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분법으로 갈라놓고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인간의 이기와 착각이거든요.
그 상극 내지 대척이 하나 될 수 있음이 한국미학의 특징이라며 작가는 『삼국유사』 「수로(水路)부인」편을 인용했다. 강릉태수 부인을 위해 길 가던 노인이 벼랑 위 꽃을 어렵사리 따서 바치며 “붉은 바위 가에서 / 손에 잡은 어미소 놓으시고 /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면 / 꽃을 꺾어 드리오리다.” 헌화가(獻花歌)를 노래했다. 젊음과 늙음이 서로 다름이고 경원(敬遠)이 아니라 상응할 수 있음의 아름다운 경지로 읽었던 것.
앞서 적었던 김상옥 시인의 불국사 감상에서 “하나는 전쟁, 하나는 평화”라는 상반 개념이 나온다. 삼국통일 전쟁 끝에 얻었던 평화를 노래했음이었던가. 기실, 소산이야말로 우리 현대사 동족상잔의 처참한 희생이었다. 그 시절, 그 어린 나이에 팔 하나를 잃었다.
나는 소산 그림을 만날 때마다 그 지극정성이 잔뜩 묻어나는 붓자국에서 당신 신변의 비극이 기억나서 항상 마음 한구석엔 눈물이 어린다. 저 비극을 딛고, 저 불편을 넘어 어찌 저런 화풍(和風)과 담락(湛樂: 화락하게 즐김)을 일구었을까. 정반(正反) 끝에 일군, 정반을 아우른, 마침내 정반을 뛰어넘은 짜임새인 것이 화면의 한쪽은 치밀(緻密)⦁정치(精緻)하고 또 한쪽은 소방(疏放)한 게 쇄락(灑落: 개운하고 상쾌함) 맛 그대로다.
신라 화성(畫聖) 솔거를 기준하면 “솔거 대 대(代)솔거” 둘이 함께 자리함이다. 황룡사 벽면 노송도는 실물의 닮음이 얼마나 핍진했던지 까치가 내려앉으려 했다던 극사실이었다. 요즘 말로 형상이 생생했던 구상 그림이었다. 한편, 현대화는 이른바 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대상 못지않게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심리가 중시된 비형상의 비구상화가 득세한다. 연장으로 대상의 평면 2차원적 파악을 넘어 입체 3차원적 파악 곧 큐비즘이 등장했음은 바로 순리였다. 소산의 모더니즘은 그 다차원을 구사해서 한 화면에 구상성과 비구상성을 함께 구사하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뿐 아니다. 서화동원(書畫同源)이란 말이 소산에게처럼 적절한 경우는 없다. 글씨인가 하면 그림이고, 그림인가 하면 글씨다.
이번 전시는 해외 순회전을 앞둔 국내 애호가들을 위한, 개봉 영화 시사회 같은 출국전시다. 내년(2022년) 7월. 이 전시 작품들을 갖고 미국 서부에 있는 대표적 현대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당초 2021년 가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순연된 것이다.
소산의 평소 말 화법(話法)은 그림 화법(畫法)처럼 독보적이다. 단숨에 일갈(一喝)하는 맛이 있다. 가정주부로 살았던 이가 뒤늦게 그림 공부한 것을 만나자 “호랑이를 토끼 굴에 가두고 있었다는 말이네!”하고 격려했다.
이제 나도 소산에게 한마디 던진다. “토끼 굴에서 자란 화재(畵才)가 호랑이가 되어 신대륙을 훔칠 것“이라고. 아니 글머리 수사(修辭)를 이어받아 ”비천한 땅에서 자란 연작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붕이 되어 구만리 장천(長天)을 나를 참“이라고.
1945년 경상북도 청도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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