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원화
레이어드 룸 01 10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1/4, 2021
김원화
레이어드 룸 02 10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1/4, 2021
김원화
레이어드 룸 03 10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1/4, 2021
김원화
레이어드 룸 04 100x100cm, 피그먼트 프린트,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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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이야기 실시간 생성 문장과 음성, projection mapping, VVVV, GPT-3, Clova TT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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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발견-이야기: 레이어드 룸 Beta, 표류 실시간 생성 비디오, 2160p, Unity, Maya, Image Captioning AI, GPT-3, 2022
김원화
희송의 이야기, 레이어드룸 전시 전경
김원화
룸룸룸 전 전시전경
함입(陷入)된 개인의 방
1. 개인의 방, 원룸
작가는 ‘원룸(one room)’이라는 작은 공간(사적 협소 공간)을 작품의 주요한 공간으로 설정한다. 각 가정에서 개인의 방은 보편적으로 전체 공간 구조에 종속된 하나의 공간을 지칭한다. 다만 그러한 부속 공간으로서가 아닌 독립적 공간으로서의 (개인의 방) 원룸은 개인의 서사를 온전히 마주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와 더불어 그것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사회적 의미가 투사되는 장소로서의 의미 역시 지니게 된다.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실험은 이내 우리 사회의 다수가 경험하게 되는 공간적 기억을 소환한다. 이는 개인의 공간 선택이 자율적 의지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룸으로 호칭되는 작은 공간. 일차적으로는 공간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이지만 가족 간의 상호작용이 거세된 공간이자 지속성을 담보하지 않기에 임시적 점유의 의미로 해석되는 등 거주 형태에 관한 사회적 용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자본을 점유하지 못한 이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제되는 공간이자 장소이며 노동과 여가 활동이 교차하는 매우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에 대한 표상이다. 다만, 개인의 방은 그 자신의 서사가 적층되는 공간이기에 쉽게 타인들의 방문과 점유가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면적의 문제를 넘어 온전히 사적 영역으로서 이 공간은 방문객들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한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대 이후 기능적으로 분화된 공간의 특성이 다층적인 구조로 겹쳐지며 하나의 형태로 귀결된다. 작가는 이러한 원룸 형태의 개인 공간이 사회적 관리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기에 사물의 누적과 이로 인한 외부와의 차단으로 인해 점차 고립되어 가는 경향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2. 가상이라는 함입 혹은 순환고리
과거로부터 이미지는 현실을 재현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환영으로 존재했다. 그것이 동굴벽화건 최근의 미디어파사드와 같은 현대적 미디어 전광판에서의 하이퍼-이미지이건 간에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가상적 현실로 기능한다. 다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이미지의 형식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현실 상황이다. 최근 가상의 개념은 현실과 대비되는 그 무엇으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과거 가상을 현실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따라서 현실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간주했다면 현재 상황은 가상을 현실의 또 다른 형태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변경시키는 극적 요소를 가상적 이미지에서 찾는다면 가상현실은 그 수사가 지닌 형용모순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현실과 대비되기에 현실을 초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이 다시금 현실을 재편하는 ‘함입(陷入) : 순환고리’의 구조(본래 의학, 생명과학 분야의 용어로서 세포층의 일부가 안쪽으로 빠져들어 새로운 층을 만드는 현상을 일컫는다. 대륙 철학에서는 이를 ‘메타 내러티브’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이를 외부와 내부가 끊임없이 교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자체로 접혀있는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한다. Jacques Derrida, Avital Ronell(trans.), “The Law of Genre”, in Critical Inquiry, Vol 7, 1980, pp. 227~228.)가 형성된다. 작품에서 가상의 쓰임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견된다. 그는 앞에서 서술한 원룸 형태의 (개인의) 방과 관련하여 현실 공간에 가상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이전 작품인 <원룸 어드벤처, 2018>과 <방으로 첨벙, 2019>, <레이어드 룸, 2021>의 경우에도 유사한 구성에서 출발한 작품들인데 여기서 가상의 역할은 개인의 방 모습을 전시장에 구현해놓는 일차적 의미 구조를 넘어 현실 공간에서 거부된 타인들의 진-출입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이는 원룸이라는 개인 공간이 상징적 의미를 넘어 타인들의 진입으로부터 일종의 ‘자기화(磁氣化)’의 장소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데 매우 개인적 공간이기에 침투되기 어려웠던 개인의 방은 이제 다양한 방문객들에 의한 의미 공유와 확산의 근거지로 작동한다. 가상이 덧씌워진 방은 여전히 개인의 방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되는 이중적 구조를 지니게 된다. 관객들은 특정 개인의 방으로부터 다른 이의 사적 기억에 접근하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렇게 접근한 기억의 모습이 어쩌면 자신 안에서도 발견되는 보편적 사적 공간의 경험일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 마치 자기장 안의 물체가 그 영향력으로부터 자체적으로 자기를 띄게 되듯이 가상과 겹쳐진 개인의 방 역시 일종의 (가상) 자기장의 영향력을 관객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이 개인 기억의 지층에서 저마다의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면, 이는 인간 주체가 지닌 (타자들과의) 동일성에 관한 근원적 욕망 혹은 지향으로부터 실패하게 된다.
