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 한옥의 차경借景
2023.04.25 ▶ 2023.05.14
2023.04.25 ▶ 2023.05.14
이동춘
<경치를 빌리다> _ 안동 하회마을 건너편 겸암정에서 본 차경 2011
차경을 들이고자 한 이가 꿈꾸었을, 바로 그
한옥의 차경을 찍는 일은, 늘 기다리는 일이었다.
꽃이 필 때까지, 단풍이 들 때까지, 눈이 올 때까지....
그것도 그냥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피어서, 단풍이 들어서, 눈이 내려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렸다. 그 한옥에 문과 창을 만들어 차경을 들이고자 한 이가 꿈꾸었을 경치의 절정을 기다렸다.
고택과 종가, 서원 등 수백 채가 넘는 한옥을 다녔고, 예전에 갔던 곳을 몇 년 후에 다시 가거나 여름에 갔던 곳을 겨울에 다시 가면서,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을 한옥에서 보냈다.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요소들과 특징들을 찾아서 그것을 내 사진 안에 담아내고자 탐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통틀어서, 어느 때고 나를 놀래고 감동케 하는 것은 그것이 서원이든 종가든 작고 소박한 고택이든, 한옥채들이 품고 있는 차경이라는 경치였다. 바깥의 경치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방안에 앉아 마당을 보고 담을 보고 담장 너머의 산과 풍경을 본다. 집안에서도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보다, 서울서 안동을 오가는 일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끝냈다고 생각한 5년 전에 아예 안동 가까이로 거주지를 옮겼다. ‘때’를 기다리느라고 종일 동네를 서성이고 있으면 “아직 안 갔어?” “아직도 있네?”하는 말을 안동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는데, 이젠 아예 나도 안동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힘든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 차경을 앞에 두고 앉아 차를 마시던 순간들은, 긴 기다림의 시간과 제실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있던 외롭던 순간들을 보상한다. 지금 차경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고산경행루> 현판이 걸린 광거당 누마루가 떠오른다. 누마루에 앉아 차를 마실 때 바라다보이던 그 겹겹의 풍경들, 그 풍경을 ‘빌어서 품은’ 한옥의 아름다운 정취를 내 사진이 담아 전하길 바란다.
2023. 4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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