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권순영
Deep sea 2023, 한지에 채색과 꼴라쥬, 26.3 x 37.2 cm
권순영
수집가 Collector 2023, 한지에 채색, 42 x 33cm
권순영
유령의 땅 The land of ghosts 2023, 한지에 채색, 25 x 34 cm
권순영
항해 sailing 2023, 한지에 채색, 28.2 x 35.7 cm
권순영
회상 Flashback 2022, 한지에 채색, 24.8 x 20 cm
권순영
전시전경
마침내 도달한 그 곳, 유령의 땅
얼굴에는 뭇웃음을 띠고 눈에는 눈물이 맺힌 채 그녀는 헤매어 왔다. 발 한 번 땅에 딛지 못하고 몸 한 번 뉘일 새 없이 모든 곳을 가고 온갖 것을 만났다. 그녀는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그것들을 기억했다. 그렇게 그 많은 땅과 하늘과 강과 바다를 거쳐 그녀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유령의 땅이었다.
여정의 시작은 고통이었다. 세상에 던져져 맞닥뜨리는 모든 고통의 순간은 그녀가 존재의 이유를 찾는 시작이 되었다. 세상은 너무나 가까이 폭력을 가져다 놓고,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살짝 보여주었다. 폭력은 아팠고, 멀리 보이는 아름다움은 환상이었기 때문에 더욱 아팠다. 이 모든 것은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욱 잔인했다. 그녀는 그 고통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그림을 그렸다. 소화하기 힘든 고통처럼 먹과 색은 한지에 간신히 스며들어 그녀가 겪은 고통의 흔적을 기록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한 고통은 점차 형체를 갖추어 갔다.
그렇게 고통은 유령이 되었다. 그 유령들은 미키 마우스 같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청순한 눈을 빛내며, 명랑만화 캐릭터 같은 비율의 몸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완연한 정체를 갖춘 이 유령들은 잔인한 폭력과 아름다운 환상의 사이에서 오는 고통의 순간들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유령들은 점차 많아져 그녀가 그리는 화면은 이들이 흘리는 눈물과 피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것을 더 자세히, 다양하게, 많이 그렸다. 그렇게 수많은 유령들은 그녀와 동행하며 여정을 함께 했다.
그들의 여정은 축제였다. 눈물을 웃음으로 가린 유령들은 서로를 만나 기묘한 축제를 벌였다. 한 유령이 망가진 몸으로 흥겹게 서커스를 하면 고통을 주었던 유령과 아파하던 유령들 모두 두둥실 떠올라 환호했다. 그들은 이 고통의 순간이 마치 구원의 순간인 것처럼 기뻐하고, 구원받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는 그 축제를 그리기 위해 색을 곱게 올리고, 얼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버려진 것들을 주워 다정한 손길로 기워 넣었다. 그렇게 기억할수록, 기념할수록, 정성을 기울일 수록 그 축제는 선명한 장소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곳은 땅이 되었다. 그녀가 종이에 고통의 한 겹, 슬픔의 한 겹, 웃음의 한 겹, 겹에 겹을 더해 색을 올릴 때 여정의 순간들은 단단한 땅이 되었다. 아득한 시간들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이를 머금게 된 그 땅에 유령들이 하나 둘 내려왔다. 그곳에서 지금껏 그녀의 여정을 함께 해온 수많은 유령들과 수백 년 전 살았던 화가의 유령들이 만나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갈 곳 몰라 떠돌던 유령들이 조금씩 조금씩 그 자리에 내려와 어우러졌다. 그녀는 유령이 앉은 그 곳을 정성스럽게 사포질한 나무틀로 감싸준다. 그렇게 땅은 더욱 더 풍성해지고 단단해진다.
마침내 유령은 땅을 딛게 되었다. 한 화가에서 비롯된 유령, 기억도 나지 않는 지난날 겪은 고통에서 태어난 유령, 모두의 마음에 숨어 있는 그 유령. 떨쳐낼 수 없는 흉터처럼 영혼에 새겨진 고통은 이제 유령의 모습을 하고 유령의 땅으로 가서 비로서 안식을 취한다. 고통을 겪은 자는 갈 수 있는 곳. 아니, 고통을 가진 자, 고통을 준 자,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 그 모든 유령이 갈 수 있는 곳. 유령은 이제 그 곳으로 간다. 작가 권순영의 유령의 땅으로.
■ 전희정(갤러리 소소)
197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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