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권오상
네 조각으로 구성된 비스듬히 기댄 형태 Four-Piece Composition Reclining Figure 2022-2023, Archival pigment print, mixed media180x90x110(h) cm
김인배
변신 Metamorphosis 2023, Resin, fiberglass, PLA filament, aluminum, stainless steel, 148 x 165 x 258(h) cm
김인배
안개 Fog 2023, Birch plywood, stainless steel, rubber, 40 x 30 x 560(h) cm
권오상
비스듬히 기댄 형태-행성들 Reclining Figure-Planets 2022-2023, Archival pigment print, mixed media, 177 x 51 x 79(h) cm
노상호
THEGREATCHAPBOOK4HOLY 2023, acrylic on canvas, 117 x 91 cm
안지산
고라니 사냥 3 2023, Oil on canvas, 194 x 130 cm
안지산
눈바람, 고라니 2023, Oil on canvas, 194 x 112 cm
노상호
THEGREATCHAPBOOK4HOLY 2023, acrylic on canvas, 117 x 91 cm
안지산
전시전경
이동욱
미끄럼틀 Slide 2023, mixed media, 가변설치
이동욱
절벽 Cliff 2023, mixed media, 22 x 17 x 48(h) cm
김인배
전시전경
노상호
전시전경
권오상
전시전경
이동욱
전시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1년 간의 장소 이전 및 재정비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2023년 2월 1일 새로운 모습으로 문을 연다. 장소는 이전의 종로구 소격동에서 이동해서 원서동의 옛 공간사옥 부지이자 현 아라리오뮤지엄 바로 옆으로 옮겼다. 갤러리의 건축 디자인은 일본 스키마타 건축 (Schemata Architects)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조 나가사카(Jo Nagasaka)가 함께했다. 스키마타 건축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의 기존 건물을 개조하되 완전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 외벽의 벽돌 외관을 유지하면서 바로 옆에 위치한 김수근 건축가의 옛 공간사옥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결과적으로 옛 공간 사옥과 유리건물인 신사옥이 만들어내는 대비처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의 검정색 외관과 갤러리 내부의 밝은 화이트큐브가 만들어내는 극명한 대비가 매력인 공간으로 탄생했다.
아라리오갤러리의 2023년 첫 전시이자 서울 지점의 이전 재개관 첫 그룹전인 <낭만적 아이러니 Roman Irony>는 갤러리와 오랫동안 함께 성장해온 작가 5인,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참여하는 그룹전으로 준비되었다. 전시는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라는 양극에 위치한 사유들을 오가면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사유의 한 방법론 속에서 기획되었다. 이 과정은 결과를 쉽게 유추해낼 수 있는 일반적인 반전 제시나 아이러니 효과를 넘어선 그 이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견지하며 그 과정에 따른 긴장감 넘치고 정답과 결과가 없는 무한한 사유를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이들일 것이다. 본 전시는 참여 작가 5인들의 작품들 속에서 이런 낭만적 아이러니적 태도들과 그 반성적 성질들을 포착해보고자 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작지만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있는 건물의 특성을 이용해서 본 전시는 전시 공간으로 할애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의 각 층을 한 명씩의 작가가 맡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향후에는 일반 관람객 공개가 안 될 사적 공간인 5층 공간도 개관전을 위해 전시 공간으로 제공해 관람객들이 전시된 작품들 너머 보이는 아름다운 창경궁과 원서 공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 권오상 작가는 자신의 대표 매체인 사진 조각에서 최근 집중적으로 시도해온 다양한 형태적 실험들을 소개한다. 과거 구상 조각에 가까웠던 형태들이 근작들에서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극도의 조형미 추구와 공간성 탐구에 있는 듯 하다. 총 7점 출품된 작품들 중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은 헨리 무어(Henry Moore) 조각을 오마주하고 그대로 형상화해가면서 추상적 형체와 유기적 구성에 기반한 독특한 인체 조각 연구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형상화된 표면에 권오상 작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 채집과 유희적 콜라주가 더해져 구조와 표면의 아름다움을 모두 쫓는 권오상 식 조형 미학을 완성한다. 