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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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감의 선으로 그려진 조각
고연수
양감적 선들의 조합
다채로운 색감을 입고 유려하게 그려진 듯-공간을 함유한-양감의 선들로 구축된, 작품이 요하는 적정 거리를 두고 바라본 작품의 형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의 모양이다. 거리를 좁혀 작품에 다가가 유심히 보면 친절하게 인지되었던 형상은 점점 사라지고 입체적이고 두께감 있는 선들이 나열되고 중첩되고 휘어지고 엉켜 조합된 양상이 남는다. 표현된 형상은 인간에게 친밀한 동물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인지하기 위한 복잡한 연상 작용은 요구하지 않아 시각적으로는 부담 없이 시원하며, 주제 역시 친근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자세히 볼 수 있으며 볼수록 대상마다 지닌 특유한 몸짓과 표정까지 서서히 읽혀 편안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소화하기에 퍽퍽하고 난해한 현대 시각예술의 풍파 속에서 한 편 얼굴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이 작업은 표현하는 대상의 특성과 특징을 캐치해 소위 엣지 있게 세심한 감각을 입혀 작품에 생기를 더하고 있다. 이상수 작가를 직접 만나기 전 SNS를 통해 다수 작품을 이미지로 접하며 느낀, 그 이후 작품들을 직관한 후에 떠오른 상념의 과정이다. 생각보다 꽤 많이 축적된 작품-의 이미지-들이 산뜻하게 산재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업이 대부분 3D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실질적으로도 수많은 작품이 첨단기계의 정확성과 속도감 있는 생산력에 조각가의 ‘손맛’이 버무려져 리듬감 있게 조율되어 제작되고 있다. 심리적·물리적 거리감을 두고 바라봐야 하는 전통적 조각의 엄숙한 점잖음 대신 이상수 작가의 작품들은 발랄하고 유쾌하고 따듯함을 입고 사뿐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감각으로 추상된 아름다움
작품 안에는 양감의 선들이 공간을 품고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듯 보이지만 차근차근 세밀히 보면 선들은 각각 타당한 굵기의 변화와 형태로 서로를 지탱하거나 가늘게 늘어뜨려 불편할 수 있는 충돌과 마찰을 피하고 있다. 양감의 변주가 있는 간결한 선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함께 내포된 여백과 함께 온전한 형상을 이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작가의 욕망이 평면이 아닌 3차원의 공간에서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2016년까지 진행했던 작업은 작가의 어린 시절 크레파스로 그렸던 원작 평면 그림을 소환해 입체작품으로 리메이크했고, 이후 근래 작업은 공간에 드로잉을 시도한 입체적 작풍으로 어린 시절 순수했던 꿈을 공간에 풀어내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어린 시절 욕망은 입체 작업을 통해 풍성한 양감을 입고 투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말, 고양이, 개, 닭, 사슴, 돼지, 새 등 동물들이 본래 지닌 친밀함으로 인해 좀 더 수월하고 활발하게 관객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작가의 생각에 더 보태어, 인간이 동물마다 부여한 각기 색다른 아름다운 특성들을 작가의 감각적 기지로 뽑아 추상해 그린 것으로 작품마다 지닌 분위기는 그렇기에 다채롭고 호소력이 있으며 자연스러운 교감을 풍부하게 불러일으킨다.
