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적 기표-선(線)으로부터 The imaginary signifer-started from the line
2021.08.28 ▶ 2021.11.21
2021.08.28 ▶ 2021.11.21
전시 포스터
전통적인 의미에서 한국화는 붓을 운용하여 얻어지는 선(線, line)을 주요 매체로 한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관념이나 대상을 구현하는 선 위에 먹의 농담이나 채색 안료가 얹혀지고 여기에 한지의 흡수와 퍼짐의 원리가 작용한다. 한국화에서 이 '선'의 매체성은 현대 한국미술에서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한국미술에서 '선'의 역사는 서양미술사에서 벌여졌던 신구논쟁 중에 '선과 색'의 갈등에 대한 역사와는 다르게 전개된 듯하다. 문자(書)와 그림(畵)의 매체인 '선'의 운용에 관한 역사는 선사(先史) 이래 우리의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집단과 개인의 무의식 등을 표현하는 수사(修辭)와 비유(比喩)의 역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제수묵비엔날레 기념 기획전은 이러한 '선'으로부터 시작된 한국화 작품들을 좀 더 현대적인 담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석을 모색해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시의 주제에서 '상상적 기표'(Le Signification imaginaire)라는 용어는 원래 크리스티앙 메츠가 1977년에 쓴 영화분석에 관한 이론서의 제목에서 차용되었다. 메츠가 영화와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 '상상계'는 결국 상상력에 의해 부재를 불러내는 능력, 즉 이미지의 수사를 말한다. 미술사에서 이러한 상상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중요하게 여겼던 시기는 1920년대에 영화와 표현기법을 공유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그렸던 초현실주의 운동에서이다. 만일 요즘 들어 혁명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영화적 메카니즘과 미술이 다양한 수사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술과 영화를 잇는 다리에 서서 현대 미술작품들에 대해 새롭고 다양한 해석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영화적 기법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이미지의 수사를 통해 전통적인 의미를 흔들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가하여 우리를 다른 세계로 항해하도록 인도하는 모험적인 작업의 '행위와 태도'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초대되었다.
작가들은 일상의 장면들을 편집하여 전통산수 속에 병치하거나(하루 k), 오버랩이나 꿈속의 압축의 원리처럼 평면의 작품을 오브제에 덮씌우거나(구본아), 플래쉬백 하듯 영상의 표면을 걷어내고 다른 시공의 층위로 이동하면서 원형을 찾아가거나(금민정), 작은 미생물과 시각기관을 공유하면서 타자적 우주로 우리를 안내하거나(김설아), 꿈속의 세계처럼 야릇한 심리적 풍경으로 상징적인 의미의 맥락을 뒤흔들어 놓거나(이진주), 주체의 내부로 침잠하며 끝없는 성찰을 통해 슬픔의 근원을(이태호), 혹은 세상의 모든 익명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한의 세계를(박미화) 추구하거나, 혐오와 억압의 대상이었던 사회적 타자에 자아를 투사하고 상상력을 통해 이를 극복해내는 무수한 형상을 창조(이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이 펼쳐놓은 상상적 기표의 신비롭고 마법 같은, 하지만 그렇기에 더 리얼하고 더 진실한 세계로 향하는 멋진 항해에 함께 올라보자! ■ 박현화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의 유지를 금지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아니고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다. 사람들 자신이 저지른 일이다. 자연과 그 속 혹은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 사이에는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이익을 주는 관계가 존재한다. 계절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고 사람들도 소리 내지 못하게 되었다. 시간이라는 속성이 음식물을 씹어 분쇄하여 소화를 도와주는 이빨과 같이 소멸의 특성이 강하다면, 시간의 이빨을 통하여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반격을 끌어안는 시끄러운 가을이 오기를 바란다. ■ 구본아
