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기억 Memory of a Place
2021.10.13 ▶ 2021.11.18
2021.10.13 ▶ 2021.11.18
전시 포스터
권구희
화가의 아침1painter's morning1 water color on paper_45.5×53cm _2021
권구희
캔버스가 있는 공간9space with canvas9 water color on paper_ 72.7x90.9cm)_2021
이이정은
거기, 가을 속에 일몰_202069 캔버스에 유채_207x139.5cm_2020
이이정은
거기, 바다와 섬 202007_캔버스에 유채_207x139.5cm_2020
하지훈
gemstone isle#28 acrylic oil on canvas_150x105cm_2018
하지훈
structure of landscape#1(corsica) acrylic oil on canvas_182x227cm_2019
자신의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하여 풍경의 단편을 담아내는 풍경화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고 또한 그 시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보다 강력한 표현력을 갖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작가 스스로 풍경에 자신이 투사되는 경험의 공간을 드러내는 장소는 기억이 머무는 곳이 된다.
슈페리어갤러리는 <장소의 기억>이란 화두를 통해 권구희, 이이정은, 하지훈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메타회화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권구희 작가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 공간을 그림으로써 관람객에게 간접적 환영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관람객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과 캔버스에 존재하는 공간 사이에 서서 현실과 가상의 혼재된 경계적 체험을 하게 된다. 작가가 제시하는 풍경화는 익숙함과 낯설음의 지점을 왕래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풍경을 제시한다.
이이정은 작가는 주변의 자연이나 풍경을 통해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다. 작품 속 자연은 관조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형상을 띄며, 개성적인 색감, 터치, 텍스쳐로 작가의 '생기'를 담는다. 작가는 특유의 색채 감정만으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를 확장하고 있다.
하지훈 작가는 자연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대상의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대상의 이면이나 기억과의 연관성을 표현하고자 풍경에 대한 인상, 기억, 누적된 시간과 감정을 응축해서 하나의 덩어리 안에 표현하고자한다. 그 공간은 외부세계를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대신에 물감, 색채, 물성 그 자체를 보여주는 붓질로 인해 개념적인 회화로 읽히게 된다.
3인의 작가들은 기존 풍경화의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공간을 해체하고 작가의 감정을 투영하는 방식을 통해 풍경화의 재해석을 시도하며 관람객을 특이한 경험의 세계로 안내한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그림이 있는 공간*
-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
권구희 작가노트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을 때 나는 현실과는 조금 다른 곳을 생각한다. 반면에 작업을 하고 있을때는 삶을 생각한다. 나의 그림에는 항상 두가지 이상의 공간이 혼합되거나 분할되어 등장한다. 이것은 삶의 환기구이자 그림에 대한 몰입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림 안 또 다른 공간은 액자식 구성의 요소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며, 작품안으로의 몰입을 만들어 낸다. 작품 안에 몰입하는 순간은 현실을 잊게 되는데 그 망각의 시간동안 작품 안 또다른 허구의 세계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몰입이 끝아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림의 여운이 잔상처럼 남아 예술의 일상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통해 삶과 유리된 것들이 일상과 결합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유희로서 다가와 관객들의 일상이 조금은 풍성해지길 소망한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그림이 있는 공간’은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패러디한 문장으로 나의 작품들을 설명하는 제목이다.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나의 작품 초창기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는 시인 랭보의 “la vie est ailleurs’라는 어구를 밀란쿤데라가 인용한 소설 제목으로, 이것을 재인용한 것이다.
이은주(아트스페이스 정미소 디렉터) 비평글 부분발췌
권구희의 작업의 기본 테제는 페인팅이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방식의 그리는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2차원의 캔버스에서 3차원적인 공간감을 비롯하여 조각오브제에서 발현되는 설치기법을 사용하여 작업을 완성시킨다. 따라서 그의 작업완성은 전시장의 설치로 마무리된다.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되 설치를 통해 캔버스의 변형적 형식을 완성시킨다.
최근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가 매체적 입장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설치의 개념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치확장의 개념은 단연 미디어아트에서만 부각되기보다는 전통적인 장르로 구분될 수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판화,조각, 회화에서도 확장되고 있는 개념이다.
