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FOLLOW
1898년07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론튼 출생 - 1976년11월11일
경력
1976년 필라델피아 문화 동맹 칼더의 축제 개최
수상경력
1975년 U.N 평화상, 루이사 U.N 여성상 수상
개인전
2023 알렉산더 칼더 CALDER, 국제갤러리, 서울
단체전
2019 픽처 플레인: 수직, 수평의 화면과 움직이는 달, 갤러리 학고재, 서울
2011 인상파 이후 서양미술의 거장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추가정보
알렉산더 칼더는 189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조각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그는 1923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입학하여 4년 간 회화를 전공하였다. 1926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작가는 나무와 철사를 사용해 움직이는 장난감과 조형물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칼더의 서커스’라 명명된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1928년 뉴욕 베이헤 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1928년부터 1933년까지 주로 파리에 거주하던 칼더는 호안 미로와의 교우 관계를 통해 중요한 영향을 받게 된다.
칼더의 예술적 방향은 1930년 피에트 몬드리안의 스튜디오 방문을 계기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며 1931년에는 다른 비구상 작가들과 함께 추상 창조(Abstraction-Creation) 그룹에 참여하게 된다. 칼더는 손이나 작은 전기 모터로 움직일 수 있는 조각들을 만들었으며 뒤샹에 의해 모빌이라는 명칭이 주어진 이러한 작품들은 1934년부터 기류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들로 확장된다. 이후 조각가 장 아르프는 칼더의 부동적 조각들을 일컬어 스테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길 제안한다.
1933년 이후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던 칼더의 회고전은 1943년 뉴욕 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1964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1976년 휘트니미술관에서 각각 개최되었다. 주요 수상 내역으로는 1952년 베니스비엔날레 최우수상과 1958년 피츠버그 카네기국제전 1등상이 있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만들어진 그의 작품 대부분은 커미션을 통한 야외 설치용 대형 공공 조각들이 주를 이루었다.
칼더의 선구적 발명품인 모빌과 스테빌은 작가 살아 생전은 물론 1976년 작고 후에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은 딱딱한 고정적 오브제가 아닌 유연한 연결 고리로 이루어져 조각의 관습적 개념을 바꾸어놓았으며 그의 기지와 획기적인 구성,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의 조화는 키네틱 아트, 추상 조각, 퍼포먼스 아트와 같은 다양한 실험 예술의 성장을 가능케 하였다.
어머니는 화가였고, 아버지는 조각가였다. 1915~1919년 스티븐스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으며, 1919~1921년에는 자동차 기술자, 도안사, 능률기사, 보험회사 조사원, 기계 판매원, 지도 제작자, 기계 디자인의 식자공으로 뉴욕 ·코네티컷 ·미주리 ·오하이오 ·버지니아 주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1923년 뉴욕의 미술학교 아트스튜던츠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하였으며, 1926~1936년에는 주로 파리에 머물면서 P.몬드리안, J.미로, J.아르프, M.뒤샹과 사귀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27년에 스튜디오에서 철사 ·나무조각 ·종이 ·가죽 등 여러 재료로 만든 서커스 단원과 동물들로 매주 4일 서커스 공연을 연출하였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마루바닥에 앉아 장난감 동물들과 곡예사들의 묘기에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는 레제 ·르 코르뷔지에 ·몬드리안 등이 있었다. 특히 몬드리안에 압도된 그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 구체적 표현이 ‘움직이는 조각(mobile)’이었다. 그의 모빌은 조각을 대좌(臺座)에서 해방시켰고, 양감에서도 해방시켰다.
1935년 이후의 모빌은 모터보다는 기류(氣流)에 의해 움직이는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것은 가는 철사에 연결된 철판으로 된 형태들이 기류를 따라 또는 상호 균형의 원리를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는 조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낳은 훌륭한 조각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1952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람회에서 조각대상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대형조각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작품들은 비행장 ·미술관 ·광장 등에 세워졌다.
그의 업적은 움직이는 미술인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였다는 데 있으며, 그 이후 J.탱글리, J.리키 등의 조각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