그 결과 출품된 각각의 작품들은 권오상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에서 발현되는 공간미와 분절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이 서로 융합되는 매력을 표출한다. 헨리 무어 조각에서 파생된 작품들과 별도로 인물 흉상도 2점 출품된다. 작가는 최근 몇 년 특유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넘어가는 반추상적인 인물 연작들에 집중해오고 있다. 이들 흉상에서는 조각의 자율성과 확장된 표현에 대한 작가적 시도를 느낄 수 있고, 대상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접근법이 아닌 공간과 표현의 중점이 되는 조형 요소와 원리로의 고민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이동욱 작가는 5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이번 신작들에서 작가는 최근 관심사인 인간을 둘러싼 공간이나 건축, 그리고 기하학적 구조물들과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구조적으로는 이동욱 작가를 대표하는 15센티 내외의 작은 벌거벗은 인물상의 전신 혹은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상황들로 표현된다. 전시는 5개의 작품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작품 간 형성된 묘한 긴장감으로 인해 전시장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인 것 같은 인상을 전달한다. 우선 전시장 중앙에는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거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알루미늄의 차갑고 반짝거리는 느낌과 피부를 연상케 하는 분홍색 물질들의 공존이 매력인 이 작품은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인공적 구조물 간 분리할 수 없는 태생적 밀접성과 끈적한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주변부에 배치된 각각의 작품들에서의 인물들은 건축 자재인 알루미늄 허니콤 패널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붙들려 있다. 한 작품에서는 잡혀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인물상도 표현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인공적 구조물과 인간의 차갑고 끈적한 공존이 두드러진 설치 작품과 그 주변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인물 군상들이 끌어내는 긴장감을 통해 이동욱 작가의 강점인 시각이 주는 일차적인 미적 쾌감과 함께 내밀하게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전시장 한 벽에 꽤 작게 작가가 적어 둔 ‘3개의 안개’라는 제시어와 함께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개의 안개로 시작하는 전시의 작품 수는 총 4개다. 3개와 4개라는 개수에서의 어긋남, 셀 수 없는 명사인 안개에 지정된 3개라는 셀 수 있는 숫자, 눈 앞에 있지만 언제나 명확히 잡히지 않은 안개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하는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의도된 혼동을 강요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접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야기하는 접촉들은 못 보거나 만나지 못 하는 지점들에 대한, 즉 접촉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룬다. 합판으로 만든 얇은 파주 지도가 켜켜이 쌓여 5.6미터에 이르는 작품 “안개”, 하나의 평면을 중심으로 앞면과 뒷면, 바깥과 안이 마주하는 구조를 만들어낸 작품 “거울”, 각각 정형, 비정형적으로 만들어진 2개의 프로펠러가 등장하는 작품 “변신”, 그리고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든 작품 “칠판과 분필”, 이 4점의 작품들이 모두 접촉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작품들은 기존 방식이나 특정 관계에 간섭해서 감상자들의 인지 체계를 교란시키는 데 능한 김인배 작가만의 표현 방식을 통해서 언제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맹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여러 지점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께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질문 등의 문제의식을 던진다.