권구희의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미 전시장 이전의 공간감이 평면에 상정되어 있으며 캔버스와 컴퓨터 모니터에서 획득되는 환영적 일루전을 지니고 있다. 평면의 캔버스 막(膜)뒤에 마치 현실과 또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마음 (Swinging heart in nature)
이이정은 작가노트
내가 자연에서 생기를 느끼는 이유는 자연 속의 각 대상들의 각각의 생김새와 움직임이 매 순간 변화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내 속의 감각들은 자연을 만날 때(대할 때) 열리고 그 감각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기 위해 최대치로 확장 내지는 활성화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사방이 자연으로 둘러싸인 경우에는 그런 대상들이 한 공간(장소)에 모여 각각의 자신들의 고유한 시간성과 함께 순간순간의 변화를 보여주니 많은 것을 느끼고 싶은 내 몸은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에게 감각의 모든 문을 열어주게 된다. 자연 속의 그들은 어느 시간에 태어나 죽기까지 한 번도 같은 상태, 같은 에너지에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라. 나 또한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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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어제 그대로인 것 같은 책도 시간이 지나면 외부에서의 가시적인 힘의 작용(책을 옮긴다거나 힘을 가해 찢거나 등) 없이도 변하고 있으니, 쌓인 먼지나 햇빛에 의해 책은 처음의 책일 수는 없겠고 자연물로 있을 때보다 나무가 천천히 눈에 덜 보이게 변화할 뿐이다.
자연환경 속에 있는 많은 것들은 수시로 햇빛, 공기, 수분, 바람 등 기후 등 그날그날의 날씨를 온몸에 형상으로 남겨둔다. 눈에 크게 인식되게 남거나 미세하게 남는 것 그리고 천재지변 같은 바로 남는 형상이거나 은근한 바람과 빛에 의해 천천히 남는 형상이거나 자국 일뿐 영향을 받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든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식물이든 모두 자신의 몸, 외형에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쌓이고 지금도 천천히 혹은 눈에 보이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무나 숲, 호수, 강 바다 등은 그런 면에서 내가 천천히 관찰하기 좋은 자연이다.
또한 그들 속에서 나도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하나라는 것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이자 대상으로서 자연은 인간이지만 동물로서의 살아있음 그 자체에 대한 감각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대상이자 장소이다. 인간으로서 사회를 벗어나 오롯이 살아있는 존재로서 그 무엇임을 느끼게 하는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의 그 속성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강해진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가는 구름을 볼 때나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의 움직임을 통해서 또는 분명 새싹이었는데 어느덧 녀석이 풀처럼 자라 한 잎 한 잎 자신의 모습, 존재를 보여줄 때 나도 살아있음을 녀석들을 통해 느낀다. 내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보다 다른 무엇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더 익숙해서일까?
그들의 변화 속에서 그들의 살아있음과 나의 살아있음이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을
나는 나의 회화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훈 작가노트
결국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자연의 모습에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숙성되어진 영구적 형태로의 전환이다. 과거 사건들의 무대이자 배경이었던 풍경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감정과 뒤섞여 의식 속에 모호하게 남아있고, 나는 이러한 이질적 잔영과 낯설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체화시키려 한다. 자연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대상의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대상의 이면이나 기억과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림 속 풍경은 개개인의 경험만큼 보여 질 것이며 낯설음의 경험과 감정이 가시화된 이미지를 통해 공유되었으면 한다.
