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다 Still looking
정보영의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세하게 확장되어간다. 작가는 자신이 연출한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옮긴다. 공간을 사진기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실제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주관적인 우리의 시선과 는 다르게 사진기의 렌즈로 찍은 사진을 회화로 그리는 과정에서 작가는 다양한 시선의 변화를 경험한다. 그 시선은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한 원근법이 강조된 그림으로부터 평면적인 느낌의공간으로 이동한다. 작품 <확장하는 면들>에 그려진 커튼은 가려진 공간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장치로서(작가는 ‘커튼이라는 소재 또한 화면 속 깊은 공간을 순차적으로 가리우며 화면 밖 공간을 향하고 있다.’ 라고 한다.) 상상하는 공간은 보여지는 공간보다 그 깊이를 가늠할수 없음을 알게 해준다. 그림에는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으로 드러나는 풍부한 색감과 극적인 감수성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구조적인 그림에 깊은 감동을 더한다.
이번 전시에는 15점 내외의 회화작품들이 보여진다. 그림과 전시장,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오가며 확장 되어가는 작가의시선을 따라 회화의 가능성을 찾아보길 기대한다.
■ 조정란
빛을 담은 공간, 빛의 결로 표현된 시간, 어두움의 층, 건축물의 얼룩, 빈 테이블과 의자,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멈추는 촛불과 오르골, 유리구를 통한 빛의 산란과 투명한 그림자, 사실성을 향한 충동... 나의 작업을 설명하는 주요 문구들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효과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때론 건축물 내부에 빛과 어두움을 구조화하기 위해 사진 작업은 회화 작업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아이디어 스케치에 따라 특정 공간에 사물들을 설치한 후 수백장의 사진작업을 하고 선별하여 회화로 옮긴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사진과 회화의 차이점에 대해 질문하게 했고 그 대답은 항상 느슨하게 결론지어지곤 했다. 회화의 물질적 감각과 촉각성이 인간뇌의 기억기능이 가진 부정확성에 상응한다고 했던 진저라스(Alison M. Gingeras), 사진은 특정성을 얻고 회화는 모호성을 추구한다는 퍼거슨(RusselFerguson)의 문구에 동의하며 애써 회화에 편중하는 길을 걷고 있는 것도 같다.
또 다른 구상을 해본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힘을 가할수 있는 사물들의 공간 배치, 이것을 디지털 사진으로 평면화 하여 시각적으로 거의 유사하게 옮긴 회화, 이 회화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 데이터화 하는 과정을 밟다 보면 첫 단계의 실물 사진과 이것을 그린 회화를 찍은사진 - 이 둘의 데이터 값을 시각화해 보면 어떤 차이가 나타날까? 무의미한공상일 수 있다. 벤야민이 언급했던 파울 클레의
수많은 예술작품이 현실을 토대로 가상을 보여주듯, 나의 회화 또한 그러하기를 바란다. 가상공간 구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동굴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시점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들의 재현, 중세시대 종교적 메시지의 시각화, 좀 더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가상을 위한 체계적 질서인 르네상스 원근법의 발명, 빛과 색채, 영혼과 무의식의 구현에 이르기까지 가상구현의 역사는 무척 길다. 눈 앞에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
이번 전시 Still looking 에 보여지는 작품들에 재현된 공간은 대부분 얕은 공간이다. 바닥면은 암시되어 있을 뿐 화면에 드러나지 않아 건물의 벽만 이차원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
캔버스에 붓질을 하며, 그 붓의 흔적을 지우며 만들어가는 화면 속 공간.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아직은 흐릿하지만 나의 회화의 면들이 증식하고 확장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정보영
197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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