상상의 무게로 그린 조각
예술계에서 반사적으로 극도로 기피하거나 조심해야 하면서도 함께 언급되는 것조차 꺼려해 온 개념 중 중심에는 ‘대중성’과 ‘돈’이 있다. 아방가르드적이고 시간성이 내재해야 진정한 예술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이 관습으로 내려온 흐름 안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반추와 깊은 인문학적 통찰로 마음에 울림이 있는 진중한 작품들만이 묵직하게 남아야 할 것처럼 보인다. 이 와중에도 작품 자체가 진중한 것인지 작품의 주제가 무거운 것뿐인지에 대한 세분화된 판단의 촉을 세워야 하는 피로함도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밖에 없다. 현대 시각예술의 이러한 결 속에서 이상수 작가가 창작자로서 그리고 조각가로서 작업을 이어오고 지속하려는 의지는 그래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사회와 국가와 역사의 흐름을 진화시키며 문화를 일궈내는 인간 세계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대중성’과 ‘돈’을 마치 인위적으로 등져야 미덕인 것처럼-세상의 이치와는 반대로 가는-역설적인 분야인 예술계에서 창작자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꾸준하게 내려온 지난한 난제일 텐데, 이상수 작가는 이를 비교적 수월하게 뚫고 풀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분위기처럼.
생업으로서 예술가의 삶은 지극히 자기중심적 고집인 것 같아 몇 차례 작업을 완전히 접었던 경험, 생존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3D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전보다는 가성비가 좋아 같은 시간 내에 더욱 많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SNS상에서의 좋은 반응이 일자 도화선이 되어 예술가적 삶이 영위되도록 물리적 동력을 받았다는 작가의 고백을 통해 들은 일련의 과정은 작가 입장에서뿐 아니라 예술을 향유하고 공유하는 우리에게도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창발적이고 새로움이란 예술작품에 내재한 개념일 뿐 아니라 예술가적 삶과 작업의 태도와 방향에도 적용될 것이다. 예술에서 금기어 같았던 ‘대중성’과 ‘돈’은 새삼스레 구차한 부연 설명이나 언급 없이 앤디 워홀,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뱅크시와 같은 예술가들의 실천에 의해 단번에 재치 있고도 서정적이면서 은유적인 부드러움으로도 이미 깨지지 않았나. 세상의 이치에 반하는 유별난 예술과 예술가들은 이렇기에 흥미롭게 건재하는 것이며 이들의 작업과 행보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이치를 다시 정립하고 정서적·심리적 위안과 격려를 얻는 것은 아닐까. 진정 새로움이란 기존 전통을 거부하거나 인위적인 변화를 위한 변환과 진화 정도가 아닌 창작자가 가진 자신만의 개념과 작업관, 특유함과 고유함을 가지고 자기 확신으로 내딛는 발걸음일 것이다.
“저는 손으로 만드는 게 너무 좋아요, 너무 좋고 희열을 느껴서 오히려 도취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술가는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이고,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상상하는 사람이잖아요.”
- 작가 인터뷰 중 -
그간 이어온 이상수 작가의 작업 속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기저와 동력으로 닻을 내린 그 지점이, 감각적인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고 좋은 반응을 얻어 본인이 생각하는 기대 이상 과대한 호응을 얻을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로도 보인다. 테크네 보다 예술적 상상을 꾀하며, 간편하고 효율적인 매체를 택한 작가는 자신만의 전통적 관념과 기법을 그대로 포갠다. 대량 생산될 수 있는 공공 편리성의 기자재를 가져와 대량 생산이 불가하도록 에디션을 정하고, 작가 본인이 흡족할 때까지 예민하고 치밀하게 연마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로 치환시켜버린 이상수 작가의 작업은 그렇기에 휘발될 수 없는 묵직함이 내재되어 있다. 입체와 설치와 조각의 개념이 난무하게 뒤섞이고 혼합되고 혼용되고 통섭 되는 혼란한 현대 시각예술 안에서 이상수 작가가 조각가로서의 위치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곧, 그의 작업이 묵직한 중심을 두고 그려 나갈 그의 유연한 예술적-관념에 관한-확장성의 가능성과 더불어 여전히 깎고 붙이며 성형하는 섬세한 그의 손작업에 그만의 예술가적 흥이 또한 진하게 묻어있기 때문이다. 이상수 작가의 작품이 산뜻한 가벼움으로도 묵직할 수 있는 이유이며, 체감되는 가시적 가벼움은 그의 작품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닌 더 큰 원대한 상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유연성으로 점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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