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19016 watercolor on paper, 27x36.5cm, 2019
황정미
19007 watercolor on paper, 27.3x36.9cm, 2019
황정미
20003 watercolor on paper, 27x37cm, 2020
황정미
<BL21013> - <BL22006> watercolor on paper, 65.1×45.5cm each, 2021-2022
황정미
BL20003 watercolor on paper, 45.5x65.1cm, 2020
황정미
BL20005 watercolor on paper, 45.5x65.1cm, 2020
황정미
BL22014 watercolor on paper, 97.0x145.5cm, 2022
전시서문
아무래도 오랜만의 햇빛
서한겸
하늘. 바다. 설원. 그곳이 어디이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서로 다른 빛과 색이 때로 긴장감 있는 균형을 이루고 때로는 침투하듯 섞여든다. 바로 인접한 보색이 각자 팽창해 나갈 때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서로 너무 밝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빛과 색이 경계 없이 팽팽히 맞닿아 있다.
수평적인 빛의 균형에 의해 중력이 암시된다. 이 빛과 중력의 감각이 탁 트인 공간의 느낌을 준다. 땅속에서든 물속에서든 위아래를 알 수 없는 상태, 치밀하거나 가까운 촉감에서 벗어나 지면에 닿은 느낌. 햇빛 아래 단단한 땅에 끌어당겨지는 안정감. 가득 균형을 이룬 빛들이 일렁인다. 아득하거나 아늑한 것 같다.
화면에 가까이 다가가면 색은 빛으로 희게 사라진다. 조금 멀어지면 빛과 색으로 이루어진 장면이 다시 드러난다. 이 때문에 작은 화면에서도 넓은 공간을 멀리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종이의 요철이 거느리는 섬세한 명암 또한 공간의 질감을 준다. 작지만 확실한 높낮이를 가지는 돌기 위아래로 입자들이 더러는 짙게 또는 옅게 자리 잡는다. 원근감과 농담 두 요소가 합쳐져 앞뒤로 오가는 깊이감이 생긴다.
색의 입자들은 물과 섞여 종이 위를 떠다니다 물이 스며들고 날아가 마르면서 중력을 따라 종이 위에 정착한다. 종이 위에 물감과 물을 올려두는 것은 작가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통제할 수 없다. 색은 매번 다른 모습이 된다. 다만 물을 가득 머금고 물성을 덜어낼수록 상승하는 듯 가벼워지고 빛처럼 밝아진다.
광원이 특정되지 않을 정도로 환하고 가득한 빛은 햇빛, 아무래도 오랜만의 햇빛일 것이다. 그 밝음과 따뜻함을 감당하기 위해 감은 눈으로 빛을 마주하고 있다. 엷고 가벼우며 구체적 형상이 없으나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의 풍경과 신체적 느낌은 시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풀려나는 느낌. 긴장, 흥분, 분노, 슬픔, 뭐든. 문득 가벼워지는 호흡, 홀가분함, 안도감, 그런 것.
빛은 은은하고 잔잔하다. 눈을 감은 채로도 안전한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칠 것 없이 모든 감각이 마음껏 열릴 수 있다. 시각이 차단되고 빛에 빠지는 순간 다른 감각들이 환기된다. 몰랐던 냄새. 전에 없었던 소리. 이 잠시 달라지는 감각이 마음과 현실과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다시 눈을 뜨면 어딘가 다른 곳, 달라진 세계. 모든 것이 그대로일지라도 먼 곳을 여행하고 온 이에겐 모든 것이 달라지듯이. 눈을 감은 채 다른 빛을 보고 달리 호흡하는 동안 다른 시공간을 거쳐 이곳에 온다.
이제 다시 눈을 떠야 한다. 다행히 아직 밝다. 달라진 눈으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고요한 가운데 멀리서 바람이 불어온다. 신선한 빛. 새로운 공기의 흐름이 기대된다.
작가노트
눈을 감으면
스며든 빛들이 천천히 번져 나가며
부드럽고 어여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찬란하다.
그러다 점점 모든 것이 느려지고 멈추어 시간이 정지한다.
시야가 넓게 펼쳐지고 이곳은 이내 다른 곳이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고 나아가본다.
멀리서 보이는 하늘에, 스치는 바람에 숨통이 트인다.
팔을 벌려 깊게 심호흡을 해보고, 조용히 앉아 마음을 쉬게 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가 원하는 색들은 자연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색은 가끔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준다. 자연을 통해 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나의 그림이 자연의 색을 닮아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릴 때는 천천히 색을 고른다. 많은 색을 사용하지 않으니 색을 고를 때 신중해진다. 습관적으로 물감을 많이 짜지만 그릴 때는 물감을 계속해서 덜어내고 물을 더하고 더한다. 물감이 덜어져야 색이 더 잘 보이고 색이 옅어야 미묘한 변화가 보인다. 빼내야지만 잘 보이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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