3. 인간과 인공지능, 초월-개체적 주체의 변증법
현실과 가상이라는 밀접한 두 세계는 이렇게 개인의 방에서 조우하게 되지만 관객들이 개인의 사적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이외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대칭적이면서도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현실-가상의 상호 보완 관계는 특정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고 그저 그것의 겹쳐짐에 의한 환영적 효과만을 보여줄 뿐이다. 작가는 여기서 제 3의 요소를 개입시킨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체험의 주체가 그것이다. 만약 관객이 타자의 입장에서 방을 유영했다면 인공지능의 경우, 타자에 대한 타자 즉 이중적(이며 절대적인) 타자의 위치를 점유한다. 전작의 실험에서 관객들이 주체(작가)와 동일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타자로부터 기대되는 객관화된 시각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인공지능 주체의 경우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감성을 전제하지 않은 채 개인의 방을 탐색 가능한 객관적 세계로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인공지능에게 세 가지 유형의 정체성을 투사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빈슨 크루소, 방의 주인이자 어머니인 희송. 각 인공지능은 자신들의 특성으로부터 개인의 방에 대한 탐험과 관찰을 진행하고 이는 관객들에게 텍스트와 음성으로 전달된다. 마치 인간이 직접 침투하기 어려운 곳에 무인 조종 드론을 파견하여 해당 지역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개인의 방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작품 앞에서 전달받게 된다. 개인의 방이 품고 있던 이야기는 인공지능이라는 절대적 타자의 시각을 통해 관객에게 스며든다. 본래 관객은 (작가의 전작에서) 그 자신이 체험의 주체로서 (VR 기기를 착용하고) 방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행위자였지만 이제 해석자의 위치를 점유한 채 대리인들의 시각으로 세계를 해독한다. 기술 철학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는 오늘날 컴퓨터에 기반한 ‘기술적 기억 도구들(Digital Hypomnemata)’이 수신자들을 송신자들의 위치 안에 놓이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스티클레르는 이러한 기억에 관한 기술적 외재화를 히포므네시스(hypomnesis)라 명명하며, 오늘날의 컴퓨터에 기반한 기술적 기억 도구들, 즉 디지털 히포므네마타가 수신자들을 송신자들의 위치 안에 놓이게 만든다고 언급한다. Berard Stiegler, “Momory”, W.J.T. Mitchell, Mark B. Hansen(ed), Critical Terms of Media Studies, The University of Chicago, 2010, pp. 66~67)
작품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이 송신자로서 가상 세계에 대한 신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관객은 수신자로서 자신이 그 위치에 도달하지 않은 채 송신자들의 위치 안에서 해석의 주체로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스티글레르가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그는 보충물로서의 외재화된 기억이 살아있는 기억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서 구성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언급하며 기술과 연합하여 근원적으로 객관화되고 외재화된 기억이 인류의 지식을 확장시킬 것이라 예견하였다. 그리고 이를 ‘초월-개체적(transindividual)’ 변환이라 명명한다. (Bernard Stiegler, ibid, pp. 141~158)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작가의 작품에서 관객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개체들과 연합하여 초월개체적 주체의 입장을 가지게 된다. 개인의 방이라는 현실 공간은 가상화된 풍경으로부터 잠재적 (의미의) 세계로 전환되며 결국, 인공지능과 연합한 관객(초월개체적 주체)의 개입으로부터 완전한 인식의 대상이 된다.
글. 유원준 (미학)
1980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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