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정서인
숯부작 1-4 숯부작 1-4, 장지에 화선지 꼴라쥬,먹채색,은분, 향,라이터, 116x91㎝, 2022
정서인
석가산 1 석가산 1, 장지에 화선지 꼴라쥬, 채색, 향, 라이터, 163x130㎝, 2022
정서인
석가산1,2 석가산1,2, 장지에 화선지 꼴라쥬, 채색, 향,라이터, 162x130㎝, 2022
정서인
Pandemic -Landscape distancing Pandemic -Landscape distancing,복합재료,가변설치, 2021
정서인
숯나무 숯나무, 복합재료 가변설치, 2022
정서인
Landscape distancing Landscape distancing, 숯에 한지꼴라쥬, pvc프린트, 라이터 34x46㎝ *4, 2022
소멸과 생성을 통한 순환의 이치,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관에 녹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붓이 아닌 ‘불’의 그림
작가 정서인의 작품은 붓이 아닌 ‘불’의 그림이다. 얇은 종이 가장자리를 태워 산의 봉(峰)과 봉(峰)을 만들고 그 사이마다 령(嶺)을 심는다. 겹겹이 누적된 한지를 통해 치(峙)와 재(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를 내며, 태워짐으로써 비로소 자릴 잡는 선(線)들은 능선(稜線)이 되어 산과 바위, 섬과 숲의 형(形)을 만든다. 2015년 작품 < 骨山(골산)_Daedunsan >을 비롯하여, < 떠 있는 섬들 >(2019~) 연작, < Blank-골산(骨山) >(2019), < 골산(骨山) >(2021) 시리즈, < Build of seas > 시리즈(2021) 등이 그 예이다.1)
1) 작가는 “태운 한지가 아주 얇게 ‘겹겹이 붙여져 겹쳐 보여주는 효과’(이는 콜라주(collage)를 뜻한다.)와 ‘불’이라는 강렬한 소재가 한지와 만나 태워져 소멸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선과 이미지가 생성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멸과 생성의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연과 세상의 순환적 이치를 태워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지필묵을 대체하는 또 다른 표현방법으로 모색해 나가고 있다.”는 게 작가의 변이다.
설치작품으로까지 진화한 < 겹쳐진 산 >(2021) 시리즈와 < Pandemic-Landscape distancing >(2021)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작업은 확장된 매체에 따른 다양한 방법론이 활용된 사례지만, 조형의 바탕에는 ‘불’과 ‘태움’이 있다. ‘태워진 태어남’ 면에선 여타 작업들과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그는 종이에 라이터 등의 화기(火器)를 사용한 조형방식을 갖는다. 때론 향화(香火)도 이용한다. 이는 기 거론한 ‘태워진 태어남’, 즉 태움이 생성이라는 작가의 작법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면서 작업의 근간이 된 소지(燒紙)2)의 의미도 포함되기에 제의적 관점 역시 내재한다.(소지는 집안 대대로 이어진 장손가(家) 자제로서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2) 정서인이 태우는 행위를 작업방식에 도입한 배경엔 남다른 조형요소를 얻기 위한 실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기억과 경험의 산물인 태움 자체에 기인한 탓이 크다. 그것은 1년 12번 제사를 지내야 했던 집안의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집안의 어른들은 제사 때마다 종이를 태웠는데 그것은 바로 부정(不淨)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날리는 소지(燒紙)였다.
정서인의 작품은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한국화와는 결이 다르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의 풍경을 옮긴 ‘산수’(山水)를 조형의 축으로 삼기에 특유의 여백은 살아있으나, 자연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내면의 심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진경보다는 의경에 가깝다. 미디어의 접목이 눈에 띄는 부분에선 기존 지필묵(紙筆墨) 중심의 전통적 한국화와는 일정한 간격3)을 둔다.
3)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 존재하는 자연임에도 상상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실경과 관념의 중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료도 그렇다. 정서인에게 ‘불’은 묵(墨)의 대용이요, ‘불’로부터 비롯된 ‘선’은 필(筆)의 역할을 대신한다. 이는 낙죽(烙竹)과는 또 다르다. 낙죽은 불로 지진다는 뜻의 낙(烙)과 대나무 죽(竹)이 합쳐진 말로,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그림이나 문양을 넣어 표현하는 기법이다. 하지만 작가는 얇은 종이를 직접 불사르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든다.4)(종이가 태워져 만들어진 선이 산세를 형성하고 형상이 된다.)
