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정
Untitled 2018 oil on canvas 80 x 60 cm
샌정
Untitled 2019, oil on canvas, 162 x 130 cm
샌정
Untitled 2021, oil on canvas, 140 x 170 cm
샌정
Untitled 2021, oil on canvas, 130 x 162 cm
샌정
Untitled 2018, oil on canvas, 70 x 60 cm
샌정
Untitled 2017 oil on canvas, 130 x 162 cm
샌정
Untitled 2021, oil on canvas, 117 x 91 cm
뒤셀도르프를 거점으로 한국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샌정 Sen Chung (b.1963)은 지난 20년 동안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근본적인 내적 원리를 탐색하는 일관성 있는 작업을 통해, 회화의 내재성과 특이성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해 왔다. 그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인간, 동물, 자연 풍경 그리고 건축 양식과 같은 재현적 모티브는 점점 사라지고,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될 작품 (회화 35점)을 포함한 근작의 대부분은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그리고, 선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과 절제된 색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작업은 역사적 문화현상과 구체적인 모더니즘의 다양한 미술 사조 (예를 들어, 초기 기하학적 추상, 절대주의, 구성주의, 후기 추상 표현주의, 제스처 회화 등)에서 차용된 시각적 언어가 자신의 그림 속 주된 모티브를 형성하는 동시에 회화적 표현방식으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샌정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회화적 질감은 1940-50년대의 제스처 회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지식과 이해를 보여주고, 단순한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그리고 선 등은 1910-20년대의 보편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숭고한 이념에서 근거한 형태라고 그 출처를 예상할 수 있다.
샌정의 그림 전체를 뒤덮는 회색 톤의 바탕은 사물과 배경을 구분하고 고립시키는 단순한 기능을 하기보다는 마치 사물이 짙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막연한 거리감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직접 피부에 와닿는 습한 기운처럼 항상 주변을 맴도는 듯한 ‘묘한 기류의 현상’은 그의 작품에서 우주적 공간을 암시하는 은유적 metaphorical 관점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 광대한 삼차원의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기하학적 부유물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것은 유동을 멈추지 않는 만물의 불안정한 상태를 시사한다. 반면, 이러한 불안정성은 어떠한 지적 불안이나 정서적 혼란을 야기하지 않고, 그의 작품에서는 오히려 고요함과 평온함 마저 느껴진다. 샌정의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조화롭고 균형 잡힌 구성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암시하는 모순된 상관관계에는 분명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의 그림은 명백하게 규정할 수 없는 준-기하학적 형태가 행성처럼 무리 지어 평화롭게 주위를 떠다니는 듯 보이지만,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 같은 불안함을 자극하는 고정되지 않은 지속적인 흐름과 움직임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섬세한 움직임, 거센 압력 또는 소용돌이와 같은 환경은 기하학적 형태가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일반적인 구조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에서 비합리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추상적 개념을 함축한 기호적 형태가 바다 한가운데 던져지거나, 태풍이 몰아 칠 것 같은 하늘 위에 쏘아 올려져 보편적 이념의 사각형과 절대사상의 원형이 공중을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도형의 무리들이 망연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궤도를 잃고 정착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부상자들처럼 본래의 형태를 잃고 부유하는 모습에 (그것이 비록 비인격적이며 객관적인 기하학적 도형이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멜랑콜리가 엄습해 온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위치를 상실하고 끝없이 부유하던 형태들이 형성한 우발적 연합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가건물처럼 ‘일시성’ temporality 을 인식하게 하고, 형태들 things 이 위치해 있는 곳은 오래된 기억 속 잠정적으로 존재 temporality 하는 시간적 맥락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샌정은 학문을 통해 얻어진 지식을 포함한 집단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통해 스쳐 간 모든 만남 그리고 개별적 삶에서 얻어지는 자신의 실제 경험 등을 토대로 회화를 회고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기억 속 실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작가 자신의 ‘현재성’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예술적 작업 방식과 이미지 구성에는 분명 미술사에서 차용된 시각적 요소가 도입되지만, 그것은 특정 회화의 재해석이나 재구성이 아닌, 작가의 ‘현재함’으로 과거 속 기억과 지적인 맥락에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를 귀환하는 샌정의 작품은 미술사적 양상을 통해 포착되는 이미지 구축과 개념을 일시적인 ‘현재함’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으로 객관화하고 상대화하는 동시에 ‘회화’ painting 를 통해 자신이 포착하고자 하는 내면적 정신작용은 주관적 권한을 가진 영역으로써 다소 감정적이고 명상적인 대응으로 양쪽 모두를 구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성적이면서 감정적이고, 분석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샌정의 창조적 양면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지적인 아티스트 샌정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방식을 통해 수시로 변하는 현상 뒤에 숨겨진 내면적 근원을 밝히고자 끊임없이 자문하는 동시에 모더니즘의 타당성과 진위성 역시 탐구하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또한 샌정이 범주화된 회화 예술의 통념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 다른 시스템과 구성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잠재적 감각 변환의 길을 열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강한 의지를 의미한다.
■ 2021년 5월 큐레이터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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