이번 전시의 「화.전.림.」은 화전민 집촌이 복원되어 있는 가평의 잣나무 숲을 찾아가 촬영하여 제작한 영상이다. 숲에 불을 지피고 그 거름과 영양분으로 토양을 가꾸어 4, 5년간 같은 장소에서 농사를 짓다가 또 다른 숲으로 이동하여 삶을 살았던 화전민들은 전국적으로 산촌지대를 돌아다니며 밭을 만들고 경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이들이 사라졌지만 전국적으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 산촌 주변에 그들의 터가 남아 보존되어 있는데 주로 산촌의 주거 유형인 너와집, 귀틀집 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울창한 숲에서의 그들의 흔적... . 그 공간은 복원되어 다시금 숲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나는 공간의 곳곳에 투영된 그들의 흔적을 거슬러 옛 존재의 흐름을 되짚는다.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공간을 재구성 하였다. 여기에는 공간의 기억 요소 (옛 사람들의 노랫소리, 현재의 이 공간에 부는 바람소리, 기억의 소리 등) 를 주파수로 시각화하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현재 내 앞의 나무의 움직임에 연동하는 기술을 사용하였다. 또한 그 특정적 장소인 숲에서 가지고 온 사물들(흙, 잣 열매, 나뭇잎, 나뭇가지, 계곡의 돌) 그리고 그 나뭇잎들을 태운 재는 다시 그들의 행위를 모방하게 함으로서 기억의 공간을 환기시키며 그 장소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작업 행위가 되었다. ■ 금민정
아홉 개의 검은 구멍
오랜 기간 오염으로 통증의 시간을 지나온 마을에 이름 없는 병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요구되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것을 추적하고, 고통의 순간에 드러난 형태를 관찰하며, 몸속의 기억과 흔적을 찾는 행위로 이어졌으며,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어 불완전한 것들이 내밀하게 오가는 구멍(두 눈, 두 콧구멍, 두 귀와, 입과 두 배설기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아홉 개의 문이 있는 도시(바가바드기타)'이며 '아홉 개의 구멍이 난 상처(밀린다팡하)'라는 오래된 말이 전해졌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며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이는 열려 있는 구멍과 되풀이되는 상흔으로 환원된 인간의 몸이 어쩌면 다른 존재의 고통을 감각하는 통로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였다. 조각나고 왜곡된 형상으로 도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생명체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어디선가 기형의 몸으로 떠밀리고 부유하는 존재를 인간의 구멍/상처/몸과 잇고 중첩하여, 서로 닮아있는 고통의 기억과 불안정한 생의 흔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웅크리며 말라가는 지렁이는 부서진 청각기관으로 연결되고, 단절된 음성을 상상하게 한다. 죽음의 경계를 목격한 포자는 멀어버린 시각기관으로 연결되고, 참혹한 소문을 상상하게 한다. 짓이겨진 벌레는 음험한 것들이 새어 나오는 배설기관으로 연결되고, 가려진 징후를 상상하게 한다. '아홉 개의 검은 구멍'은 '징후, 소문, 흉흉, 무너진 음성, 숨소리, 분열'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이는 몸으로 증언하는 존재들을 응시하고 기록한 것이며, 인간이 가진 연약한 구멍을 통해 번져가는 폐허 위의 복잡한 타자들을 끊임없이 연계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상상하고자 함이었다. ■ 김설아
나의 작업은 내 개인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움직여왔다. 여기서 '우리'란 사람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채워지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자연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형성된다. 그것을 너무나 쉽게 잊고 있지만. 작금의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자연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욱 분명해졌다.
사람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동물이이나 식물들처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일 뿐이다. 지구에 함께 공존하고 있는 식물과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인간의 오만함으로 점철된 현대문명은 그야말로 거대한 해일을 마주하고 있다.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 따른 기후변화가 빠르게 우리의 삶을 잠식시키고 있다. 자연이라는 둥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우리의 삶이 온전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내일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무엇을 말해야할까. (2021년 8월) ■ 박미화
우리가 바라보는 진짜 풍경은 무엇인가?