4) 캐나다 작가 스티븐 스파죽(Steven Spazuk)과 같이 불을 이용한 작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스파죽이 불의 그을음에 깃털이나 작은 붓으로 인물과 동식물을 정교하게 표현한다면 정서인은 직접적인 태움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불’은 원하는 대로 타지 않는다. 불길이 닿는 부분을 조율하는 것은 붓으로 선을 긋거나 형을 드러내는 것에 비해 우연성이 강하다. 때문에 그의 작업 과정은 비의도적인 행위에 기댄다. 선으로 무언가를, 어떤 상을 만들어내겠다는 의도는 가변성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취약성은 오히려 우연성을 배가시키는 원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업은 계획성을 동반한다. 종이에 ‘불’을 맞대는 행위는 애초 의식에 의한다. 행위란 인간의 의사활동이고, 의식·자각·결단 등을 수반한다. 다만 ‘불’의 특성상 결과적으론 의도되지 않은 선이 만들어지며 형상 역시 매우 비용의적이다. 따라서 정서인의 회화는 ‘불’의 강약과 멈춤, 지속을 통한 선의 계획성을 배제하진 않은 채 의도와 비의도, 우연과 계획의 틈, 다시 말해 균형미감과 조응(調應)5) 에서 빚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6)
5) 우연성과 계획성이라는 두 요소는 조응(調應)을 거쳐 조형적 합일을 낳고, 조응의 결과로 관람자들은 평안함과 아늑함, 무한함을 느낄 수 있다.
6) 조응이란 작가의 다양한 감성들을 심성의 대상, 그 본질로 치환해 드러나는 화력의 총체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균형미감과 조응에서 발화되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조응은 유독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는 명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응은 작가의 감성을 심성의 대상으로 치환해 드러나는 화력의 총체이다. 더불어 작가가 지정한 명제들과 시각적으로 수용 가능한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이합을 거듭하는 과정을 담은 여적(餘滴)이다. 그리고 여적은 작가가 인도하는 ‘세계’에 발을 담그도록 유도하는 심리적 기제다.
그 세계엔 정적인 공간이 자리한다. 어떤 구체적인 설명에 앞서 서사적 내레이션에 무게가 실리면서 오히려 고요함은 더욱 가중된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단편적 인식의 단계를 벗어나 사고의 지층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전통에 있어서의 실재적 가치, 번안된 한국화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확고히 할 것인가를 들여다보게 하면서도 현대인들에게 무엇을 전달해야만 하는지에 관한 작가만의 방법론을 열람케 한다.
재현 너머에 놓인 소멸과 생성의 의의
각주 1번에서도 언급했듯, 그의 작업은 ‘불’에서 비롯되고 사물의 재현을 넘어 소멸과 생성의 의의에 무게를 둔다. 또한 그의 태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소실을 뜻하지만, 태워짐은 다시 생성의 바탕이 된 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7) 특히 그의 태움은 완전한 분멸이라 보기 어려운데, 이는 그 자체로 순환8)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7) 이는 “‘태우다’가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변환된다.”는 작가의 설명이 합당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8) 작가의 그림은 생과 사, 소명과 재생이 순환 반복되는 자연의 이치를 거론한다.
순환은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실제와 무를 관통한다. 작품이라는 하나의 존재는 가시적 물질이면서 보이지 않는 것 혹은 없는 것의 실체를 밝히는 장치다. 작가는 이와 같은 흐름을 자연에 대입함으로써 자연과 세계의 윤환을 단단히 고정시킨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산수일지언정 단순한 도원의 세계이거나 실경의 세계가 아닌, 서정의 미를 바탕으로 한 공간의 미를 포박하는 세계, 돌고 도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불’에 의한 선은 화면에 겹겹이 누적되며 메마른 공간에 형상을 낳는다. 전형적인 것들에서 이탈해 ‘흔적 없는 흔적’을 남기면서 감성 가득한 내면의 세계로 타자를 인도한다. 그것은 형상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불’과 행위로 그려낸 자연이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있다. 이때 자연의 사실성은 집적과 풀림으로 대체되고, 장황한 서술방식 대신 생략 및 단순화를 통한 공간의 재해석이 우선한다. 그렇게 정서인의 작업은 자연의 지각에 있어 표피적인 재현만은 아니라는 듯, 심상으로 거둬 담아낸 것들이 주를 이룬다. 돌고 도는 이치를 담보한다.