안지산 작가의 작품들은 그가 최근까지 집중해온 비 폭풍 속 돌산의 풍경에서 조금 더 나아가 눈 폭풍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사냥과 채집을 다룬다. 스스로 부여한 상황 속에서 잠식된 인간의 불안을 시각화하는 안지산 작가가 그려낸 눈 폭풍 속 풍경은 적막감이 감돌고 극적이다. 사냥과 채집은 자연 속에서 항상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이자 삶의 일상이면서 동시에 그 순간은 최고의 긴장과 공포가 축약된 극적인 순간이다. 이러한 안지산 작가의 풍경은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식 낭만주의적 정신의 숭고함과 충만함이 내재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의 풍경처럼 언제나 내 눈앞에 존재하는 풍경의 묘사와 인상의 표현에 기초를 두지만 훨씬 더 나아가 불안과 불길함, 그리고 경외감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결국 안지산 작가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를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경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삶의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부분들, 즉 이번 시리즈에서는 서로 사냥하고 채집할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자연 간 먹고 먹히는 순환 관계나 숨겨진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노상호 작가는 이번에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는 신작 시리즈 “Holy”를 소개한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 작가는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의 가상 이미지들 간 혼종교배와 그로 인한 결과물을 노출시키고 그 현상에 대해 고민한다. 디지털 가상 이미지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주 사용자들도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이나 반응은 두 세계 내에서 각각 다르게 풀어진다.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모두 공존하지만 각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혼종교배의 여러 단면들을 가장 고전 매체인 회화로 풀어낸다. 기존 시리즈들처럼 작가는 제작 방식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현 시점에서 매우 진일보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인 AI 기술을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회화에 접목시켰다. 작가는 우선 3D 이미지 중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들로 화면을 구성한 후, AI 생성 이미지 도구를 통해 특정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AI 기술로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를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현실 세계로 회화의 형태로 끌어내는 매체 방법론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주제와도 의도적으로 맞닿아있다. 더불어 이번 신작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에어브러쉬를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화면에는 재료의 물질성을 가시적으로 부각시켰다. 한없이 얇고 평평하게 표현되는 에어브러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특수 안료 혹은 석고 등 직간접적 두께감을 더할 수 있는 재료를 더해서 극도로 아날로그적인 캔버스 면에 디지털 이미지의 특수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 아라리오갤러리
낭만적 아이러니
(글_아라리오갤러리 강소정 총괄디렉터)
표층에서 예상되는 관측과 심층의 도착점이 종종 유리되고 부조화를 이루는 전시들이 있고 작품들이 있다. 이런 경우 작가의 의도나 표현들은 예측 가능한 지점에서 미세하게 어긋난 곳으로 서사와 해석의 방향을 끌고 가기 때문에, 관람객은 작품들 속에서 여러 겹의 서사나 문제 제기와 마주치게 되고 그 결과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것들에 대한 재검토를 강요 받게 된다. 이런 작품들의 즐거움은 반전과 아이러니가 주는 묘미에 있고, 예측불가한 결론이 주는 설렘에 있다. 이때 일의 형세가 뒤바뀐다거나 예상 밖의 결과가 빚는 모순이나 부조화 등의 수사적 의미에서의 단순한 반전이나 아이러니만으로 미술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는 다소 부족한 지점들이 있다. 그러한 순간에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F. Schlegel)이 정립한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c Irony)’는 우리에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할 때가 있다.
슐레겔은 가시적 작품들의 피안에는 비가시적인 작품의 영역이 열려있음을 알았다. 그가 주창한 낭만적 아이러니는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진적인 과정으로 매개적이며 무한한 실현 과정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의 방법론이다. 각각의 예술작품에는 올바른 반성에 의한 형식상의 긴밀함이 형성되어 있지만, 그 긴밀함에서 해방되어 궁극적으론 낭만적 아이러니가 추동하는 반성적 성질을 통한 예술의 절대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식의 사고는 양극에 위치한 사유들을 오가며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긍정하고 주목하는 철학적 사유이다. 그 과정은 결과를 쉽게 유추해낼 수 있는 일반적 반전 제시나 아이러니 효과를 넘어선 그 이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로 간주해야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이런 식의 태도를 견지하며 그 과정에 따른 긴장감 넘치고 정답과 결과가 없는 무한한 사유를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이끌어내는 이들일 것이다.
