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팀 벤겔(Tim Bengel)
황금으로 제작한 아보카도 베이글, Who Wants to Live Forever?
팀 벤겔(Tim Bengel)
My American Dream black and white sand, gold, adhesive on aluminum panel, 247.5 X 405cm, 2017
팀 벤겔(Tim Bengel)
Who Wants to Live Forever?, gold, 2021
팀 벤겔(Tim Bengel)
Graves of Our Generation, gold-engraved marble stone, 40x40x1.5cm, 2019 (상공에서 촬영한 작품 전경(상단 좌측)과 묘비명들 세부 이미지)
환상을 지켜내는 것
영원성과 세속성. 양극단의 두 단어가 겹쳐지는 지점이 있다. 금이다. 황홀한 금빛은 초월적이면서 세속적이다. 신성의 상징이기도, 소유를 좇는 인간욕망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성과 속의 경계에 있는 이 광물의 이중성에 기꺼이 매료되었다.
#황금빵
독일의 현대미술가 팀 벤겔(Tim Bengel)은 2021년 12월, 마이애미 아트바젤의 아트위크에 3백만 달러짜리 금조각을 선보였다. 전시기간 동안 경찰의 보호와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작품은 황금 아보카도 베이글이었다. 호박씨가 얹혀진 베이글과 토마토, 아보카도 조각 등 27개 부품 모두 18K 금 1,452돈으로 만들어졌다. 3D 프린팅 제작과정 동영상도 SNS에 공유했다. 대학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젊은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토스트 재료들 사이에 끼워 넣었을 은유의 조각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싶었다. 나에게 아보카도는 밀레니얼 세대의 상징 중 하나다.” 팀 벤겔은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수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는 아보카도의 상징성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2020년 미국의 아보카도 수요는 6배 증가했고 부와 지위, 몸매 가꾸기 코드와 맞물린 유행은 유럽 일〮본 러〮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피빛 아보카도(blood avocado)’라는 별명이 암시하고 있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아보카도 생산으로 인한 중남미 지역의 물부족과 환경파괴, 멕시코 카르텔과 얽힌 문제들은 이 과일의 기름지고 부드러운 풍미를 ‘부패의 맛’이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하다. 작가는 이 지점에 대한 질문으로 황금 아보카도 베이글을 세상에 내놓았다. 유리케이스 속에 모셔진 번쩍이는 점심 메뉴 앞에서 관객들은 대체 왜, 오늘 우리의 삶에, 이런 황금빵이 필요한 걸까,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의문은 어쩌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아보카도의 현실을 향해 천천히 확장되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래와 금
팀 벤겔의 금을 이용한 내러티브는 모래와 함께 시작되었다. 흑백의 모래와 금박을 화면에 붙여 이미지를 완성시켜가는 동영상이 2015년 공개된 이후 누적 조회수 4억을 넘겼다. 작가가 작업과정을 끝낸 뒤 모래 덮인 화폭을 서서히 일으켜 세울 때 모래먼지 사이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지켜본 이들은 열광했다. ‘My American Dream’은 해질녘 도시에 드리워지는 어둠,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금빛으로 빛나는 초고층 빌딩의 첨탑으로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거대한 서사와 변함없는 환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웅장한 스케일의 도시풍경이 마법처럼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제작방식과 스타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대 언어로 영리하게 소통하는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을 때 작가는 하루 600통이 넘는 이메일을 받았다. 애플의 광고제안, 왕실로부터의 구매요청 등 수천 건의 작품구매 문의와 전시요청이 이어졌다. 2017년 획기적인 미학 컨셉을 포용하는 기획으로 유명한 뉴욕의 HG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첫개인전도 가졌다. 작가는 “세계 어느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개방성으로 기존의 견고한 미술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예술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짚어낸다. “예술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것을 SNS가 실현시켜줄 수 있지만 자칫 그 거품에 갇혀버리는 것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예술의 실제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공미술- 관객 속으로
2019년에 베를린에서 발표한 프로젝트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적극적으로 실험한 공공미술로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나는 왜 (안)살았는가?’ (Why did(n’t) I live?)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묘비명을 대리석판 100개에 금으로 새겨 꽃 1만 송이와 함께 해골 형태의 묘지공원을 만들었다. 한밤을 틈타 특수작전 수행하듯 15명의 조수들과 함께 베를린 장벽터에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도 감각적인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 작품은 흥미롭게도 스스로 제 이름을 만들어냈다. 전시 관련 이슈들이 SNS로 퍼지면서 ‘우리 세대의 무덤(Graves of Our Generation)’ 또는 ‘꽃해골묘지(FlowerSkullCemetery)’라는 제목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작품의 본질과 의미를 확장시켜가는 진정한 주체가 관객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경험이었다.
묘비명들은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았다 (I lived the life of someone else)’와 같은 삶의 회한부터 ‘나는 인터넷에 증오를 퍼뜨렸다. (I spread hate on the internet)’, ‘나는 소비광이었다 (I was a good consumer)’ 와 같이 소셜미디어나 소비에의 집착 등 21세기 삶을 반영하는 메시지들이다. 관객들은 묘비명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보거나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텍스트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향해 질문하게 만드는 이 사고실험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묘지라는 공간에서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유쾌한 유머와 서늘한 통찰 사이의 이야기들을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만나게 될 한국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예술가의 금
예술가에게 금은 매혹적인 소재다. 앤디 워홀은 숭배의 대상이 된 대중 아이콘의 배경을 금칠로 채워 공허함을 부각시켰다(‘금빛 마릴린 먼로’, 1962). 마크 퀸은 금으로 제작한 기괴한 신체 조각으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요구되는 비현실적 이미지를 비판했고(‘사이렌’, 2008), 데미안 허스트는 거짓 우상을 향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황금뿔 송아지에 투영시켜 방부액에 담가버렸다(‘황금 송아지’, 2008). 무엇보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모았던 작품은 단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황금변기 ‘아메리카’(2011)였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화장실에 설치되어 전시기간 동안 실제 변기로 사용되었던 이 작품은 미국 자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을 시시껄렁한 농담조로 조롱했다. 물신화된 욕망의 시스템 속 대상을 유쾌하게 비트는 장치로서의 금의 역할은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밀레니얼 세대 작가인 팀 벤겔이 금을 가져오는 방식은 다르다. 2018년작 ‘Hollywood’은 금칠 가득한 화면 위에 지명만 올려놓았다. 화려한 도시풍경도 없다. 할리웃은 그 기표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금은 이 도시가 갖는 속물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투영하면서 동시에 꿈을 향한 뜨거운 에너지가 되어 화면에 일렁인다. 작가는 꿈을, 환상을, 그 모습 그대로 지켜내고 싶은 것이다. 이 순수한 열망이 금의 이중적 속성을 동시에 품어낼 수 있게 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는 다르게 하고 싶다. (I want to do things differently)’라는 한 문장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 젊은 작가는 분명 다르고, 그래서 자유로워 보인다.
#또 다른 새로움
최근 팀 벤겔의 시선은 사물의 유기적 구조의 관찰과 그것의 추상적 표현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새로움을 위한 시도는 늘 옳다. 예술가는 멈추면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더욱 낯선 상상력의 풍경으로 펼쳐지기를, 그리고 그 속에 숨겨져 있을 통찰의 조각들이 금빛으로 빛나기를 기대해본다.
갤러리밈 기획자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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