오늘날 정서인은 한국화에 대한 관점을 자신의 눈높이에서 재해석하여 풀어낸다. 그리고 현재는 매체의 확장을 통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 겹쳐진 산 >(2021) 시리즈와 (2021) 등이다. 이 가운데 는 기존 한지 대신 아크릴판에 태움을 통해 생성된 산수를 중첩시키고 ‘숯’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설치작품이다. 이들 작업에선 ‘숯’9)이라는 오브제가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는 회화의 평면성에서 탈피하고 매체 다양성을 실험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도록 한다.10)
9) ‘숯’은 재가 되기 전의 자연물이다. 완전한 연소 이전의 상태를 물질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에게 ‘숯’은 소멸과 재생의 시간관을 외면하지 못한다.
10) 한국화의 고전적 어법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이다. 내가 땅을 디딘 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성을 말하며 매체 변화에 부적응한다는 건 모순이다.
이들 작품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이 놓인 공간 전체를 아우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형의 변화다. 조형의 변화는 조형원리의 변화와 언어의 쓰임이 변화했다는 것을 가리킨다.11) 물론 단순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감싸는 공간의 여백은 여전히 한국화의 전통성을 유지시킨다. (아직은 약간 부족하긴 해도)아크릴판이나 액자마저 작품이 되는 작업에서의 비움은 어떤 면에서 한국화의 사유마저 증폭시킨다. 더구나 공간에 맞물린 여백은 텅 빈 무한함과 비워짐으로 인한 충만함을 동시에 개방하기에 한국화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11) 그동안 쌓아온 작업들이 단편 혹은 하나의 에세이였다면, 이번 작업은 그 에세이에 행해지는 일종의 줄긋기이다. 줄을 그으면서 되새김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단단해지려는 작가적 의지의 반영이다.
그러나 태움의 과정은 불변하다. 소지가 그러했듯 마치 하나의 제의를 위한 제단의 여운도 여전히 남는다. 그렇기에 이를 단지 산수의 연장이라 보긴 어렵다. 오히려 제 몸 불살라 가루로 남는 ‘재의 몸통’ 내지는 덩어리를 통한 재(齋)의 간청(懇請)의 밀도는 높아졌다.
참고로 간청은 간절히 무언가를 바랄 때 비로소 익숙한 단어가 된다. 그것은 행렬의 뜻을 지닌 희랍어 ‘데이시스(Deesis)’로 증명된다. 하지만 데이시스는 성소 내에선 간구, 간원으로도 쓰인다. 따라서 ‘숯’을 이용한 그의 설치작업은 그저 산봉우리를 그럴싸하게 서술한 것에 머물지 않는다. 달리 보면 하늘과 땅, 죽음과 생명, 소멸과 생성을 상징하는 제단12)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13)
12)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제의로써의 기호 외에도 그 자체로 간청을 내세운 헌신의 공간이랄 수 있다. 아직 노련함은 낮으나 그의 설치작업은 일종의 처소, 거룩한 예배의 장소일 수 있다.
13) 다만 보다 명징한 성격을 부여할 필요는 있다. 현재로선 설치방식 면에서 세련됨이 떨어지고 규모도 작아 뜻을 전달하기 쉽지 않다.
한편 제단의 경우 합리적이고 과학적, 논증적, 직선적인 불가역성을 넘어 연속성을 내포한 인간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숯’이 지닌 의미들, 즉 순환-반복과 관계 깊은 무시무종(無始無終)14)과 맞닿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관을 관통한다. 시간관은 삶에 있어 생기로우나 동시에 숙명적인 특성을 띤다. 전통을 현대적 어법으로 치환하고 있는 작가의 현 작업들도 그 시간관 안에 있다.
14) 시작도 끝도 없음.
1988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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