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2021.10.27 ▶ 2022.02.13
2021.10.27 ▶ 2022.02.13
전시 포스터
평화 1968, 종이에 잉크, 81×135.5㎝, 개인 소장
최욱경
자화상 시리즈, 계속되는 나와 나의 생각들 1976, 종이에 연필, 200x91cm, 뮤지엄 산 소장
최욱경
마사 그래함 1976, 종이에 연필, 102×255㎝, 개인 소장
최욱경
화난 여인 1966, 캔버스에 유채, 137×174㎝,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최욱경
줄타기 1977, 캔버스에 아크릴릭, 225×19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최욱경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99㎝, 개인 소장
최욱경
경산 산 1981, 캔버스에 아크릴릭, 80×177㎝, 개인 소장
최욱경
무제 1966, 종이에 아크릴릭, 42.5×57.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적인 여성화가 최욱경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를 10월 27일부터 2022년 2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최욱경(1940~1985)의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고, 미술 교육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작가의 전방위적인 활동 이력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마련된 회고전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작가의 시집 등 미술이 문학과 연계되는 다층적인 지점들에 주목해 그의 작업 전반을 새롭게 읽어보고자 한다.
최욱경은 1940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예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63년에 도미(渡美)했고, 미국 유학 후 현지에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했다. 1965년에는 『작은 돌들(Small Stones)』이라는 영문 시집을 출간, 문학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1970년대에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작품 창작과 강의를 병행했고, 「앨리스의 고양이」를 비롯한 시 45편을 수록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5년 작고할 때 까지는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산과 섬을 주제로 한 회화 작업 제작에 몰두했다.
최욱경은 1980년대에 《상파울루 비엔날레》(1981), 뉴욕에서 《한국 현대 드로잉전》(1981), 교토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전》(1982), 파리의 《살롱 도톤》(1982) 등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에 다수 참여하면서 당대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작고 이후에도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갤러리 등에서 작가를 추모하는 회고전(1987)이 개최된 바 있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된《여성 추상미술가들(Women in Abstraction)》(2021.5) 전시가 10월 22일부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순회 전시되고 있고, 모교인 미국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전시(《1932년 이후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With Eyes Opened: Cranbrook Academy of Art Since 1932)》)에도 출품되는 등 최근 해외에서도 시대를 앞섰던 추상표현주의 여성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미술가, 교육자,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욱경은 주로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수용한 미국적인 화가’ 혹은 ‘요절한 비극적인 여성 작가’로 인식되어 왔다.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이전의 평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업을 동시대 현대미술 및 문학과의 관계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최욱경의 예술이 위치한 좌표를 재탐색하고자 한다. 동시에 호기심 때문에 원더랜드로 모험을 떠난 앨리스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을 멈추지 않았던 최욱경의 능동적인 삶의 이력과 그의 작업이 지닌 동시대성을 부각하고자 한다.
전시는 크게 4개의 공간으로 나뉜다.‘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 3개의 주제 공간은 연대기별로, 마지막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화상 작품 및 기록물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유학을 통해 추상표현주의와 후기회화적 추상에서 팝아트와 네오 다다에 이르기까지 미국 동시대 미술을 폭넓게 수용한 시기이다. 특히 <화난 여인>(1966),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 등 표현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추상 회화 및 흑백 회화 등을 선보인다.
두 번째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에서는 작가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했던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표현적인 추상미술에서 벗어나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독자적인 200호 이상의 대규모 추상미술 작업을 제작한 시기로 <줄타기>(1977), <마사 그래함>(1977) 등이 소개된다.
세 번째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는 1979년에 미국에서 귀국해 영남대와 덕성여대에 재직하면서 경상도 지역의 산과 남해의 섬 등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한 시기이다. 원색의 강렬한 대비와 표현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대작이 많았던 1970년대의 작업과 달리,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절제된 선과 구성을 강조하는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1984), <빨간 꽃>(1984) 등이 소개된다.
네 번째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195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작가가 제작한 자화상으로 대부분 구성된다. 작가는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을 지속했는데, 이는 자화상이 근간이 되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욱경의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회고전은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화가 최욱경의 이력 뿐 아니라 시인이자 미술 교육자로 활동했던 그의 다양한 활동이 부각되어 국내외에서 최욱경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제별 주요 출품작 소개
1.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 (1963~1970)
최욱경은 서울대를 졸업한 다음 해인 1963년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63~1966년 사이의 유학 기간 동안 그는 추상표현주의와 후기회화적 추상에서 팝아트와 네오 다다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국 현대미술을 폭넓게 학습했다. 이를 기반으로 최욱경은 1960년대 중반부터 색면의 대비와 표현적인 붓터치가 두드러지는 추상회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캔버스 위에 문자와 텍스트를 도입하거나 신문, 잡지를 이용한 콜라주 등 재료의 사용과 기법적인 면에서 다채로운 실험을 시도하게 된다.