우리의 언어는 과거-현재-미래로 시간을 구분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면면에서 시제를 뛰어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단지 눈앞에 사진처럼 펼쳐지는 물질적 표면의 장면만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기억, 상상들이 동시적(同時的)으로 인지되는 주관적 장면을 저는 주목합니다. 사진적 리얼리즘이 아닌, 각자가 인지하는 주관적인 리얼리즘의 풍경에 집중합니다. 이질적인 서로 다른 장면들은 동시에 유기적으로 떠오르고 사라지고, 엉뚱한 연결고리를 가지거나 맥락 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현실주의와 같은 꿈처럼 펼쳐지는 환상적 장면(무의식의 영역에 집중하는 초현실주의로 분류되지 않기를)이기보다 이 땅의 현실을 딛고 서서 바라보고 있는 주관적인 풍경에 가깝습니다. 기울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버티지만, 땅으로 주저앉지도 공중으로 떠 있지도 않는, 발끝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정도의 존재(시선)의 무게로 이 심리적 풍경(psycholandscape)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이진주
처음 보듯 생경한 풍경과 장소를 마주하게 되면 그것이 갖는 흡인력과 비밀을 해석해 보려는 뭇 노력들이 허망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불가해한 힘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비밀로서 간직한 채 그냥 두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밀이란 언젠가 밝혀질 사실이라기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통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시킬 수도 없는, 나만의 가슴 속에 간직한 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다. 30여 년 전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중, 아는 의사의 권유로 밤낚시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2월로 기억되는 그 날은 몹시 추운 그믐밤이었다. 시커먼 바다의 일렁임을 목격하고 어떤 전율을 느끼며 문득 우리가 이 삶의 여정을 끝에 서게 된다면 그래도 간직하고 가져갈 기억들 중에 이 풍경도 포함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이 시커먼 일렁임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내었던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물-결'시리즈의 작업을 해오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에 맞서는 일이 이토록 먹먹한 것이라는 생각에 망연해질 때도 많았다. 하기사 지난 40여 년 동안 화면에서의 일들이 전혀 즐겁고 흔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고통이었던 기억이다. 고통은, 낯선 것이 내게 들어와 내 안의 질서를 뒤흔들기 때문이지만, 만약 낯선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여행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으로부터 다른 출발이 가능한데 피하려고만 했던 어리석음인 것이다. '물-결'연작을 작업하면서, 작업이라는 것은 화면과 시간에 맞서는 스스로를 느끼고 호흡하는 일이며, 어떤 흐름과 균형을 느끼는 짓을 통해 춤을 추는 일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쩌면 '빈 짓' 같기만 한 이 짓을 통하여 삶의 비의를 목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7. 11. 작업노트 中) ■ 이태호
내 상상력의 원천은 매일 밤 읽고, 쓰고, 그리는 책상 위에서의 소박한 표현 행위에서 비롯된다. 나는 문학 작품, 신화, 철학 등의 서적을 읽거나 신문 등을 읽으며 그날치의 일기를 쓰고, 잠자기 전에 작은 드로잉을 한다. 작은 드로잉엔 내가 그날그날에 만난 내면적 감흥이나 외부적 형상들이 그려진다. 나는 그 드로잉을 통해 내 상상력이라는 미술적 기능의 한 부분을 키운다. 나는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남성들이 참여를 제한해온 여성들만의 제사, 그 제단을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단은 불교식, 힌두식, 서양 종교식도 아닌 나만의 그노시스를 품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나는 페미니즘이 미술 이라는 형식과 결합하면 그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 이 여성들의 제단 위에 나의 여성성과 존재성과 인식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 이피
인류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자연은 경외와 극복의 대상이었다. 특히 동양에서 자연은 만물이 소생하고 이상적인 인간이 닮아야 하는 경지로 인식된다. 이러한 생각은 전통 동양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전통 동양화에서 산수(자연)는 이상, 동경, 미지와 같이 어쩌면 신과 같은 위치를 지니고 있다. 작업은 '현대인도 같은 생각인가?'라는 물음, 즉 자연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나들이를 위한 도시락에 담겨진 자연과 거기서 유희를 즐기는 현대인, 실재하는 자연에서 스케치한 풍경의 일부를 접시와 같은 그릇에 담아 수집된 모형인 '수집된 산수'와 자연에서 채취한 오브제(돌,나무)를 바탕으로 장소의 느낌을 재구성한 '편집된 산수'로 나타난다. 시대가 흘러갔지만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은 여전히 자연에서 놀고 치유를 받는다. 다만 그 의미와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본인의 작업은 산수화의 다양한 재료적 실험과 방법적 모색을 통해 현대적 상황에 맞게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다. ■ 하루.K
1983년 여수출생
1980년 부산출생
1950년 출생
1980년 광주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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