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
2011,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 휘트니미술관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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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미국 메인주(州) 루이스턴에서 태어났다. 클리블랜드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한 뒤 뉴욕에서 윌리엄 메릿 체이스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알베르트 핑크햄 라이더와 조반니 세간티니의 작품을 접했다. 또한 이 시기에 월트 휘트먼과 랠프 월도 에머슨 등 미국 초절주의 문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1909년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의 '291'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이후 계속 '291'에서 조지아 오키프, 존 매린, 아서 도브 등과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1912년부터 1915년까지 하틀리는 유럽에 머물면서 후기인상주의 및 입체주의 화가들을 만났다. 특히 하틀리는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파울 클레 등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틀리는 이 시기에 베를린의 예술적인 분위기와 쾌락주의, 그리고 군대와 관련된 볼거리에 도취되어 화려한 야수주의적인 색채를 사용해서 입체주의 추상화 연작을 제작했다. '독일 장교' 연작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사망한 프로이센의 장교 카를 폰 프라이부르크 대위에 대한 경의가 일부 담겨 있다.
1916년 뉴욕으로 돌아온 하틀리는 그의 '독일군인 회화'가 독일의 군국주의를 찬양한다는 비난과 함께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그 후 몇 년 간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살다가 1932년 고향인 메인주(州)에 정착, 향토적인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말년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재치 있고 상징적으로 묘사한 초상화를 제작했다. 한편, 동성애자였던 그는 스스로를 금발에 문신을 새기고 보석으로 치장한 근육질의 게이로 그린 자화상을 내놓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틀리는 폭넓은 여행을 통해 다양한 현대미술 운동과 접촉한 뒤 메인주(州)의 황량한 풍경을 주제로 한 대담한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독특하고 개성적인 표현주의 양식에 도달했다. 그는 1943년 메인주(州) 엘즈워스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는 《독일 장교의 초상 Portrait of a German Officer》(1914), 《풍경, 뉴멕시코 Landscape, New Mexico》(1920), 《카타딘산의 가을, 제1번 Mt. Katahdin, Autumn, No. 1》(c. 1941~194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