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수영
work No. 65 2021, oil on canvas, 66 x 61cm
노충현
산책 Walk 2023, oil on canvas, 73 x 61cm
이만나
집에 가는 길 The Way Home 2017, oil on canvas, 60.6 x 72.7cm
정재호
잔설 Residual Snow 2023, 캔버스에 오일, 162 x 112cm
정재호
피부 Skin 2023, 캔버스에 오일, 72.7 x 53cm
김수영
work No. 61 2019, oil on canvas, 65.5 x 94cm
노충현
여의도의 밤 Night in Yeouido 2023, oil on canvas, 90 x 130.5cm
이만나
벽12-2, The Wall 12-2 The Wall 12-2, 2013, oil on canvas, 130 x 194cm
회색의 리듬 속을 걷다
도시. 그것이 생겨난 긴 역사와 그 안에서 생긴 여러 사회적 의미와 이로 인해 생긴 다양한 이미지는 아우라를 만든다. 아우라를 가진 대상은 정체를 알기 어려운 법이다. 도시에 대한 혼란한 설명을 접고 밖으로 나가 한 걸음 내딛으면 깨닫게 된다. 내가 사는 이 곳, 나를 둘러싼 공간, 내 생활의 일부, 이것은 일상이다. 회색의 도시는 내가 인식하는 세상 그 자체이다.
《Urban Gray》의 네 작가는 이러한 도시를 그린다. 이들은 현대적인 의미의 도시가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90년대에 대학에서 붓을 잡았고, 일련의 도시 회화로 주목 받았다. 이전 세대의 격렬한 주제의식과 한 발 멀어져 묵묵히 자신들의 회화를 만들어간 이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이를 구상화에 담았다. 화면의 조형미에 집중하기도 하고, 그 속의 인간사를 보기도 했으며, 특유의 정서를 담기도 했고, 내재된 사회 문제를 고민하기도 한 네 작가는 여전히 도시를 그린다. 그리고 도시가 변하는 것처럼 그들의 회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정재호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았으나 이제는 허물어지는 장소를 기록한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새로움을 향해 끝없이 변해가는 도시와 방향을 달리한다. 그는 소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을 회화로 옮길 수록, 그것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한 어떤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도시는 시간의 숙명을 함께하는 동행자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도시의 방향성과 반대로 간 그의 회화는 지금의 도시와 지나간 기억을 공유하며 나란히 걷게 되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를 그리는 노충현은 의식적으로 대상과 먼 거리를 유지한다. 묘사하지 않으려 화면에 가까이 가지 않고 서서 그리는 그의 회화는 도시 안에 복작이고 사는 삶의 희노애락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그렇게 비어진 공간에는 삶의 공허가 들어섰다. 그 공허의 감정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보는 이의 공감에 호응하듯 그의 회화는 더 흐려지고 더 촉촉해졌다. 회화가 물러설수록 도시의 정서는 가까워졌다.
이만나는 어디에나 있는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그는 대상을 오랜시간 기억하고 그리기 때문에 때로 그가 그리는 장소는 더이상 거기에 없기도 하다. 시간을 들여 새겨넣듯 그리는 그의 몰입은 누구나 스쳐 지나가며 봤을 법한 그 곳을 이세계의 그것처럼 새로운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한다. 평범한 풍경이 강렬한 생명력을 가지고 나를 응시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을 초월한 저 너머의 공간이 된다. 도시의 일상에 몰입함으로써 그의 회화는 초현실의 한 장면이 되었다.
도시의 고층건물을 주로 그리는 김수영의 회화는 어쩌면 가장 도시적이다. 화면에 펼쳐진 조형성은 현대미학의 논의를, 대상이 된 건물의 상징은 현대사회의 수많은 기호를 연상시킨다. 도시 의 물리적인 특징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변용하기 때문에 그녀의 회화는 포스트모던 건물과 쇠락한 을지로의 건물이 병존하고, 오래된 타일 벽이 화면을 뒤덮으며, 건물 사이로 날카롭게 드러난 하늘이 작가의 손길이 그대로 담긴 얇은 붓자국으로 그려질 수 있다. 도시의 실질에 사로잡히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회화는 자유로운 숨결을 담게 되었다.
이렇게 네 작가는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대로, 그들의 생각대로 도시의 풍경을 그려왔다. 외부자가 아닌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그곳의 변화를 자신의 달라짐으로 받아들이고 회화를 지속했다. 그 다름과 지속은 그들의 회화에 다채로움을 만들고 도시의 풍경에 리듬을 더한다. 차갑지만 따뜻하고, 메마르지만 촉촉하며, 어둡지만 밝고, 피상적이지만 현실적인 도시의 풍경은 회색 빛으로 물들어 간다. 회색의 리듬을 만들어 간다. 그 도시 속으로, 회색의 리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세계를 이해한다.
■ 전희정(갤러리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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