아라리오갤러리의 2023년 첫 전시이자 서울 지점의 이전 재개관 첫 그룹전인 <낭만적 아이러니>는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 총 5인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이러한 낭만적 아이러니적 태도들과 그 반성적 성질들을 포착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권오상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대표 매체인 사진 조각에서 최근 집중적으로 시도해온 다양한 형태적 실험들을 소개한다. 과거 구상 조각에 가까웠던 형태들이 근작들에서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극도의 조형미 추구와 공간성 탐구에 있는 듯하다. 총 7점 출품된 작품들 중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은 헨리 무어(Henry Moore) 조각을 오마주하고 그대로 형상화해가면서 추상적 형체와 유기적 구성에 기반한 독특한 인체 조각 연구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헨리 무어의 조각들은 1930년대에서 80년까지 과거 고전주의 조각을 탈피하고 구성주의와 추상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를 결합해 새로운 현대미술의 경지를 연 조각들이다. 그 형상화된 표면에 권오상 작가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미지 채집과 유희적 콜라주가 더해져 구조와 표면의 아름다움을 모두 쫓는 권오상 식 조형 미학을 완성한다. 그 결과 출품된 각각의 작품들은 권오상 작가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에서 발현되는 공간미와 분절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이 서로 융합되는 매력을 표출한다. 헨리 무어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 매끄럽고 두드러진 곡선의 아름다움과 실험적인 공간 창출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운 형태는, 추상적, 비선형적으로 연결된 표면의 이미지들과 결합하면서 자연미와 가공된 미가 결합된 흥미로운 시각적 유희를 제공한다.
헨리 무어 조각에서 파생된 작품들과 별도로 인물 흉상도 2점 출품된다. 작가는 최근 몇 년 특유의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넘어가는 반추상적인 인물 연작들에 집중해오고 있다. 이들 흉상에서는 조각의 자율성과 확장된 표현에 대한 작가적 시도를 느낄 수 있고, 대상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접근법이 아닌 공간과 표현의 중점이 되는 조형 요소와 원리로의 고민으로 관람객을 이끈다. 출품된 7점의 작품들과 함께 이번 전시에서 눈 여겨 볼 지점은 작품들의 좌대이다. 좌대조차도 또 다른 한 명의 대가,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작품을 사진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또 하나의 눈 여겨 볼 만한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동욱 작가는 총 5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이동욱 작가의 작품들은 그 당시 작가가 관심을 갖고 눈 여겨 보는 여러 시지각적 이미지나 사적 관심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동욱 작가의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작가를 대표하는 15센티 내외의 작은 벌거벗은 인물상의 전신 혹은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상황이나 구조적 조건이 펼쳐진다. 이때 작가가 포착한 상황이나 조건들은 작가의 사적 관심사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관계들과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특별한 작가인 까닭에 항상 그의 작품은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나 이해가 가득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들에서는 작가의 최근 관심사인 인간을 둘러싼 공간이나 건축, 그리고 기하학적 구성물들과의 공존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전시는 5개의 작품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작품 간 형성된 묘한 긴장감으로 인해 전시장 전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인 것 같은 인상을 전달한다. 우선 전시장 중앙에는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거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알루미늄의 차갑고 반짝거리는 느낌과 피부를 연상케 하는 분홍색 물질들의 공존이 매력인 이 작품 “미끄럼틀”은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인공적 구조물 간 분리할 수 없는 태생적 밀접성과 끈끈한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이 작품의 주변부에 배치된 각각의 작품들에서는 작가를 대표하는 작은 인물들이 건축 자재인 알루미늄 허니콤 패널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붙들려 있다. 