미술평론글
경계에서의 회화
글에서 부분발췌
하지훈은 ‘그림’을 그린다. 그림/회화란 일정한 표면/평면에 일루젼을 발생시키는 장치이다. 혹은 화면에 하나의 사건을 발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납작한 지지대위에 물감과 붓질로 이루어지는 모종의 행위이다. 물론 물감/붓질은 다른 재료와 수단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하여간 그것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도 있고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을 질문하면서 그 조건의 한계를 그림의 내용으로 담아낼 수 도 있으며 혹은 회화를 이루는 여러 조건들의 물질성 자체를 극대화하는 수도 있다. 물론 그 외에도 회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 해석은 무궁하다. 회화가 서식하는 평면의 화면은 물질적이기도 하고 심리적이자 정신적인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훈의 그림은 물감과 붓질에 의해 구성된 모종의 형상/덩어리가 화면 중앙을 ‘조각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평면적으로 칠해진 바탕 면에서 입체적인 덩어리(산, 섬)가 부감되는 형국이다. 물론 그 덩어리 내부는 물감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거나 물감의 물리적 상태를 풍경처럼 보여준다. 물감이 특정 도구의 일정한 압력에 의해, 속도와 시간에 의해 혹은 작가의 신체성에 의해 밀려나가고 씻긴 자취 등으로 얼룩져있다. 어쩌면 작가는 물감이 외부적 조건과 연계되어 파생시킨 여러 상황성을 안겨주고자 하는 그림으로 보인다. 물감의 물리적 표정, 평면적 붓질이 모여 일루젼을 주는 동시에 물감 그 자체로 부단히 환원되는 과정이 읽혀지는 그림이다. 물감이 자아내는 순수한 물리적, 촉각적인 붓질(몸짓)과 함께 두드러진 마티에르 등은 이 그림을 추상과 개념적인 회화로 읽히게 한다. 동시에 뒷걸음질 치면서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면 화면은 이내 풍경을 떠올려준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여전히 전통적인 구상화, 풍경화의 전형성을 떠올려준다. 안정적인 수평선과 수직으로 융기한 섬이나 산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맞물려서 수직과 수평의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일반적인 풍경화의 관례를 따르고 있는 재현회화에 속한다. 그러나 그 재현성에 균열을 이루는 것은 내부를 채우고 있는 다소 혼돈스러운 붓질과 카오스적인 물감의 엉킴, 흘러내림, 뭉개짐 등이다. 물감을 다루는 작가의 신체성이 고스란히 감촉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색채를 지닌, 색채의 스펙트럼이 넓고 화려해 보이는 물감의 집적은 색을 구체적인 사물의 지시나 재현에서 벗어나 모종의 상황성을 안기는 질료적인 측면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작가의 색은 온갖 다양한 색을 한 공간에 섞어서 쓰는 편이다. 색의 구별을 없애는 시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작가에게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이란 없다고 본다. 당연히 모든 색은 화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거나 다채로운 색을 속도, 시간, 힘 등에 의해 변형태로 만들어 보여준다. 그러는 순간 색/물질은 낯선 질감과 감각을 발생시키는 존재가 되어 유동적인 생명체처럼 자리하고 있다. 화면이 살아있거나 생성적이거나 활성적인 존재인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정적인 부동이 자세로 자리한 덩어리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의 활력이 느껴지고 동적인 흐름이 감지되는 역설이 빚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하지훈의 그림은 세잔의 풍경화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단속적인 붓질의 흐름과 한색과 난색의 교차와 충돌로 이루어진 세잔의 회화는 납작한 캔버스의 평면 안에서 물감과 붓질, 색채만으로도 깊이와 입체감, 심지어 사물의 견고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지훈의 그림은 세잔의 조형의식과 조우한다.
화면의 중심부에 설정되어 보는 이의 시선에 우선적으로 걸려드는 이 섬/산 이미지는 물감의 물성, 색채 감각, 그리고 회화가 뿜어내는 묘한 아우라 등을 보여주기 위한 매개로 호명된다. 물감을 바르고 문지르고 밀고나가며 마치 동양화의 획을 치듯이 운행되는 붓놀림, 순간적인 동작과 직관적인 칠하기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 등은 분명 기존 붓질과는 다른 감각을 발생시키려는 특이한 붓질에의 모색으로 보이며 이러한 방법론의 특이성을 통해 표면에 미묘한 감각을 발생시키고 낯선 느낌을 자아내려는 연출로도 보인다. 어쩌면 이런 방법론이 작가가 시도하는 회화의 새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어딘지 영상적인 잔영을 연상시킨다.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1986년 서울출생
1977년 출생
1978년 출생
불안 해방 일지 Anxieties, when 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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