1965년에는 <앨리스, 기억의 파편>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관심을 처음 구체화했다. 이 책의 출간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도 관련 도서들이 재출간되었던 해에 <앨리스, 기억의 파편>이 제작된 것으로 보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최욱경의 관심도 당대의 이러한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가 언어와 문화가 모두 낯선 미국 유학의 경험을 ‘뿌리가 흔들리는 충격’이라고 표현했던 만큼, 원더랜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뒤바뀌는 혼란을 겪는 앨리스의 이야기는 쉽게 공감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최욱경이 미국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은 1968년 뉴햄프셔에 위치한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게 된 시기부터였다. 같은 해에 그는 <평화>와 같은 구상 작업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동조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1960년대의 작업에서 절규하는 <화난 여인>(1966)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발언하는 <평화> 속의 단호한 여성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은 최욱경이 유학생에서 교수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며 미국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2.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1971~1978)
최욱경은 1971년에 귀국해 1974년 초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파리 비엔날레 참여 작가 선발전인 《앙데팡당》(1972)에도 출품하는 등 한국 미술계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시기에 그는 단청과 민화를 통해 한국적 구도와 색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서예와 한국화를 학습하기도 했다. 서울대와 홍익대에 출강하면서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는 등 미술 교육자이자 문학가로서의 활동 또한 병행했다. 1974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출국해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했고, 애틀랜타 미술대학과 위스콘신 대학에서도 강사로 재직했다.
1976~1977년에는 뉴멕시코에 위치한 로스웰 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이 경험은 최욱경의 작업 전반에 있어 주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에는 꽃과 산, 새와 동물을 연상케 하는 유기적 형태들이 뒤얽혀 있으며, 회전하면서 군무를 추거나 날아오르듯 부유하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들이 주를 이룬다. 최욱경은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있어 영감을 준 요인으로 뉴멕시코의 풍경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이 시기의 작업은 광활한 대지와 모래사막, 진귀한 야생동물들이 공존했던 뉴멕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더불어 앨리스와 기이한 동물들이 엮어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초현실적인 꿈속 풍경이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최욱경만의 독자적인 추상미술이 탄생한 곳은 한국과 미국, 현실과 꿈속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사이의 공간’인 것이다.
3.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 (1979~1985)
1970년대의 작업이 원색의 강렬한 대비와 표현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대작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최욱경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조형적으로는 절제된 선과 구성을 강조하면서 시처럼 압축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시기에 직사각형의 정형화된 캔버스를 탈피해 원형이나 반원형과 같이 변형된 캔버스를 사용하거나, 캔버스에 솜을 넣어 누비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욱경은 1979년에 귀국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상도 지역 산들의 능선, 거제도 등 남해의 섬과 물빛에서 얻은 감동, 태양 광선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색채 유희 등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것이 1980년대 작업의 변화를 야기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산과 섬의 조형성에 관한 탐구와 함께 이 시기에 그는 꽃이 지닌 구조적 배열과 질서, 꽃잎의 형태와 강렬한 색상이 지닌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화면 위에 옮기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다.
1984년부터 다음 해인 1985년에 작고하기까지 덕성여대에 재직하면서 최욱경은 여성의 미술 교육과 사회 진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동시에 1980년대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1981), 뉴욕에서 열린 《한국 현대 드로잉전》(1981), 교토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전》(1982), 파리의 《살롱 도톤》(1982) 등 해외에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국제 전시에 다수 참여하면서 당대의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4.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최욱경은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 역시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그 기초가 된 것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작가가 스스로를 바라본 거울 속 모습이 다채로운 자화상들로 남겨진 만큼, 당대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최욱경을 비추던 ‘거울’들 역시 각기 다른 모양과 각도로 그를 포착하고 있었다. 1970~1980년대 한국에서 그는 “규수 화가”, “한국 최대의 그림을 그린 조그마한 아가씨”, “전혀 여성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림을 그려내는 여류” 등 남성/여성의 명확한 구분을 위반하는 존재이면서도 결국은 ‘아가씨’나 ‘규수’로 지칭되는 ‘여성’ 작가였다. 미국 사회와 미술계에서는 아시아 출신의 외국인이자 여성 작가라는 특정한 정체성들로 규정되었다.
최욱경의 자화상은 전시용 작품이라기보다 그가 시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던 것처럼, 자화상을 그리던 시기의 자신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기록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주로 그의 방이나 작업실에 걸려있었다는 점에서 최욱경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던 개인적인 공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방 안에서 그는 자신을 비추던 당시 한국과 미국 사회의 왜곡된 ‘거울’ 속 이미지와 달리, 스스로가 바라본 본인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기고자 했다. 자화상들이 걸려있던 방은 시와 그림 속 이야기가 시작된 출발점이자, 최욱경을 비추었던 과거 제한된 시각의 ‘거울’들을 깨뜨리고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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