한 작품에서는 잡혀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인물상도 표현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인공적 구조물과 인간의 차갑고 끈적한 공존이 두드러진 설치 작품과 그 주변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인물 군상들이 끌어내는 긴장감을 통해 이동욱 작가의 강점인 시각이 주는 일차적인 미적 쾌감과 함께 내밀하게 찾아오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전시장 한 벽에 꽤 작게 작가가 적어 둔 ‘3개의 안개’라는 제시어와 함께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3개의 안개로 시작하는 전시의 작품 수는 총 4개다. 3개와 4개라는 개수에서의 어긋남, 셀 수 없는 명사인 안개에 지정된 3개라는 셀 수 있는 숫자, 눈 앞에 있지만 언제나 명확히 잡히지 않은 안개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하는 김인배 작가의 공간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의도된 혼동을 강요한다. 작가에 따르면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접촉’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이야기하는 접촉들은 못 보거나 만나지 못 하는 지점들에 대한, 즉 접촉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룬다. 작품 “안개”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동일 형태의 합판면이 5.6 미터 천장까지 연결되는 조각 작품이다. 이 합판 면은 파주 지역의 지도 모양인데, 현대의 파주 지역 외곽선을 옛날 지도에 매핑해서 지금의 지역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곳에 점을 찍어 다시 구성했기 때문에 최종 모양은 조금 찌그러져 있는 형태로 유지된다. 흥미롭게도 이 파주지도는 그 형태를 정면에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켜켜이 쌓아 놓은 후 옆면의 윤곽선을 보는 것 만을 허용한다. 관람객은 결국 그것이 파주 지도라는 점을 알려주는 이가 없으면 알지 못 할 테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결코 그 모양을 정면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옆에서 가늠만해볼 수 있는 조건에 놓여지게 된다. 윤곽선들로 인해 상상을 할 순 있지만, 결코 전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입체를 다루는 조각가에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문제의식이자 고민인데,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맹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 관계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한다. 유사하게 아이러니한 상황을 우리는 작품 “거울”에서도 포착한다. 바깥과 안이라는 구조로서 언제나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특정 형태의 한 평면으로서 존재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보는 도구지만 동시에 볼 수 없는, 즉 전면은 보여주지만 절대로 후면을 보여줄 수 없는 거울을 환유함으로써, 바깥과 안이 하나의 면을 통해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하지만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여러 입체적인 것들에 대해 사유한다.
또 다른 작품 “칠판과 분필”은 제목 그대로 칠판과 분필로 구성된 작품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첫 대면에서 애매한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분필의 재료로 칠판을 만들었고 칠판의 재료로 분필을 만들어 반전된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다수의 다른 작품들처럼 기존에 우리가 읽어오던 방식이나 특정 관계에 대해 간섭하고, 그 간섭으로 인해 해체된 관념들에서 파생되는 여러 질문들 속에 빠지게 만든다.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변신>에서 제목을 따온 마지막 작품 “변신”은 두 개의 프로펠러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조각 작품이다. 각각 흙으로 만들거나 컴퓨터 작업 후 3D 출력해 하나는 비정형적이고 하나는 정형적으로 표현된 각 프로펠러들은 3D 출력 후 유리 섬유로 감싸고 레진과 갈색 경화제로 최종 코팅한 까닭에 묘하게 피부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즉, 두 프로펠러의 구조는 각각 동일하지만 그 모양과 만들어진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프로펠러의 각 이면은 구조적으로 서로 절대 만날 수 없지만 그 형태는 동일해 보인다. 접촉한다면 완벽하게 합쳐질 것만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의도한 덫일 뿐 실제로 맞닿을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가능성만을 품은 채 수수께끼처럼 감상자들에게 던져진채 그들의 인지 체계를 교란하는 것이다. 여기에 불을 지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정형적 프로펠러의 뒷면에 적힌 글귀 ‘나를 만지지 마라’이다. 이는 연상하듯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온 글귀인데, 의심하고 만지려 하는 것에 대한 경고인 이 말까지 더해지면서 감상자들은 꽤 쉽게 김인배 작가가 의도한 함정에 걸려들게 된다. 결론적으로 기존 방식이나 특정 관계에 간섭해서 감상자들의 인지 체계를 교란시키는 데 능한 김인배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맹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여러 지점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함께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질문 등의 문제의식을 던진다.
안지산 작가의 작품들은 그가 최근까지 집중해온 비 폭풍 속 돌산의 풍경에서 조금 더 나아가 눈 폭풍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상상한다. 비 푹풍 속 상황이 땅 속에 발을 파묻은 변하지 않는 돌산과 불안한 대상으로서의 변화무쌍한 구름을 중첩시켜 인간의 잠재적 불안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눈 폭풍의 상황 속에서는 사냥과 채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부여한 상황 속 잠식된 인간의 불안을 시각화하는 안지산 작가가 그려낸 눈 폭풍 속 풍경은 적막감이 감돌고 극적이다. 사냥과 채집은 자연 속에서 항상 행해지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이자 삶의 일상이면서도 동시에 그 순간은 최고의 긴장과 공포가 축약된 극적인 순간이다. 이러한 안지산 작가의 풍경은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식 낭만주의적 정신의 숭고함과 충만함이 내재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프리드리히의 풍경처럼 언제나 내 눈앞에 존재하는 풍경의 묘사와 인상의 표현에 기초를 두지만 훨씬 더 나아가 불안과 불길함, 그리고 경외감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결국 안지산 작가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를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경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삶의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한 부분들, 즉 이번 시리즈에서는 서로 사냥하고 채집할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자연 간 먹고 먹히는 순환 관계나 숨겨진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기존 시리즈에서 구름이 관찰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 구름이었다면, 이번 눈 폭풍에서의 관찰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은 단연코 사냥감인 고라니들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긍정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과 자연의 순환하는 삶에 대한 감정 혹은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부정적인 감정이기도한 양가적 감정을 화면 가득 담았다.
노상호 작가는 이번에 신작 시리즈 “Holy”를 소개한다. 먹지를 이용해 작가의 신체를 매개한 후 디지털 이미지를 현실로 옮기면서 특유의 상상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노상호 작가는 신작에서도 여전히 디지털과 현실 세계 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진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 작가는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의 가상 이미지들 간 혼종교배와 그로 인한 결과물을 노출시키고 그 현상에 대해 고민한다. 디지털 가상 이미지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주 사용자들도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이나 반응은 두 세계 내에서 각각 다르게 풀어진다. 예를 들어, 가상 세계에서의 단순 오류에 의해 생성된 특정 이미지는 현실에서와는 차별적으로 가상 세계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급기야 성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그러하다. 작가는 이번 신작 시리즈에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모두 공존하지만 각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혼종교배의 여러 단면들을 가장 고전 매체인 회화로 풀어낸다. 이 혼종교배의 단면들은 작품에서는 이계와 현계를 오가는 존재로 흔히 묘사되는 말을 탄 해골 기사의 형상이라거나 켄타우로스, 혹은 빛으로 몸이 발현되는 여러 존재 등으로 상징화되었다.
기존 시리즈들처럼 작가는 제작 방식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데, 예를 들어 현 시점에서 매우 진일보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인 AI 기술을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회화에 접목시켰다. 작가는 우선 3D 이미지 중 무료로 사용 가능한 이미지들로 화면을 구성한 후, AI 생성 이미지 도구를 통해 특정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흥미롭게도 생성된 이미지는 무조건 정방형으로 생성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말이 두 개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변수들까지도 그대로 작품에 표현해 자신이 던진 디지털 이미지 소비의 화두에 대한 질문을 전면에 던진다. AI 기술로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를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현실 세계로 회화의 형태로 끌어내는 매체 방법론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주제와도 의도적으로 맞닿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상을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그려내는 방식이 중세 종교화의 그것과도 동일시된다는 점에서 디지털 이미지를 현실 세계에서 그려나가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이번 신작에서 는 과거와는 달리 에어브러쉬를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화면에는 재료의 물질성을 가시적으로 부각시켰다. 한없이 얇고 평평하게 표현되는 에어브러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특수 안료 혹은 석고등 직간접적 두께감을 더할 수 있는 재료를 더해서 극도로 아날로그적인 캔버스 면에 디지털 이미지의 특수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작가가 전달하려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1974년 서울출생
1976년 대전출생
1978년 출생
198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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